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금융그룹 회장과 KB국민은행장이 내분에 휩싸이면서 '금융지주' 무용론이 확산되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저금리와 대기업 부실 등으로 한국금융이 침체된 상황에서 금융지주 회장과 은행장 간 불협화음까지 겹쳐 금융지주가 오히려 금융산업 발전을 저해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


그렇다고 당장 금융지주제도를 폐지할 수도 없는 일. 전문가들은 전세계적으로 금융사들이 금융지주체제로 가고 있는데 우리나라만 폐지한다면 자칫 한국금융이 지금보다 더 퇴보할 수 있다고 우려를 표한다.

따라서 국내 금융환경에 맞는 선진화된 금융지주제도를 도입하려면 내부체계부터 조금씩 손을 봐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금융지주 회장의 권한을 지금보다 더 강화하고 회장과 은행장의 권한을 분리해 서로 협업할 수 있는 방안마련이 시급하다는 것이다. 금융당국도 이러한 움직임에 적극 동참하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이르면 6월 중 금융회사 지배구조 개선안을 발표할 계획이다.


◆금융지주 도입 13년… 출범 초기부터 내홍

금융지주는 은행·보험·카드·증권·캐피탈 등 금융계열사를 지배할 목적으로 설립된 회사다.

우리금융은 2001년 한빛·평화·광주·경남은행 등 4개의 은행과 하나로종금 등 5개의 계열사를 두고 국내 첫 금융지주사를 설립했다. 이후 신한금융(2001년)·하나금융(2005년)·KB금융(2008년)·SC금융(2009년)·산은금융(2009년)·한국씨티(2010년)·BS금융(2011년)·DGB금융(2011년)·농협금융(2012년)·JB금융(2013년) 등이 속속 설립됐다. 다만 이 중 씨티금융은 오는 9월께 지주회사를 해체하고 은행으로 되돌아갈 계획이다.


금융지주 무용론이 나오는 이유는 크게 두가지다. 해외진출이 더딘 상황에서 은행이 금융지주 전체의 80~90%를 차지해 지주 회장이 담당할 역할이 없다는 것이 첫번째 이유다.

금융지주는 2001년 글로벌 금융그룹으로의 도약을 위한 컨트롤타워 역할을 위해 설립됐다. 하지만 국내 은행들의 해외진출이 지지부진하다보니 행장의 권한만 회장과 나눠야 하는 상황이 됐다는 것이다. 따라서 양측의 권력 싸움은 불가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임영록 KB금융지주 회장 /자료사진=머니투데이
낙하산 출신 회장과 행장의 알력다툼도 지주회사 무용론에 힘을 싣는다. 실제 KB금융지주와 우리금융지주, 신한금융지주 등 국내 대형 금융지주는 모두 회장과 은행장 간 갈등을 겪었다.

우리금융은 출범하자마자 윤병철 전 우리금융 회장과 이덕훈 전 우리은행장이 차세대 전산시스템을 두고 수차례 마찰을 빚었다. 이후 박병원 전 회장과 박해춘 전 행장 체제로 이어지면서 갈등이 이어졌고 MB정권 시절 '금융권 4대 천왕'으로 꼽히던 이팔성 회장 때 극에 달했다.


KB금융 역시 출범 당시 황영기 전 회장과 강정원 전 행장이 불편한 관계를 이어갔다. 2010년에는 신한금융 라응찬 전 회장과 이백순 전 행장이 신상훈 전 사장과 갈등을 벌였으며 이는 동반퇴진이라는 불명예로 막을 내렸다.


 
◆회장 권한 높이기… 해답은 매트릭스?

회장과 행장의 불협화음을 최소화할 수 있는 전략 중 하나는 매트릭스제도 도입이다. 매트릭스란 계열사 내의 동일한 조직업무를 한곳으로 통합하고 조직간 협업을 유도하는 수평적 조직체계를 말한다. 임원 한명이 은행과 증권의 기업금융부문을 총괄하면서 기업고객으로 하여금 대출은 계열은행에서, 채권 발행은 계열증권사에서 받도록 하는 식이다.


실제 하나금융은 매트릭스 도입 이후 체계적인 시스템을 구축했다. 특히 회장이 하나은행장과 외환은행장 선임에 직접적으로 관여하면서 금융지주와 은행의 서열 관계가 확실해졌다는 평을 받았다.

하지만 대부분의 금융지주사에서는 메트릭스제도가 한국의 조직문화와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제대로 정착되지 않았다. 오히려 우리금융은 매트릭스 도입을 놓고 지주 회장과 은행장이 정면충돌하기도 했다. 은행장 입장에서는 조직이 기능 위주로 재편되면 자신의 권한이 약해질 것을 우려한 것이다.

