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5일은 북한 김일성 전 주석의 생일인 태양절(102주년)이며 열흘 뒤인 25일은 북한군 창건일이다. 김일성 주석이 지배하던 시대와 그의 손자인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지배하는 시대는 무엇이 다를까.
최근 4차 핵실험 가능성을 시사하며 으름장을 놓고 있듯이 기회가 될 때마다 한반도의 긴장을 높이는 것은 과거와 다르지 않다. 냉전시대가 끝나고 글로벌시대가 됐음에도 불구하고 '부르주아세력 타파'와 '자본주의 타도'를 외치는 것도 여전하다.
지난 4월7일 노동신문은 '부르주아 사상문화를 혁명적인 사상공세로 짓뭉개야 한다. 반동적 부르주아 사상문화는 별의별 화려한 비단 보자기를 뒤집어쓰고 사람들을 부패와 타락으로 끌어가는 반혁명적이며 반인민적인 사상독소다'라고 규정했다.
그러나 북한의 내부사정을 들여다보면 과연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는지 의구심이 든다. 내부적으로는 달라도 확연히 달라졌다. 최근 국내언론에 따르면 북한사회에 시장이 활성화되는 등 자본주의 요소가 유입되면서 신흥 부유층과 부르주아계급이 형성되고 있다. 가족 월수입이 3400달러를 초과하면 꽤 부유한 편이고 수천달러에 달하면 아주 부유한 쪽에 속한다(2013.11.15. 연합뉴스).
신흥 부유층은 평양시내에 대형아파트를 소유하며 일반 국민들과는 차원이 다른 생활을 한다. 북한에서는 사치품에 해당하는 냉장고·에어컨은 물론 LCD TV, 중국제 가구, 컴퓨터 등도 부유층의 필수품이 됐다. 실제로는 사용하지 않는 가전제품을 과시용으로 구비하기도 한다. 고급식당에서는 일반주민의 한달치 수입에 해당하는 돈으로 외식을 즐기기도 한다. 승용차는 상위 0.1%가 탐내는 품목이다.
미국의 북한전문매체 NK뉴스는 북한문제 전문가인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 교수의 기고를 실었다. 란코프 교수는 기고문에서 "북한은 초기 자본주의 단계로, 새로운 부르주아계층이 형성되고 있으며 빈부 간 격차가 점점 커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90년대 중반만 해도 북한의 부유층은 당 간부나 정부관료로 국한됐지만 대기근을 겪은 이후에는 민간인들 중에서 한몫 잡은 거부와 중산층 기업가가 생겨난 것이다. 란코프 교수는 "민간경제를 활성화하는 것이 북한정권으로서는 달갑지 않지만 국가 핵심관료들은 시장을 통해 재산을 축적한 부유층과 한배를 탄 처지가 됐다"고 주장했다.
◆北 부동산가격 급등과 양극화
자본주의 국가에서 볼 수 있는 부동산가격의 급등과 고가주택으로 인한 양극화 또한 북한에서도 나타나는 현상이다. 평양의 중심가에 방이 3개 있는 아파트의 가격이 고위층들 사이에서 8만달러(약 8620만원)에 거래된다는 보도가 나온 적이 있다(2012.12.11. 자유아시아방송(RFA)).
같은 지역에서 비슷한 크기의 아파트값이 2006년에는 1만달러(약 1077만원)였다고 하니 6년 만에 최대 8배나 가격이 급등한 셈이다. 국가가 호화 아파트를 지어 부자들에게 파는 가격이 최근 들어 평양시의 경우 10만달러이며 지방도시는 5만달러나 된다(2013.11.17. 채널A 뉴스. 경민대 북한학과 강명도 교수).
어려운 전력사정에도 불구하고 평양 창전거리를 비롯한 중구역은 24시간 전기가 공급된다. 평양에서 대동강을 바라보는 조망권을 갖춘 방 3개짜리 아파트에서는 전기와 물 공급이 매우 원활하다고 한다. 화장실에는 욕조가 있고 물 가열기를 설치해 샤워할 수 있는데, 이는 전기가 자주 끊기고 물이 잘 나오지 않는 평양 외곽지역의 아파트와 대조적이다. 한 탈북자는 일반인이 사는 아파트의 경우 전기가 끊겨 엘리베이터가 작동하지 않는 때가 많기 때문에 고층에 사는 것을 기피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전기가 하루에 5시간가량 들어오는 선교구역이나 동대원구역의 방 3개짜리 아파트가 1만~1만5000달러에 거래되는 점을 감안하면 북한의 아파트가격은 전기가 들어오는 시간에 연동하는 것 같다.
지난해 7월14일에는 평안남도 평성시에서 42세대가 입주한 7층짜리 아파트가 붕괴돼 어린이 9명 등 주민 16명이 숨지고 수십명이 다쳤다. 완공된 지 2년밖에 안된 아파트가 부실시공 때문에 사고가 난 것으로, 평양의 부유층 아파트와의 차이를 느낄 수 있다. 이전에도 양강도 혜산시에서 7층짜리 아파트가 붕괴돼 수십명의 사망자와 부상자가 발생한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반면 평양에서는 지난 김일성 주석 탄생 100주년 즈음에 상대적으로 낙후된 지역의 재개발사업을 적극 벌였다. 이는 북한 전체의 중심지역인 평양을 새롭게 단장해 대외적으로 강성대국의 시각적인 효과를 극대화하려는 의도로 볼 수 있다. 또한 북한의 핵심계층인 평양주민들을 우대함으로써 체제 결속을 다지는 효과를 노린 것으로 해석된다.
