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벤처 1세대로 시작해 올해 어엿한 스무살이 된 '청년 기업' 이스트소프트와 지란지교소프트. 이들 회사의 핵심 성장 동력은 바로 사람이다. 작은 회사에서 경력을 쌓은 후 대기업으로 ‘점프’를 노리는 보통의 직장인들과 달리 이 두 회사의 직원들은 자신이 몸담은 벤처에서 회사의 역사를 함께 만들어 냈다. 바꿔 말하면, 강산이 두번 변하는 동안 다른 곳에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이 두 회사의 어떤 매력 때문일까. 평사원으로 입사해 각각 부사장, 부장으로 승진한 이스트소프트 자회사 줌인터넷의 정상원 부사장(38), 오진연(41) 지란지교소프트 컨버전스사업부장에게 그 답을 구해봤다. 정 부사장과 오 부장은 올해로 각각 입사 16주년, 18주년을 맞은 최장기근속자다. 

정상원 줌인터넷 부사장


- 입사 첫날을 기억하는지….

▶ 정상원 부사장(이하 정) = 이스트소프트 첫 출근 날이었던 것 같은데, 그 날을 잊을 수가 없네요. 남부터미널 근처 보신탕집 2층에 자리한 썰렁한 사무실 한가운데 석유난로가 켜 있고 10여명 정도가 옹기종기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병역특례로 입사한 저는 아직 일은 시작하지 않고 사무실 한 켠에 앉아 있었죠. 그 때 사장님(김장중 대표)이 거무튀튀한 작업복을 입고 문을 열고 들어오시면서 “계약 됐어”라고 외치시더군요. 뿌듯한 얼굴로 무용담처럼 계약 과정을 설명하시고(그 당시로서는 꽤 큰 규모의 계약) 직원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같이 기뻐하더군요. 그 순간 “그래 이거야!”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오진연 부장(이하 오) = 처음 지란지교소프트에 갔던 날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아담하고 예쁜 건축사무실 아래층에 사무실이 있었죠. 작은 사무실에 사장님(오치영 대표)과 당시 창업 멤버이자 제 사수인 선배 한 분만 있었어요. 지란지교소프트의 첫 이미지는 회사라는 느낌보다는 랩실에 들어간 느낌이 강했어요. 소박하고 정겨운 그런 이미지요.

- 일반 사원으로 입사해 여기까지 오는 동안 스카우트 제의도 있었을 텐데…

▶ 정 = 운 좋게도 회사의 성장과 더불어 중요한 업무를 맡았고 거기서 성과를 내면서 지속적인 성취감을 맛볼 수 있었습니다. 비록 창업자는 아니었지만 제 기여로 회사를 어디까지 키워보고 싶다는 개인적인 비전이 있었어요. 그러한 비전 아래 저는 제 의견을 열심히 피력했고 회사는 이를 수용해 줬죠. 자연스럽게 책임감이 생기면서 딴 생각할 여유가 없었던 것 같네요.(웃음)

▶ 오 = 저는 이직이라는 것 자체를 생각해보지 않았어요. 창립 멤버는 아니지만 그와 비슷한 개념으로 시작했기 때문에 나름 오너십 같은 것도 있고 제가 맡은 일도 아주 즐겁거든요.

오진연 지란지교소프트 컨버전스사업부 부장

- 이 회사, 오래 다니게 한 매력은 뭔가.

▶ 정 = 흔히 채용을 하거나, 일을 맡길 때 경력자를 신뢰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경험이 많고 검증됐기 때문이죠. 하지만 이스트소프트는 특이하게도 신입 위주의 채용정책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신입들이 회사와 함께 성장하기를 바라면서 어린 직원들에게도 기회를 제공하고 성장한 직원들이 회사의 주축이 되기를 바라는 문화입니다. 그래서 호봉제를 채택하고 있어요. 이러한 정책 때문인지 회사의 일과 본인의 비전을 일치시키는 친구도 많고 어린 나이지만 중요한 일들을 맡는 경우가 드물지 않습니다. 실제로 지난해 해외게임사업 부문장의 직급이 ‘대리’였습니다.