노진호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연구위원은 "하나금융의 매트릭스제도는 현재 국내 금융지주사에서 성공적인 케이스로 꼽힌다"며 "글로벌 금융그룹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이러한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하는 금융지주가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건호 국민은행장 /자료사진=머니투데이
◆금융지주제도 어떻게 달라지나

이처럼 금융사별로 금융지주에 대한 뾰족한 해법을 찾지 못하자 금융당국이 금융지주제도를 변경하기로 했다. 이는 지난해 11월 발표한 금융업 경쟁력 강화방안에 따른 후속조치가 될 것으로 보인다.

우선 금융지주 회장이 경영관리위원회나 위험관리협회를 거쳐 자회사에 권한을 행사하도록 할 방침이다. 지주사의 책임은 강화하되 권한은 시스템을 통해 투명하게 행사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또 금융지주사가 100% 지분을 보유한 완전 자회사의 경우 사외이사를 없앨 계획이다. 아울러 자산 측면에서 은행을 빼면 껍데기 수준인 금융지주의 체질 개선도 장기적으로 검토된다. KB금융과 하나금융의 경우 은행자산이 전체 자산의 90%에 달한다. 우리은행과 메리츠화재의 순익은 해당 금융지주 전체보다 많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쏠림현상으로 인한 마찰을 줄이기 위해 회장의 권한과 책임을 강화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설명했다.

 

Interview / 연강흠 연세대 경영학 교수

 

"투톱 역할·이사회, 교통정리 필요"

 

연강흠 연세대 경영학 교수
- 국내 금융지주의 문제점은 무엇인가
▶금융지주는 자회사를 통제하며 균형 있게 발전할 수 있도록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런데 금융지주 계열사 중 은행이 차지하는 비중이 80%를 넘어 회장과 행장의 권한 및 역할이 모호하다. 이는 글로벌 은행으로서 도약할 수 있는 발판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은행도 하나의 회사인데, 여기에 금융지주사를 만들고 증권사와 카드사까지 만든 것이다. 사실 지금은 지주사 없이 은행만 있어도 운영이 가능하다.

- 효율적인 운영방식은?
▶금융지주를 없앨 수는 있다. 카드사나 보험사 등을 은행 자회사로 두면 된다. 씨티금융도 9월께 지주회사를 해체하고 은행으로 되돌아갈 계획이다. 하지만 이는 미래지향적이지 않다. 각 계열사별로 균형있는 발전을 위해서는 금융지주의 역할이 필요하다. 다만 CEO간 불협화음을 없애려면 금융지주 이사회는 그대로 두고 은행 이사회를 없애야 한다. 굳이 이사회가 은행과 지주에 중복될 필요가 없다. 어차피 금융지주의 100% 자회사가 아닌가. 의사결정은 지주에서 해도 된다. 또 우리금융처럼 금융지주 회장과 은행장을 겸임하게 하는 것도 좋은 방법 중 하나다.

- 회장·행장 겸임 반대론도 많은데
▶회장과 행장이 겸임을 오래 하면 안된다. 지금은 국내 금융지주사의 규모가 크지 않아 겸임을 통해 시너지를 내는 것이 오히려 현명하다고 본다. 이후 금융사의 규모를 점점 키워 회장과 행장 역할을 만들어야 한다. 어떤 문제가 터지면 지주에서 해결할 사안인지, 은행에서 처리할 문제인지 명확해져야 한다. 금융지주사의 설립목적이 글로벌 금융사로의 도약이라는 점을 인지해야 한다.

- 해외는 어떤가


▶씨티그룹은 오퍼레이션부문장, 리테일 등 매트릭스제도를 도입했다. 따라서 각 부문별로 CEO가 있다. 따라서 은행이 전체 금융지주 계열에 90%를 차지하더라도 큰 문제가 없다. 은행을 장악하는 사람이 한명의 경영진이 아니라 리테일부문, 기업부문 등 각 부문별로 나눠 CEO가 체계적으로 관리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서로 겹치지 않게 운영하기 때문에 지주 회장도 쉽게 통솔할 수 있다. 물론 이는 씨티그룹이 글로벌그룹이라서 가능한 일이다. 씨티그룹도 자국내에만 머문 상황이라면 우리와 비슷할 수 있다. 따라서 국내 금융지주사도 국내에서만 수익을 낼 생각을 하지 말고 해외경쟁력을 갖춰야 한다. 금융지주사들이 제 역할을 못하는 이유는 미국의 씨티그룹이나 웰스파고처럼 해외경쟁력을 갖추지 못해서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34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