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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이 '악플'(악성댓글)이라는 '악성코드'에 감염됐다. 어린 학생들을 포함해 수많은 목숨을 앗아간 세월호 참사로 전국민이 비탄에 빠진 상황에서도 이 악성코드는 끈질기게 생명력을 이어나가고 있다. 판사의 망치에 두드려 맞고 '위헌'을 선고 받은 '인터넷 실명제'까지 해결책으로 다시 거론된다. 하지만 '악플'로 멍든 한국사회를 치료할 '백신'으로 사용하기엔 부작용이 너무나 크다. <머니위크>는 세월호 참사로 다시금 불편한 존재감을 드러낸 악플의 영향력과 문제점, 그리고 그에 대항할 '진짜 백신'을 여러 각도에서 모색했다.
초등학생 A양(8)은 지난해 겨울,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텔레비전에 내가 나왔으면~'의 꿈을 이뤘다. 합창단의 일원으로 크리스마스 행사에 참여한 모습이 각종 방송과 신문, 인터넷 등으로 널리널리 퍼져나간 것. 하지만 이날의 '예쁜 추억'은 악성댓글들로 인해 얼룩져 버렸다.
A양의 어머니는 "초등학생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모습을 보고도 악성댓글을 다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에 충격을 받았다"며 "아줌마 같다는 비하 발언에서 심지어 성적 모욕 발언까지 도를 넘은 내용이 많아 가슴을 쳤다"고 말했다.
'정보의 바다' 인터넷에 온갖 욕설들이 둥둥 떠다닌다. 사이버 소통공간이 악성댓글(악플)로 몸살을 앓고 있는 것. '사이버 악마'들의 공격은 유명 연예인은 물론 일반인까지 그 대상을 가리지 않는다. 때와 장소도 제한이 없다. 국가적 재난사태를 비롯해 위안부 할머니의 별세 소식 등에도 유족을 경악케 하는 댓글이 줄줄이 달린다.
한국인터넷진흥원(KISA)은 악성댓글을 작성하는 원인이 연령대별로 큰 차이가 있다고 진단한다. 지난 2012년 발표한 '인터넷 윤리문화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만 12~59세 국내 인터넷 이용자는 '분풀이형 악플', '반박형 악플'을 주로 달았다. 악성댓글을 작성하는 원인으로 '기분이 나빠져서'(48.6%), '다른 사람의 의견에 반박하고 싶어서'(47.8%)라는 응답이 많았다.
반면 초등학생들은 '심심풀이 악플'을 주로 작성했다. 초등학생은 '재미나 호기심 때문'(47.5%), '다른 사람들도 많이 하기 때문'(45.5%)이라고 주로 응답했다.
방송통신위원회가 지난해 사이버폭력 실태를 조사한 결과도 이와 유사하다. 악플을 다는 이유에 대해 초등학생은 '단순한 재미 때문'(45.7%)에, 중ㆍ고교생은 '상대방이 싫어서'(중학생 68.2%, 고등학생 64.1%)라고 답한 경우가 많았다.
특히 주목할 점은 악성댓글로 인해 상대방이 입을 피해에 대한 인식이 매우 낮다는 것. 한국인터넷진흥원의 '2013년 사이버폭력 실태조사'에 나타난 결과는 타인의 아픔에 무감각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사이버폭력 가해 경험이 있는 초·중·고교생의 2명 중 1명은 가해 후 ▲그냥 재미로 한 것이어서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초등학생 25.7%, 중학생 11.3%, 고등학생 17.2%) ▲아무런 느낌이 없다(초등학생 20%, 중학생 28.7%, 고교생 24%)고 답했다.
이에 반해 '상대방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고 응답한 비율은 초·중·고생 모두 20%대에 머물렀다. 악성댓글로 상대방에게 피해를 줘도 미안해하거나 반성을 하는 경우가 드물다는 결과다.
◆ 타인의 시선에 대한 과민함, 악플 부추겨
전문가들은 악성댓글이 범람하고 타인의 고통에 대해 무감각한 양상을 보이는 것은 침체된 사회 분위기와 연관성이 깊다고 진단한다. 사회학자인 김찬호 교수(성공회대 초빙교수)는 최근 저서 <모멸감>(문학과 지성사 펴냄)을 통해 이러한 현상을 우리 사회의 고도성장 후유증으로 해석했다.
한국의 근대화는 선진 산업사회를 재빨리 따라잡는 것을 목표로 긴박하게 추진됐다는 것. 고도 성장기에는 상승이동의 즐거움으로 그런 부실함이 상쇄될 수 있었지만 저성장 단계에 접어들면서 사회의 약한 고리에서 파열음이 나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악성댓글 문화를 비롯해 왕따, 가족해체, 우울증 등이 그러한 후유증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악플러들 중에는 피해의식이나 열등감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다"며 "아무에게도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해 무력감에 시달리는 사람일수록 공격적인 발설로써 자기 효능감(self-efficacy)을 느끼려 한다"고 설명했다.
손석한 연세신경정신과 원장 역시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도태된 이들이 열등감이나 사회에 대한 불만을 악성댓글 등으로 표출하는 것"이라며 "악플러들이 상대방의 아픔에 공감하지 못하는 원인 또한 '반사회성'에 기인한다"고 풀이했다.
'인정'에 대한 욕망이 유달리 큰 한국인의 특성도 무분별한 댓글 양산의 한 원인으로 꼽힌다. 타인에 대해 필요 이상의 관심을 보이면서 참견하고 타인의 영역을 침범하려 한다는 것. 또 자기에 대한 타인의 평가와 반응에도 지나치게 민감하게 반응해 악플러들을 오히려 활개치게 만든다고 김 교수는 지적했다.
"악플러의 자기 효능감은 상대방의 반응에 좌우된다. 마구 욕을 퍼부었는데 상대방이 별로 개의치 않는다면 계속할 마음이 사라질 것이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약을 올리면 상대방이 발끈하고 움츠러들고, 사회가 요동을 치기도 하면서 악플러들은 쏠쏠한 재미를 맛볼 수 있다."
김 교수는 "상대방의 평가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사회에 대한 불만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바쁜 삶 속에서도 자신을 돌아보는 분위기가 형성돼야 한다"고 말했다. 타인들의 시선과 평가에 과민하기보다 자기 자신에 집중하는 시간을 가져보라는 것. 명상을 하든 자신의 존재가치를 돌아보는 것이 긍정적인 개인주의 형성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견해다.
일각에서는 사이버세상의 정서순화를 위해 악플에 맞서는 선플 운동을 효과적인 대응방안의 하나로 제시한다. 민병철 건국대 교수는 제자들과 함께 지난 2007년부터 악플로 괴로워하는 이들에게 따뜻한 위로와 격려를 보내기 위해 선플 달기 운동을 펼치고 있다.
손 원장은 "사람들이 부정적인 표현을 하는 데는 적극적인 반면 긍정적인 얘기를 쓰는 데는 소극적인 경향이 있다"며 "의식 있는 사람들이 선한 댓글로 사회 갈등이나 편 가르기를 해소하는 분위기를 주도해 가는 것이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30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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