▶ 오 = 지란지교소프트의 매력은 타 직장에 비해 자신이 가진 열정과 의지를 풀어내기에 좋은 환경을 갖추고 있다는 겁니다. 사장님께서도 저에게 그런 기회들을 주셨고 저 또한 팀원들에게 그같은 기회를 많이 주려고 해요. 비교적 자유로운 조직문화, 각자에 맞는 꿈을 찾고 그걸 이루기 위한 열정도 함께 가질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 이 조직의 매력이라고 봅니다. 


- 오랜기간 근무하면서 어려웠던 시기도 있었을 법 한데….

▶ 오 = 2002년 말에서 2003년 초 회사가 경제적으로 아주 힘들었던 적이 있었죠. 당시 어쩔 수 없이 구조조정을 진행했는데요. 그때 함께 비전을 공유하던 직원들을 좋은 조건으로 보내주지 못해 가장 힘들었습니다.

▶ 정 = 재작년 말 PC환경에서 모바일로의 급격한 변화, 마케팅 비용증가, 기존사업의 정체, 내수위축 등이 겹치면서 10년만에 처음 분기 적자를 보게 됐습니다. 줌닷컴, 카발2 등 차세대 성장동력에 대한 투자로 비용이 많이 증가한 후에 인과적으로 견뎌야 하는 충격이었음에도 처음 겪는 재무재표상의 마이너스에 경영진들이 위축됐던 것 같아요. 그 때 제2의 도약을 위한 바닥을 다졌다는 생각이 듭니다.

- 대한민국 SW벤처에서 일한다 게 녹록지 않다는 하소연도 많다.


▶ 정 = 기회는 충분히 존재하지만 미국이나 영미권처럼 그 기회가 결실로 이어지는 확률은 떨어지는 곳이 한국입니다. 한국과 미국, 영미권 시장은 그 크기가 다르고 자본조달을 하는 국내 VC들의 리스크에 대한 자세도 다릅니다. 국내에서 일하기 때문에 생기는 불리함은 무시할 수 없어요. 국내 SW벤처들이 시시각각 전해듣는 실리콘밸리의 풍성함을 정서적으로 수용하되, 발을 내딛고 있는 현실을 냉정히 판단해야 합니다.


▶ 오 = 초창기에는 외부 미팅을 하거나 영업을 할 때 기업의 '네임밸류'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벤처기업만의 장점도 아주 많더군요. 의사결정이나 업무진행 등에 있어 발휘되는 기동성 같은 것들 말입니다. 오너십에 있어서도 벤처만의 장점이 있고요. 이런 이유들 때문에 대기업에서도 벤처정신을 배우려고 하는게 아닐까요.

- 대기업 이직을 꿈꾸는 이들에게 조언을 한다면….

▶ 오 = 사람은 모두 자신만의 로드맵이 있을 것이고 그 로드맵에 따라 행동할 때 항상 자신만의 방향성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방향성 없이 돈만 보고 따라가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어요. 항상 자신만의 방향성을 유지하고 열의를 갖고 업무에 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 정 = 이직하는 것 그 자체에 대해 크게 반대하진 않아요. 한 회사에서 경력을 쌓은 친구가 다른 회사로 이직해 그 곳에서 자리잡고 이전 회사와의 인연으로 좋은 사업기회를 마련한다든지, 다른 조직과의 자연스러운 네트워크를 만들어 갈 수 있으니까요. 다만 본인만의 비전 없이 단지 커리어나 연봉을 위해 더 나은 스펙의 회사로 옮기는 것은 경계해야죠. 충분한 고민과 결심 없이 자주 회사를 옮기는 것도 문제가 있고요. ‘연봉’과 ‘회사’가 목표가 되는 것은 본인에게 아까운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21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