겨울산은 아름답지만 엄두가 나지 않는다. 그렇지만 여기 이런 곳이 있다. 케이블카 위에 구름다리, 구름다리 지나 철계단…. 자연의 위대함 앞에 사람의 노력을 덧붙이니 보통의 여행자도 도전해 볼 용기가 생긴다. 발 닿는 곳마다 이야기까지 많은 대둔산에 올라보자.
◆잘 생긴 산세, 사연도 많다
대둔산은 웅장하면서도 아기자기하다. 어디서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인상이 다르다. 충청남도 논산군·금산군, 전북 완주군 사이에 있는데 충청도 쪽에서 보면 완만한 산등성이와 깊은 수림이고, 완주 쪽에서 보면 여러 노암이 기암괴석을 이루며 솟아있다.
여기에 재미있는 전설이 있다. 옛날에 지리산 산신과 계룡산 산신이 여기 대둔산쯤에서 만났다고 한다. 두 산신은 내기를 해서 언니·동생을 정하기로 했다. 두 산신이 셋을 셀 때 입 바람을 불어 돌들을 날린 후, 상대 쪽으로 많이 보내면 이기는 방법이었다. 그런데 계룡산 산신이 반칙을 했다. 셋을 세기 전에 미리 바람을 불어 돌이 모두 전라도 쪽에 쌓인 것이다. 그래서 완주 쪽은 바위가 많고, 논산 쪽은 숲이 깊다. 이렇듯 완주로 오를 때면 병풍 같은 바위가 절경을 이룬다. 칠성봉, 장군봉 등의 암봉과 삼선바위, 용문굴, 금강통문 등의 기암괴석으로 알차게도 자리 잡았다. ‘호남의 소금강’이라는 말이 있긴 하지만, 금강산을 경험하지 못한 등반가들은 설악을 닮았다고들 한다.
옛 이름은 한듬산으로 순우리말이다. ‘한’은 크다는 뜻이고, ‘듬’은 시골더미, 즉 큰 바위라는 뜻이니 이는 아마도 전라도 쪽 대둔산을 보고 지은 이름이 아닐까 싶다. 이를 한자화 한 것이 대둔산(大芚山), 지금도 이 지역에서는 한듬산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대둔산 하면 원효대사를 빼놓을 수 없다. 동심바위는 신라 문무대왕 때 원효대사가 이 바위를 보고 차마 발길이 떨어지지 않아 3일을 그 아래에서 지냈다고 하는데, 고개를 숙인 듯한 모습이 기묘하다. 정상에 해당하는 마천대 역시 원효대사가 이곳의 경치에 반해 붙인 이름이다. 산 중 사찰 중 하나인 태고사도 원효대사가 창건했다. 이곳은 우암 송시열이 공부했던 곳이기도 하고, 만해 한용운 대사는 이 태고사 자리를 보지 않고서 천하의 승지를 말하지 말라 했다.
한편 안심사는 신라 선덕여왕 때 자장율사가 창건한 절이다. 경내 30여채 건물과 12개의 암자가 있는 큰 사찰로 6·25 피학살자 위령탑이 있다. 그런가 하면 수락계곡 초입에는 공비토벌 작전에 산화한 경찰 승전탑이 있다. 임진왜란 때는 의병대와 권율장군의 군대가 전투를 벌인 ‘이치대첩’의 무대이기도 하다.
금강구름다리 ◆케이블카 타고 구름다리로
완주 쪽 등산로에는 케이블카가 있다. 아래서 위로 올려다보는 산의 모습도 좋고, 케이블카로 산중턱까지 가는 동안 발 아래 보이는 경관과,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는 먼 산의 경치까지 뺄 것이 없다. 눈꽃이 피었다면 더할 나위 없다. 사실 완주 쪽 사면은 해가 잘 들어서 설경이 며칠 가지 못한다. 바람까지 불면 눈이 이내 떨어져 버리는 데 그래서 찰나의 아름다움까지 갖췄다.
케이블카에서 내려 전망대의 경치를 감상하고, 철계단을 올랐다 내렸다 하면서 구름다리 쪽으로 점차 가까이 다가간다. 나무에 올라앉은 눈도 아름답지만, 첨봉과 기암괴석의 바위 결을 따라 내려앉은 눈 구경도 즐겁다.
마침내 도착한 구름다리. 아래로는 까마득한 낭떠러지인데 두개의 눈 세상을 연결해 주는 듯, 이 계절에만 느낄 수 있는 신비로운 감성이 있다. 대둔산의 명물이기도 한 이 다리의 이름은 ‘금강구름다리’다. 임금바위와 입석대를 연결하는 높이 81m, 길이 50m로 예전에는 지금보다 더 많이 흔들렸다고 한다. 이쯤에서 산행을 포기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저 너머의 세상이 궁금한 지 용기를 낸다. 한번씩 내지르는 비명 소리도 행복한 기분이 담겨 있으니 크게 걱정할 건 아니다.
삼선계단 ◆하늘로 향한 삼선계단
사실 난코스는 따로 있다. 삼선계단이라 부르는 이 다리는 아래에서 그 끝이 보이지 않는다. 저 위는 하늘인가, 낭떠러지인가? 알 수 없지만 앞서 오른 사람들을 믿고 따를 뿐이다. 각도가 51도 정도 된다고 하는데 오르는 사람의 체감 도수는 수직의 아찔함이 느껴진다. 여기에 눈바람까지 불면 등반 스릴의 삼단 콤보를 맞는 셈이다. 앞사람과 뒷사람 보조 맞춰 0.5m 폭의 127개 다리를 오르면 마치 하늘 문이 열리듯 낮은 문을 통과한다. 긴장을 늦추지 말고 겸손하고 조심하라는 경고로 받아들여 황홀한 설경에 정신을 뺏기지 말아야 한다.
