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를 놀라게 한 IT 강국 대한민국의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 글로벌 IT기업들이 국내시장을 잠식하는 데 반해 각종 규제에 묶여 사라지거나 퇴보하는 토종기업이 늘고 있어서다. 더욱이 국내기업을 향한 규제가 해외기업에는 적용되지 않는 경우도 있어 역차별 논란까지 일고 있다. 글로벌기업의 각축장이 된 국내시장에서 처절한 생존경쟁을 벌이고 있는 토종 IT기업들의 현실을 짚어봤다.
◆해외기업 먹잇감 된 국내 IT시장
최근 국내시장에서 구글, 알리바바, 텐센트 등 해외 IT기업들의 움직임이 심상찮다. 이들은 공격적 인수·합병으로 오픈마켓부터 게임, 결제시장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적극적인 공세를 펴고 있다.
알리바바는 자회사인 알리페이를 앞세워 국내 온라인 결제시장에 진출했다. KG이니시스·하나은행 등과의 제휴를 통해 온라인 결제망을 제공할 예정이다. 구글 또한 LG유플러스와 협약을 맺고 간편결제서비스를 선보일 것으로 보인다.
오픈마켓도 아마존과 알리바바가 시장 진입을 예고한 상황. 이들 업체는 규모부터가 국내기업들이 경쟁하기 버거울 정도로 엄청나다. 지난해 알리바바의 매출은 170조원으로 세계 전자상거래시장 1위를 기록했고, 2위인 아마존은 77조3000억원을 달성했다. 세계 1,2위 유통 공룡이 국내시장에서 맞붙게 된 셈이다.
현재 아마존은 한국법인을 설립하고 국내 오픈마켓 전문 인력을 영입하는 등 조직 세팅에 나섰다. 한편 이미 국내 오픈마켓을 석권, 시장점유율 63%를 차지하고 있는 이베이의 경우 연매출이 70조원에 이른다.
게임시장에선 중국기업들이 자본력을 앞세워 무서운 기세로 국내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텐센트는 지난 3월 CJ게임즈에 5억달러(5330억원)를 투자하며 3대 주주로 올라섰다. 또한 텐센트가 700억원을 들여 출자한 캡스톤파트너스는 아이덴티티게임즈 등 중소 게임회사에도 150억원을 투자했다.
알리바바 역시 국내 게임에 공을 들이고 있다. 알리바바는 올 4월 텐센트코리아에서 모바일 게임사업을 총괄한 황매영 지사장을 한국 게임부문 지사장으로 영입했다. 또한 ‘아이 러브 커피’로 유명한 파티게임즈, ‘활’과 ‘블레이드’ 등을 내놓은 ‘네시삼십삽분’ 등과 이미 제휴를 맺은 상태다.
◆국내기업은 역차별 규제에 '시름'
글로벌기업의 공략에 이처럼 국내기업들이 맥을 못추는 이유는 무엇일까. 자본력과 경험의 부족 등도 이유지만 더 큰 문제는 각종 규제에 발목을 잡힌 국내 IT기업들의 한계 때문이다. 때문에 고사위기에 몰린 국내 IT업체도 적지 않다.
곰TV 뮤직비디오 <내일은 없어> 프로세스
유튜브 뮤직비디오 <내일은 없어> 프로세스
인터넷업계의 한 관계자는 “외국과 다른 각종 제도로 인해 토종 인터넷업체의 경쟁력은 갈수록 약화되고 있다”며 “빠르게 변화하는 인터넷 산업의 특성상 해당 규제가 국내기업에게만 적용된다면 글로벌 기업으로 수요가 더욱 쏠릴 것이 뻔한데, 한번 내준 시장을 되찾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고 지적했다.
최근 역차별 논란이 일고 있는 대표적 사례는 지난 8월 21일부터 시행된 ‘매번 성인인증제도’다. 매번 성인인증이란 ‘청소년 이용불가 콘텐츠’를 이용할 때마다 성인인증절차를 거쳐야 하는 것. 청소년 이용불가 콘텐츠로 지정된 뮤직비디오나 음악을 한번 더 시청하려면 휴대폰 인증 등 인증절차를 또다시 밟아야 한단 의미다.
문제는 구글 유튜브와 같은 해외기업에겐 이같은 규제가 적용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전 인터넷실명제나 사전심의제도, 삼진아웃제 등도 국내기업에만 적용돼 왔다. 편의성이 떨어지는 국내업체보다 유튜브로 이용자가 몰리는 것은 당연한 현상. 더욱이 국내업체들은 휴대폰 인증을 할 때마다 약 40원의 인증수수료도 부담해야 한다.
앞서 지난 2009년 시행된 인터넷실명제도 유튜브가 반사 이익을 본 대표적 사례다. 규제 시행 당시 유튜브는 국가설정을 한국으로 했을 때만 동영상과 댓글을 올리지 못하게 조치했다. 이용자가 다른 국가로 설정하면 이를 피해갈 수 있는 것. 당시 인터넷 상에는 '유튜브 귀화'란 신조어까지 떠도는 등 정부 규제가 조롱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2012년 도입한 인터넷 뮤직비디오 사전심의제도 유튜브는 적용대상에서 제외됐다. 서버가 해외에 있고 국내 음악 사업자로 등록하지 않아 규제할 수 없다는 게 문화관광부 등 관계부처의 설명이다.
이러한 역차별 규제 탓에 동영상 시장은 국내업체들이 유튜브의 독주를 막을 엄두조차 낼 수 없는 상황이다. 코리안클릭 집계에 따르면 2008년 당시 2%에 불과하던 유튜브의 국내시장 점유율은 올해 6월 기준 79.4%에 달한다. 7년 만에 70%이상 성장한 것이다.
반면 판도라TV, 티빙, 엠군 등 국내업체의 점유율은 모두 합해도 10%에 미치지 못한다. 국내 대표 서비스로 2008년 44%의 점유율을 자랑하던 ‘판도라TV’는 올해 6월 3.77%로 뚝 떨어졌다.
그나마 고무적인 것은 정부의 규제완화 기조에 여성가족부가 최근 "매번 성인인증에 대한 기업들의 입장을 반영하겠다"며 전향적인 자세를 보였다는 점이다. 여가부는 지난 20일 권용현 여가부 차관 주재로 업계관계자들과 비공개 회의를 갖고 인증방식을 변경하는 방안을 모색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그러나 당시 회의에서 해외기업과의 규제 형평성 등 역차별 문제 해소를 위한 구체적 논의는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진다.
이경전 경희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는 “정부의 과도한 규제가 우리나라 인터넷 산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있다”며 “지금 같은 상황을 그대로 두면 국내에서 사업하고자 하는 인터넷기업은 하나도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