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국립미술관에 가보면 대영박물관과 달리 관람객을 압도하는 위압감은 들지 않는다. 그림을 감상하는 데 가장 적합하도록 조명이나 그림의 높이, 동선 등이 설계됐기 때문이란다. 학창시절 미술 교과서에서 본 그림들이 줄줄이 걸려 있는 풍경이 참으로 신기하기만 한데, 그 중에서도 눈길을 사로잡는 그림이 있다. 바로 영국을 대표하는 작가 윌리엄 터너(Joseph Mallord William Turner)의 대표작 <전함 테메레르>다.

그림 감상에 있어 배경지식이 없으면 그저 표면적인 감상에만 그칠 뿐, 그림에 녹아든 시대적 상황을 읽어내지는 못한다. 유명한 그림들을 통해 당시의 시대상황과 그와 연관된 경제학의 개념을 풀어낸 책 <그림 속 경제학>의 미덕은 여기서 십분 발휘된다.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E. H. 카는 역사를 연구하기에 앞서 역사가를 연구하라고 했다. 그리고 역사가를 연구하기에 앞서 그 역사가의 시대와 사회적 환경을 연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림도 비슷하다. 먼저 화가를 알아야 한다. 화가가 살았던 시대, 특정 작품을 그릴 때의 정황 등을 파악해야만 제대로 그림이 보인다. 모델이 된 인물부터 소재가 된 역사적 사실이나 신화, 구석의 소품까지도 화가에 대한 연구를 시작으로 그 의미가 살아난다. 화가 이외에도 그림을 파고들어 연구하는 접근경로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이 책에서는 경제학이 바로 주된 경로가 된 것이다.

예컨대 성전에서 채찍을 휘두르며 상인들을 쫓아내는 예수 그리스도를 그린 그림에서 ‘독점’과 ‘담합’을, 대부업자 부부의 그림에서 ‘이자’를, 엘리자베스 1세가 손을 얹은 지구본에서 ‘무역수지’를 설명하는 식이다. 예수 그리스도부터 시작해 ‘중세-대항해시대-중상주의 시대-산업혁명-혁명의 시대-광고의 시대와 뉴딜’ 등 주로 연대기 순으로 다양한 배경의 그림 속 인물들의 이야기와 함께 전개해 책을 통독하면 기원후 세계사의 핵심을 훑어 정리한 효과를 누릴 수 있다.

책에서는 부르주아지의 대두라는 사회적 현상과 관련해 인물초상화로 유명한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의 얘기가 나온다. 앵그르의 가장 유명한 작품은 <마담 무아테시에>이다. 그런데 은행가인 무아테시에로부터 자기 부인을 그려달라는 요청을 받고 앵그르가 처음에는 거절했다고 한다. 당시 회화에도 서열이 있었는데 역사화가 가장 높은 대접을 받았다. 앵그르가 경제적 형편이 좋지 않았을 때는 초상화 주문에 적극 응했으나, 무아테시에가 요청했을 때는 이미 성공한 노년의 화가로 명성을 굳힌 이후라 거절한 것이다. 이후에 마담 무아테시에를 직접 보고는 그가 좋아하는 그리스·로마 조각 같은 고전적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어서 초상화를 그리게 됐다고 한다. 앵그르 개인의 경제 형편으로부터 시작해 새로운 계급의 대두, 당시 미술계의 이면까지도 엿보고 나면 <마담 무아테시에>가 완전히 새롭게 보일 것이다.

문소영 지음 | 이다미디어 펴냄 | 1만6500원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41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