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미국의 ‘뒷마당’ 중남미 4개국 순방을 마치고 지난 7월25일 귀국했다. 지난 7월15일 출국 이후 열흘 이상 브라질, 아르헨티나, 베네수엘라, 쿠바 등 중남미 주요국을 종횡무진 누비며 ‘친중 벨트’ 구축에 심혈을 기울였다.
시 주석은 미국의 턱밑에서 이뤄진 이번 순방을 통해 미국견제 및 중남미 영향력 확대라는 성과를 거뒀다. 지난 4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중국의 ‘앞마당’ 격인 일본, 한국, 말레이시아, 필리핀을 돌며 중국을 견제한 데 대한 카운트 펀치를 제대로 날렸다는 평가다.
◇ 시진핑, 중남미에 통 큰 선물공세
시 주석은 가는 곳마다 선물보따리를 풀어 환대를 받았다. 지난 7월17일 브라질에서 ‘라틴아메리카-카리브 국가공동체’(CELAC) 정상들과 만났을때는 250억달러의 투자기금을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CELAC는 미주대륙에서 미국과 캐나다를 제외한 33개국으로 이뤄진 국제기구다.
태평양-대서양 연안을 연결하는 남미대륙횡단철도를 건설하자는 야심찬 제안도 했다. 중국-중앙아시아-유럽을 연결하는 신(新)실크로드 고속철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시 주석이 아시아도 아닌 남미 대륙을 관통하는 철도를 건설하겠다고 제안한 것이다. 중국이 아니면 생각하기 어려운 발상인데, 남미대륙횡단철도의 당사자격인 지우마 호세프 브라질 대통령과 오얀타 우말라 페루 대통령으로부터 긍정적 답변을 끌어내는 성과를 거뒀다.
시 주석은 또 ‘채무불이행’(디폴트) 위기를 겪는 아르헨티나에 75억달러의 차관과 110억달러의 통화스와프를 제공해 국제사회에서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아르헨티나를 감격시켰다. 아르헨티나는 축구광으로 유명한 시 주석에게 영어이름(Xi Jinping)과 번호 10번이 새겨진 아르헨티나 국가대표팀 유니폼을 선물하며 응답했다. 이 유니폼은 브라질월드컵에서 골든볼(최우수선수)을 받은 리오넬 메시가 입은 것이다.
베네수엘라에서는 40억달러의 차관을 제공하겠다고 밝혀 열렬한 환호를 받았다. 베네수엘라에도 40억달러의 차관을 제공하고, 대신 원유수입량을 하루 52만배럴 수준에서 100만배럴로 크게 늘리기로 했다.
◇ 달러 밀어내고 위안화 경제권 확대
시 주석의 이번 중남미 순방은 브릭스(BRICS) 정상회의 참석을 겸한 것이다. 특히 지난 7월15일 브라질 북동부 포르탈레자 시에서 열린 제6차 브릭스 정상회의에서는 ‘브릭스개발은행’ 설립이라는 성과물을 끌어냈다.
중국과 브라질, 러시아, 인도, 남아공 등 5개국이 각각 100억달러씩 출자해 500억달러의 초기자본금을 조성하고, 7년 안에 자본금을 1000억달러로 확대하기로 했다. 2016년부터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할 브릭스개발은행 본부는 중국 상하이에 설치하고, 총재는 인도 출신 인사가 맡기로 했다.
중국은 브릭스개발은행뿐 아니라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설립도 주도하는 등 미국 중심의 국제금융 질서에 도전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양대 금융기관을 만들어 국제통화기금(IMF), 세계은행(WB), 아시아개발은행(ADB)을 통해 국제금융체제를 장악하고 있는 미국, 유럽, 일본 등의 영향력을 약화시키려는 의도다.
중국은 세계 2위 경제대국으로 성장했지만 국제금융시장에서의 발언권은 그다지 높지 않고, 오히려 IMF 등은 중국의 영향력 확대를 견제하고 있다. 중국은 브릭스개발은행과 AIB를 통해 아시아, 아프리카, 중남미의 신흥국을 지원함으로써 이 같은 기존 질서를 뿌리째 흔들어놓을 계획이다.
이와 관련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중국이 4조달러가 넘는 천문학적인 외환준비고를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에 예치하고 미국 국채에 편중했던 기존 자금운용을 신흥국 인프라 정비에 확대할 계획이라고 보도했다. 특히 달러화가 아닌 위안화 융자를 검토하고 있는데, 이는 위안화를 신흥국에 투입해 중국 국내에서 과잉생산에 허덕이는 국유기업의 해외진출을 노리고 있다고 분석했다. 니혼게이자이는 중국의 ‘탈 달러화’ 경제권 형성 및 ‘붉은 국제금융기관’ 구축 노력이 현실화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 시진핑, 노골적 반미동맹 구축시도
시 주석은 이번 남미순방에서 반미동맹 구축이라는 속내를 숨기지 않고 꺼내보였다. 대표적 반미국가인 베네수엘라, 쿠바를 잇따라 방문해 미국을 자극한 것. 베네수엘라에서는 우고 차베스 전 대통령의 묘소를 찾아 “고인은 갔지만 품격은 영원히 존재한다”고 극찬했다.
마지막 방문국인 쿠바에서는 혁명지도자인 피델 카스트로 전 국가평의회 의장과 만나 “중국과 쿠바의 관계는 영원할 것”이라며 반미동맹을 확인했다. 시 주석은 88세의 노령에도 불구하고 혁명지도자이자 중남미에서 반미를 상징하는 카스트로와의 만남을 통해 미국에 대항하는 중국의 입지강화를 시도했다. 시 주석이 카스트로 전 의장이 1953년 당시 풀헨시오 바티스타 독재정권에 항거해 공격을 감행했던 몬카다 병영을 방문하는 것으로 중남미 순방 일정을 마무리한 점 역시 의미심장하다.
이러한 중국의 움직임에 대해 미국은 제대로 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위기 장기화 등으로 발목이 잡힌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의 약세를 드러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미국 워싱턴포스트는 “중국이 미국의 아시아 재균형 정책에 도전하는 등 전후 국제질서에 맞서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런 가운데 일본이 중국의 중남미 공략에 맞불을 놨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지난 7월25일부터 멕시코, 트리니다드토바고, 콜롬비아, 칠레, 브라질 등 중남미 5개국 순방길에 나선 것이다. 7월25일은 공교롭게도 시 주석이 중남미 순방을 마치고 귀국하는 날이었다. 시 주석이 CELAC 정상들을 만난 것처럼 아베 총리도 트리니다드토바고에서 카리브해 14개국이 참가하는 카리브공동체(카리콤·Caricom)와 정상회담을 한다.
구체적인 액수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아베 총리도 중남미 국가에 자금지원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칠레에서는 광산개발 협력, 브라질에서는 심해 유전개발기술 제공 등 세부적인 협력강화 방안도 마련했다. 일본 총리로서는 지난 2004년 고이즈미 총리 이후 10년 만에 이뤄지는 이번 중남미 순방이 자원외교 강화라는 측면뿐 아니라 명백히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