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째 실적부진에 허덕이고 있는 제일약품이 최근 국세청으로부터 세무조사를 받으며 리베이트 구설에 휘말렸다. 많은 비중의 의약품 수입판매로 ‘보따리상’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쓴 사업구조가 한계에 부딪히면서 리베이트 조사 선상에 올랐다는 뒷말이 나오고 있는 것.
더욱이 제일약품 본사를 찾은 서울 국세청 조사4국은 과거 ‘박연차 게이트’의 태광실업, 현대차그룹 비자금 사건 등에 투입된 이력만큼 강도 높은 세무조사를 벌이는 부서여서 이번 제일약품 조사에 제약업계의 이목이 쏠린다.
/사진=류승희 기자 ◆의약품 수입판매가 남긴 리베이트 구설
지난 7월23일 서울시 서초구 사평대로(반포동) 제일약품 본사에 서울국세청 조사4국 소속 조사요원 20여명이 찾아와 세무조사를 벌였다. 리베이트 근절을 강조해 온 정부의 의지에 따른 세무조사라는 시각이 많다. 그동안 업계에서는 제일약품이 외국 의약품을 수입판매하는 사업구조 때문에 다른 제약사에 비해 리베이트 혐의가 포착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실제로 제약사가 정부기관으로부터 조사를 받는 대부분의 경우는 리베이트 때문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제일약품이 지난해 기록한 4520억원의 매출 중 외국 의약품 수입판매액 비중은 61.34%다. 이 같은 사업구조는 실패의 가능성을 낮추고 마케팅에 큰 힘을 쏟지 않아도 된다는 장점이 있다. 사업구조는 자연스레 리베이트 발생에 무게가 실릴 수 있고 세무조사 역시 이 같은 방향에서 진행을 것이라는 의문부호가 붙었다.
업계 관계자는 “제일약품은 자체 개발한 오리지널 의약품보다 다국적 제약사로부터 수입한 의약품 판매에 집중해왔기 때문에 영업과정에서 리베이트가 발생했을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만약 이번 세무조사가 리베이트를 겨냥한 것이고 이에 대한 정황이 드러나면 제일약품은 큰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정부는 제약사들의 불법 리베이트를 뿌리 뽑기 위해 지난 7월부터 ‘리베이트 투아웃제’를 실시하고 있다. 리베이트 투아웃제는 제약사의 리베이트 행위가 두차례 적발될 시 해당 의약품을 건강보험급여 대상에서 제외시키는 제도다. 건강보험급여 대상에서 제외되면 약값이 비싸지기 때문에 시장에서 퇴출되는 결과로 이어진다.
앞서 제일약품은 의약품 판촉을 목적으로 병의원이나 약국에 뒷돈을 건네 지난해 10월 제재를 받은 바 있다. 당시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의료기관 또는 약국 종사자에게 각종 경제적 이익을 제공하다 적발된 제일약품의 ‘란스톤캡슐’과 '케펜텍플라스타‘ 등 13개 제품에 대해 판매업무 정지 1개월의 행정처분을 내렸다. 제일약품은 지난 2003년 7월부터 2006년 12월까지, 또 2009년 4월에 리베이트를 건넨 사실이 드러났다.
반면 제일약품 측은 이번 세무조사가 리베이트와는 무관하다는 입장이다. 2010~2012년 법인세와 관련해 적절히 납부했는지 보강 차원에서 진행된 세무조사라는 것이다. 제일약품 관계자는 “서울 국세청 조사4국이 투입됐다고 해서 리베이트, 내부고발, 탈세 의혹을 제기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며 “9월에 조사결과가 발표된 뒤에 이야기해도 늦지 않을 것”이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실적부진도 리베이트 의혹에 한몫
제일약품은 이번 세무조사로 인한 리베이트 구설뿐만 아니라 사업구조로 인한 실적부진으로 수년째 고전하고 있다. 리베이트를 부추겼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는 배경이다. 실적부진에서 벗어나기 위해 신약 개발은 소홀히 하고 영업 과정에서 리베이트를 내세웠을 수 있다는 것이다.
제일약품의 매출을 전년 동기와 비교해보면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하지만 영업이익과 순이익에 있어선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큰 폭으로 떨어진 성적표를 받았다.
제일약품은 지난 1분기 1184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1043억원이었던 지난해보다 12% 올랐다. 그러나 영업이익은 6억8446만원으로 전년 동기 15억1640만원보다 55% 떨어졌다. 순이익도 마찬가지다. 지난 1분기 순이익은 10억984만원이다. 지난해 같은 기간(24억7464만원)에 비해 59% 감소했다.
제일약품의 4~6월 원내처방조제액을 살펴보면 최근 실적부진 상황이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지난 4월 11억1451만원이었던 소화성궤양용제 넥실렌의 원내처방조제액은 5월 11억3070만원으로 잠시 올랐지만, 6월 9억9747만원으로 다시 떨어졌다.
비뇨생식기관 및 항문용약 '비유피-4' 역시 4월 6억7716만원이었으나 5월 6억490만원, 6월 5억9790만원으로 감소세를 보였다. 정신신경용제 스타브론도 4월 5억7260만원에서 5월 5억5713억원, 6월 5억2142만원으로 줄어드는 양상이다. 란스톤과 옴니세프, 가스트렉스, 이토메드, 올데카, 알프존, 리마프란 등 1억원이 넘는 의약품에 대한 원내처방조제액도 모두 하락세다.
제일약품의 실적부진은 최근 몇년간 지속되고 있다. 지난해 영업이익은 13억7277억원이었다. 2012년에는 63억2026만원으로 78% 떨어졌다. 2011년 308억5629만원과 비교하면 96%나 줄어든 셈이다. 순이익은 지난해 4억8439만원이었다. 2012년에는 111억7184만원이었다. 무려 96%나 감소했다. 270억1479만원이었던 2011년과 98%의 차이를 보이며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이 같은 제일약품의 실적부진은 다국적 제약사에 의존하는 사업구조가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된다. 다국적 제약사의 오리지널 약가 인하 폭이 국내 의약품보다 큰 까닭이다.
과거에는 다국적 제약사들의 오리지널 약 특허가 만료될 경우 원래 가격의 80% 수준으로 인하됐다. 하지만 지난 2012년 4월 일괄 약가인하가 실시되면서 53.5% 수준으로 가격이 떨어졌다. 인하폭이 33%나 더 벌어진 셈이다. 국내 제약사들이 판매하는 복제약의 평균 인하폭은 22%가량이다.
실제로 제일약품의 주요 제품 중 하나인 란스톤의 가격은 2011년 3만6071원에서 2012년 2만5460원까지 하락했다. 옴니세프도 24만8098원에서 20만258원까지 20% 가까운 하락률을 보였다.
업계 관계자는 “제일약품의 실적부진은 눈앞의 이익만을 쫓던 사업구조가 정부 방침에 따른 변화의 조류에 휩쓸린 것”이라며 “제일약품이 수년째 겪고 있는 실적부진에서 벗어나려면 무엇보다 사업구조부터 바꾸는 결단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