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년간 어느 화가의 그림가격이 가장 많이 올랐을까. 국내에서 가장 인기 있는 여류화가인 천경자 화백이 그 주인공이다. 2003년 호당 1000만원대였던 작품이 지금은 호당 3000만~4000만원대를 호가한다.

1924년 11월11일 전남 고흥군에서 출생한 천 화백은 만 90세다. 그런데 지난 6월12일 '사라진 천경자 화백…가족 생사여부 확인 거부, 무슨 일이?'란 제목의 보도가 나왔다(MBC 뉴스데스크). 독자적인 화풍으로 사랑받았던 천경자 화백이 1998년 큰 딸이 있는 미국 뉴욕으로 떠났고 큰딸 이모씨가 돌보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지난 10년간 만났다는 사람이 없자 미술계에선 이미 사망했다는 소문까지 돌았다는 게 보도내용이다.

지난 1월 대한민국예술원이 회원인 천 화백의 근황 확인을 위한 의료기록 등을 요청했지만 큰딸 이모씨는 명예훼손이라며 자료제출을 거부했다. 결국 예술원은 회원 수당(매달 180만원) 지급을 중단했다. 천 화백의 딸은 어머니가 죽었다는 유언비어로 더 이상 상처받고 싶지 않다며 이례적으로 예술원 회원 사퇴서를 냈다. 뉴욕영사관에서도 천 화백과 접촉을 시도했지만 큰딸은 여전히 어머니의 근황을 공개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예술원 회원은 예술가에게 최고의 영예로, 회원자격이 까다롭다. 예술경력 30년 이상으로 예술발전에 현저한 공적이 있어야 하며 예술원 회원들이 투표해 3분의 2 이상이 찬성해야 한다. 정원이 25명으로 고정돼 있으며 기존 회원이 작고하거나 결원이 생겼을 때만 충원한다. 국고에서 일정수당도 매달 지급한다. 천 화백은 1978년 예술원 회원이 됐다.

10년 넘게 투병 중인 천 화백을 돌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큰 딸은 "예술원이 어떻게 하든 신경 안 쓰겠다"며 "그저 어머니가 옆에 계신 것으로 만족한다"고 말했다.

서울시립미술관 2층의 '천경자 상설 전시관'에는 천 화백이 1998년에 기증한 작품 90여점이 전시돼 있다. 지난해 초 한국을 방문한 이씨가 '관리 소홀' 등을 이유로 서울시에 기증작품의 반환을 요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추징금 환수를 위해 압수된 천경자 ‘여인’. /사진제공=서울중앙지검

 
◆위작 논란에 창작활동 접은 여류 화가

천경자 화백은 화려한 채색과 상징성을 기반으로 독특한 작품세계를 일군 한국의 대표 여성화가다. 일찍이 30여년간 해외여행을 다니며 이국의 색다른 자연과 풍물들을 꼼꼼히 스케치했다. 해외여행에서 느낀 이국적 정취는 완벽에 가깝도록 치밀한 채색작업을 통해 작품으로 탄생했다.

특히 꽃과 여인을 소재로 한 작품들이 유명해 '꽃과 여인의 화가' 또는 '꽃과 영혼의 화가'라고도 불린다. 1969년 이탈리아여행의 감흥을 3년에 걸쳐 작품으로 옮긴 '이탈리아 기행'을 비롯해 1979년 인도·멕시코·페루·아르헨티나·브라질·아마존 유역 등 중남미 여행 후의 화려한 채색화는 보는 사람을 즐겁고 아름다운 환상의 세계로 빠져들게 만든다.

여행 풍물화 중에는 미국 뉴욕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 많은데 뉴욕은 1969년 첫 해외 스케치여행을 시작한 이래 1990년대 후반까지 계속 여행한 곳이다.

독특한 화풍의 독자적인 경지를 개척한 천재 화가인 천경자 화백은 비운의 작가라고도 할 수 있다. 한국미술계 최대의 미스터리인 '미인도' 위작사건으로 큰 상처를 받고 절필을 선언한 채 미술계를 떠났기 때문이다.