삼선계단은 삼선바위에 놓여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여기 얽힌 이야기는 고려시대로 간다. 고려가 망하자 한 재상이 딸 셋과 함께 이곳에 들어와 여생을 보냈는데, 세 명의 딸들이 선인으로 변해 바위가 됐다. 대둔산 등반의 하이라이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삼선계단인 만큼 삼선바위 역시 명불허전이다. 병풍처럼 우뚝 선 이 바위의 모습은 ‘딸’의 이미지라기보다는 여장부가 연상된다.
한편 이곳은 동학군 최후의 항전지기도 하다. 동학농민군이 1894년 공주 우금치 전투에 패전한 후 전봉준·김개남 장군은 체포됐다. 남은 이들은 일본군과 관군에 밀려 남하했고, 동학의 접주 급 이상의 지도자 25명이 이곳 대둔산으로 들어왔다. 봉우리와 바위가 천혜의 요새를 만들어줬기 때문이다. 그들은 형제봉 아래 암벽 위에 근거지를 마련하고 3개월 동안 일본군을 상대로 항전을 벌였지만 결국 1명의 어린아이만 남기고 모두 전사하고 만다. 그들을 보호해 주던 바위벽이 자신들을 죽음으로 내 몬 포위망이 된 것이다. 지금은 추모비만 남아 동학항쟁의 넋을 기리고 있다.
이제 정상인 마천대가 남았다. 높이는 878m로 큰 산과 비교할 때 그리 높지는 않다. 그러나 선조들은 ‘하늘을 만질 수 있는 봉우리’라고 할 정도로 이곳을 높은 곳으로 생각했다. 오르는 길이 가파르고 보이는 경치가 장대하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마천대에서 북쪽 능선을 따라 낙조대에 이르는 구간이 장관으로 등산가들에게 인기 있는 코스다. 낙조대는 일출과 일몰이 아름다워 사계절, 아침과 저녁으로 여행자가 끊이지 않는다.
두 얼굴의 대둔산 중 완주 쪽 등반을 마쳤다. 큰 기대 없이 왔다면 놀랄 일이 많았을 것이다. 과연 논산 쪽 산행은 어떨지…. 자연스럽게 새 여행을 계획하게 된다. 파릇한 봄과 단풍 드는 가을에도 그만이라고들 하니 이곳 대둔산은 꼭 다시 오게 될 여행지다.
[여행 정보]
● 대둔산 가는 법
[승용차] 경부고속도로 - 통영대전중부고속도로 - 추부IC에서 ‘진안, 금산’ 방면으로 좌측 - 금산로 - 마전교차로에서 ‘장대리, 전주, 추부, 마전리’ 방면으로 우측 - 숭암로 - 양청사거리에서 ‘전주, 진산, 대전’ 방면으로 좌회전 - 대학로 - 마전사거리에서 좌회전 - 다복로 - 복수삼거리에서 ‘전주, 운주’ 방면으로 좌회전 - 복수로 - 읍내삼거리에서 ‘전주, 운주, 대둔산’ 방면으로 좌측 - 대둔산로 - 대둔산삼거리에서 ‘대둔산’ 방면으로 우회전 - 대둔산 공원길
대둔산도립공원 063-263-9949 입산시간: 오전 7시 ~ 오후 6시 30분 주차료: 승용 2000원 / 경형 1000원 / 버스 3000원
대둔산케이블카 063-263-6621 이용시간: (동절기)오전 9시 ~ 오후 5시 (하절기)오전 9시 ~ 오후 6시 이용요금: (왕복) 소인 5500원 / 대인 8500원 (편도) 소인 3500원 / 대인 5500원
< 주변 여행지 > 장태산자연휴양림: 메타세쿼이아가 시원하게 뻗은 휴양림으로 서울 쪽에서 온 여행자라면 집으로 향하는 길에 들러볼만하다. 휴양림 내 숙박시설이 있어 대둔산 등반 후 이곳에서 숙박을 하고 다음날 산림욕과 휴식으로 여행을 마무리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숲속의 집 6만~35만원 / 숲속 수련장 4만~8만원 대전광역시 서구 장안로 461 / 042-270-7883
< 음식 > 한밭식당: 완주 쪽 입구주차장에서 케이블승강장으로 오르는 길에 있고 손맛 좋은 밑반찬을 즐길 수 있다. 한밭정식 2만원 / 비빔밥정식 1만2000원 / 청국장백반 8000원 전라북도 완주군 운주면 산북리 611-58 / 063-263-9121 태평전주식당: 고들배기, 알타리, 물김치, 묵은지 등 김치 종류가 맛있고, 칼칼한 국물의 능이버섯전골이 시원하게 속을 풀어준다. 자연산 능이전골 4만5000~5만5000원 / 전주 콩나물국밥 7000원 / 산채나물파전 1만2000원 전라북도 완주군 운주면 산북리 611-48 / 063-263-3871
< 숙박 > 대둔산온천관광호텔: 1층과 2층에는 45여종의 미네랄을 함유한 천연 나트륨 유황온천이 있다. 투숙객은 할인가격으로 이용할 수 있다. 객실요금: 7만~25만원 http://www.dhotel.co.kr/전라북도 완주군 운주면 산북리 611-70 / 063-263-1260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12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