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쇼핑몰 두산타워(두타)에서 의류매장을 운영하던 상인 이모씨. 지난 6월 말 두타로부터 갑작스레 ‘점포를 빼라’는 퇴거 명령을 받았다. 8월 ‘두타 리모델링’ 공사가 시작돼 점포 명도를 해야 한다는 게 이유다. 이씨는 “다른 쇼핑몰 점포를 구할 시간적 여유도 주지 않고 어떻게 한달 반 전에 구두로 통보할 수 있냐”며 “미리 의사를 전달하면 공실이 생길 것을 우려한 두타 측이 일부러 계약 종료 시점에 맞춰 나가라고 한 것”이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씨는 계약갱신을 거절당하면서 7월 말 두타에서 점포를 뺐다. 한 계절 앞서 미리 주문해 놓은 겨울 상품은 집에 쌓아 둔 상황. 대체 점포를 구하는 것도 쉽지 않아 당장의 생계마저 위협받고 있다. 이씨와 같이 계약거절을 당한 점포는 200여개에 이른다.
15년째 동대문을 지켜온 ‘패션 메카’ 두타가 내부 문제로 시끄럽다. 매장 리뉴얼을 이용해 입점상인들을 강제로 내쫓는 이른바 ‘갑질’을 했다는 주장이 제기된 것이다. 입점상인들은 두타가 강제 점포이전, 공실 임대강요, 인테리어 공사 강요 등으로 상인들의 생명줄을 위협해왔다고 입을 모은다. 아무리 좋은 상가를 만들기 위한 채찍질이라지만 상인들 입장에서는 생계 수단을 한 순간에 빼앗기는 압박수단으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다.
두산타워입점상인연합회와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 새정치민주연합 을지로위원회 의원들이 지난 4일 오전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동대문 두산타워의 불공정거래행위를 신고하는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사진제공=뉴스1 박세연 기자 ◆ 점포 매출 실시간으로 감시
양측의 갈등은 두타가 리뉴얼 공사를 앞두고 임대료 부과 방식을 변경하면서 비롯됐다. 을지로위원회와 참여연대, 두타 상인연합회에 따르면 지난 5월 말 두타 측은 입점 상인들에게 기존 ‘고정 월세’에서 ‘수수료 방식’(월 매출의 17~20%)으로 임대료를 변경하겠다고 통보했다.
각 매장에 설치된 판매시점관리(POS) 단말기를 통해 점포 매출에 따라 수수료를 떼겠다는 것으로, 수수료율도 매출에 따라 다르게 책정한다는 내용이었다. 식품이나 장사가 잘 되는 상점의 경우 최대 23%의 수수료를 책정했다.
두타 500개 매장 중 200곳의 상인들은 즉각 반발했다. 수수료 방식을 새롭게 적용할 경우 지불해야 할 임차료가 2~4배 가까이 상승하기 때문. 월 매출액이 9000만원인 매장이라면 기존에는 630만원의 임차료를 냈지만 향후에는 매출의 17%인 1530만원을 내야 한다.
두타는 또 최저 매출액을 골자로 한 매장 퇴출선을 정해 매출액이 급격히 줄 경우에도 수수료는 일정 수준 아래로 내려가지 않도록 규정했다. 7층에서 식당을 운영하던 정모씨의 경우 이미 수수료 방식으로 임대차 계약을 체결한 매장이었는데, 해당 계약서에는 '협의된 최소매출 4500만원을 3개월 연속 달성하지 못했을 경우 (두타 측이) 즉시 본 계약을 해지 또는 해제할 수 있다'고 기재돼 있다.
입점 상인들은 “17~20%에 이르는 수수료를 낼 경우 통상 매출 총액의 50~60% 이상을 차지하는 상품 원가와 관리비, 카드수수료, 부가가치세, 인건비 등을 고려하면 수익을 거의 남길 수 없거나 손실을 볼 가능성이 크다”고 호소했다.
이승범 두산타워 대표 동대문에서 18년째 장사해온 최천주 상인연합 대표는 “불황 속에서 믿어왔던 두타가 기업 논리를 내세워 수수료 방식을 강요하면서 이를 거부하는 200개 점포는 하루아침에 쫓겨나는 신세가 됐다”며 “쫓겨난 상인들은 선주문, 재고처리 등의 또 다른 문제로 심각한 손해를 입고 있다”고 토로했다.
두타의 횡포는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거래상 지위를 이용해 상인들에게 빈 매장으로 위치를 옮길 것을 강요하기도 했다. 윤모씨의 경우 약 5평 규모의 점포를 운영하다 옆 점포가 비게 되자 이 공간까지 매장을 확장하라는 요구를 받고 대출까지 감행하며 손해를 봐야했다.
문모씨는 2004~2010년 두산타워 측 요구로 5회에 걸쳐 점포를 이전하고 그때마다 내부 인테리어 공사를 새로 했다. 문씨는 “1년마다 전대차 재계약을 하는 구조에서 두타 측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을 경우 재계약이 거절될 가능성이 높아 어쩔 수 없이 요구에 응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이 외에도 두타는 지각, 독서, 수면, 잡담, 음식물 섭취, 정찰제 위반(가격 할인 판매) 등 40여개 조항이 담긴 내부 상가관리규정을 만들어 놓고 이를 위반할 시 벌점 경고, 영업정지 또는 강제 퇴점 조치를 내렸다.
상인 김모씨의 경우 정찰제를 2회 위반해 임의로 할인을 해줬다는 이유로 2012년 강제로 점포를 이전해야만 했다. 김씨 역시 계약해지라는 불이익을 당할 것을 우려해 점포 이전 요구를 받아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곪고 곪았던 상처는 결국 터지고 말았다. 상인연합회는 시민단체와 손을 잡고 두타에 소송을 제기했다. 지난달 말부터는 항의집회를 열고 두타의 변화를 촉구하고 나섰다.
/사진=류승희 기자 ◆ 갑작스런 물갈이에 ‘멘붕’
1999년 개관 이후 5년에 한번꼴로 지속적인 리모델링을 해온 두타의 입장은 명확하다. 유행에 맞춰 패션몰의 이미지를 유지하려면 내부 운영규정을 잘 따를 수 있는 점포를 중심으로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는 것. 각종 규제들도 상가 관리를 위해 필요한 조치라는 입장이다.
두타 측은 “매출에 연동하는 방식으로 임대료를 산정하는 이른바 수수료 방식에 대해서는 국내외 대부분 대형 상가들이 채택하고 있는 방식이며, 현재 약 100개가 수수료 매장”이라며 “수수료율 17%는 유사한 대형 상가들과 비슷한 수준”이라고 밝혔다.
또 “입점주와의 마찰을 원만하게 해결하도록 노력하고 점주가 제기한 문제는 향후 성의 있게 검토해 보완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물갈이’에 앞서 그간 동고동락한 상인들과 사전 논의를 갖지 않은 채 일방적 통보로만 일관한 점은 아쉬운 대목이다. 더구나 ‘상생 경영’으로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하던 이승범 두타 대표의 행보와 어긋나는 최근의 ‘갑질 횡포’ 논란은 씁쓸한 뒷맛을 남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