이 사건은 국립현대미술관이 소장한 천 화백의 채색화 '미인도'(26×26cm, 4호 크기)를 1991년 아트포스터로 복제해 판매하면서 시작됐다. '경자 1977'이라고 사인이 된 미인도가 대량 프린트돼 여기저기 걸려있는 것을 사람들이 보던 중 복제품이 이상하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천 화백은 국립현대미술관의 소장작품과 복제품을 살펴본 결과 자신의 그림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의 진위시비는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세간의 상당한 관심을 끌었다. 필자도 당시 모 잡지를 통해 천 화백이 자신의 그림이 아닌 이유를 구체적으로 설명한 것을 흥미롭게 읽어봤다.

"내 작품은 내 혼이 담겨 있는 핏줄이나 다름없습니다. 자기 자식인지 아닌지 모르는 부모가 어디 있습니까. 나는 결코 그 그림을 그린 적이 없습니다. 나는 절대 머릿결을 새카맣게 개칠하듯 그리지 않아요. 머리위의 꽃이나 어깨 위의 나비 모양도 내 것과는 달라요. 작품 사인과 연도 표시도 내 것이 아닙니다. 난 작품 연도를 한자로 적는데 이 그림에는 아라비아 숫자로 적혀 있어요. 내가 낳은 자식을 내가 몰라보는 일은 없습니다."

이 같은 반박에도 불구하고 미술관 측은 현미경 분석과 X선 촬영 등의 과학적인 방법을 통해 종이·물감 등을 정밀 감식한 결과 진품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이 작품은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의 소장품으로, 박정희 대통령 시해사건 뒤 김재규 재산이 국가에 환수될 때 재무부와 문공부를 거쳐 미술관으로 넘어온 경위가 확실하다는 근거도 내세웠다.

한국화랑협회의 감정위원회 역시 국립미술관 측의 손을 들어줬다. 한국화랑협회에는 '생존작가이고 정신상태에 문제가 없는 작가라면 작가의 의견을 우선순위에 둔다'는 내부규정이 있다. 결국 천경자 화백은 자신의 작품도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정신에 문제가 있는 사람으로 매도당하며 극심한 정신적 고초를 겪다가 창작활동을 중단하기에 이르렀다.

"붓을 들기 두렵습니다. 창작자의 증언을 무시한 채 가짜를 진짜로 우기는 풍토에서는 더 이상 그림을 그리고 싶지 않습니다"라는 말을 남기고 큰딸이 있는 미국으로 떠났다.
 
◆미궁에 빠진 국립현대미술관 위작 스캔들

천 화백은 1998년 한국을 영영 떠날 때 93점의 작품과 화구를 서울시립미술관에 기증했다. 그런데 1999년 '미인도'를 위조했다는 사람이 나타났다. 고서화 위작 및 사기판매사건으로 구속된 동양화 위조범 권모씨가 검찰 수사과정에서 1991년 위작 시비를 낳았던 천 화백의 '미인도'는 1984년에 자신이 만든 것이라고 진술한 것이다. 그는 "화랑을 하는 친구의 요청에 따라 소액을 받고 달력 그림 몇개를 섞어 '미인도'를 만들었다"고 밝혔다.

이에 국립현대미술관은 8년 전 감정을 뒤집을 만한 근거가 없다며 일축했다. 작품을 인수한 시점인 1980년 5월이 위조했다는 시점인 1984년과 불일치하고 위조자가 수묵화 전문이기 때문에 천 화백의 채색화를 위조하기는 힘들다는 이유를 내세웠다.

"동양화 위조범과 현대미술관 중 어느 쪽을 믿느냐"는 반문도 있었다. 검찰은 미술품 위조사건의 공소시효가 지났고 위조범의 증언을 신뢰하기 어려워 '미인도'의 진위에 대한 수사를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국립현대미술관 소장작품이 가짜로 밝혀졌다면 한국미술사 최대 스캔들로 번질 뻔한 불씨는 이렇게 사그라졌다. 사건의 진실은 공소시효 만료로 밝혀지지 못하고 미궁에 빠진 사건으로 인해 창작활동을 접어야 했던 비운의 천재 화가는 말년을 불행하게 살다가 세상에서 자취를 감췄다.

2003년 뇌출혈로 쓰러졌다는 소식을 마지막으로 연락도 끊기고 생사가 공식적으로 확인되지 않는 상태에서 그의 작품만 해를 거듭하며 고가를 경신하고 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40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