◆지방주민 빈곤, 평양주민 특별대우 '평양공화국'
북한의 경제사정상 재원과 인력은 지극히 제한적이다. 그럼에도 평양에는 많은 예산을 투입해 '평양공화국'이란 말도 생겨났다. 지난 2009년 김정은 제1국방위원장이 후계자로 내정된 이후 평양을 우대하는 정책이 더욱 강화됐다.
김정일 위원장은 평양 주민들에 대한 각종 시혜조치를 적극 전개할 것을 지시하면서 평양의 식수·난방·전기 문제를 최우선으로 해결하라고 주문했다. 지방은 옥수수의 배급도 여의치 않은데 평양주민에게는 매달 쌀을 배급한다. 식량·전력·주택·상품 공급 등 모든 면에서 평양주민들은 특별대우를 받는다. 귀족도시인 평양의 주민들에게는 시민증을 주고 지방주민들에게는 공민증을 줘 주민의 신분까지 차별한다. 평양시민이 지방에 사는 사람과 결혼하면 평양에서 살 수 없게 하는 등 평양이 특권층으로만 채워지도록 하고 있다.
평양의 뉴타운으로 불리는 평양시 창전거리에는 45층짜리 초고층아파트와 각종 문화시설이 대거 들어섰다. 창전거리에는 당의 주체적인 건축미학사상을 구현한 인민극장, 해외의 유명수영장을 본 따 만든 만경대 물놀이장 등이 들어서 조형화·예술화·공원화가 훌륭히 실현됐다고 '조선중앙TV'가 보도하기도 했다.
현대적 시설을 갖춘 평양의 보통강백화점에서는 여성용 해외명품가방은 물론 외제 기저귀까지 판매한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이탈리아 요리를 좋아하는 데 부응해 피자, 스파게티 등을 판매하는 이탈리안 레스토랑도 2009년 북한에서 처음으로 개점했다. 부유층의 소비욕구를 충족시키는 서구형 고급상점 역시 평양에서는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특히 지난해 5월 평양시내에 문을 연 '해당화관'은 최고 상류층을 겨냥한 '소비의 성지'라고 한다(중국관영 신화통신이 발행하는 시사잡지 <환구>). 해당화관에는 쇼핑시설을 비롯해 음식점, 헬스클럽, 수영장, 사우나, 안마시술소, 미용실 등을 두루 갖췄다.
이곳은 평양의 다른 곳보다 50% 정도 가격이 비싸지만 상류층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해당화관는 한번 갈 때마다 100달러가량을 쉽게 쓰는 고급시설임에도 평양의 상류층이 애용하는 곳이다. 중국의 기자들은 해당화관에서 만난 북한 상류층의 외모나 행색이 베이징이나 상하이의 상류층과 구별하기 힘들 정도라고 전했다.
북한 최고의 고급명소는 해당화관이 개관하기 전까지 대동강외교단회관이었는데 해당화관에 대응해 새로운 전략을 내놓으며 고객을 유치하고 있다.
/사진=머니투데이DB
◆심각한 부익부 빈익빈의 신음
공산사회주의가 이론적으로는 다 같이 잘 살거나 다 같이 못 사는 사회라는 점을 감안하면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화되는 북한사회는 이론을 뛰어넘는 곳이다. 지방의 노동자와 농민들은 끼니를 이어가기도 힘들 정도로 궁핍한 생활을 하며 굶어 죽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고 하는데 평양의 부유층, 즉 특권층은 자본주의 사회의 자본가 흉내를 내며 호화스러운 생활을 하기 때문이다. 북한이 과연 공산사회주의 국가로서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처한 것인지 의문스럽다.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부르짖으며 이른바 부르주아를 반동으로 규정하던 사회가 맞나 싶다.
부익부 빈익빈 현상은 명절 때 더 뚜렷하다. 1990년대 초까지는 설날이 되면 일반국민에게 돼지고기, 야채, 식용유, 술 등이 배급돼 차례상에 올라오는 음식이 넉넉했다. 이때는 가족들이 모여 술과 음식을 먹으며 민속놀이를 즐기는 명절의 분위기가 있었다고 탈북자들은 전한다. 하지만 1990년대 후반부터는 명절 배급이 중단되고 상황이 달라지면서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뚜렷해졌다.
상류층은 시장에서 설음식을 구입할 수 있지만 일반주민들은 엄두도 내지 못해 명절 분위기가 사라졌다는 것. 먹고 사는 어려움이 적은 가정에서는 차례를 지낼 때 그나마 옥수수밥이라도 올려놓지만, 상당수의 가정에서는 옥수수밥조차 올리지 못한다고 한다.
김일성 전 주석의 생일인 태양절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생일인 광명성절에는 경축 분위기를 대대적으로 띄우지만 전통의 민속명절에는 많은 사람들이 빈곤하게 지낸다.
이처럼 주민 간 빈부격차가 벌어지면서 양극화가 심화되는 것은 북한 미래사회의 불안요소다. 신흥 부르주아가 등장하고 물적 불평등이 심화되는 것은 결국 북한 사회의 변화를 야기할지도 모른다.
프랑스혁명도 부르주아에 대한 국민의 불만 때문에 일어났다. 북한에서 정권을 지키고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있지만 역사가 어떤 방향으로 순리에 따라 흘러갈지 두고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