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력이 ‘방만경영’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썼다. 민간기업에 사실상 무상으로 부동산을 빌려줘 구설에 오르더니, 고객의 전기요금을 제대로 받지 않은 사실까지 드러나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앞서 한전은 지난해 말 기준 104조원의 부채를 떠안으면서 부실공기업의 대명사로 불렸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올해 초 임직원의 임금 반납과 처분 가능한 자산의 매각 등을 통해 부채를 절감하겠다는 초강수를 꺼내 눈길을 끌었다.
하지만 한전의 부채는 지난 6월 기준 107조원으로 지난해 말보다 더 불어났다. 여기에 최근 부동산 무상 임대 특혜와 전기요금납부 관리 부실 논란까지 더해지면서 여전히 방만경영이라는 꼬리표를 떼지 못하고 있다.
◆부지 뺀 매각, 꼼수거래 의혹
한전이 부동산 무상 임대를 시작한 시점은 지난 2000년 민간발전사에 열병합발전소를 매각하면서다. 당시 한전은 공기업 민영화와 경영혁신 계획에 따라 안양과 부천의 열병합발전소 매각을 추진했는데 이때 한전과 민간 발전사 사이에 ‘꼼수거래’가 있었다는 의혹에 무게가 실린다.
한전은 열병합발전소와 경영권의 최저 매각 가격을 7200억원으로 책정했으나 1차 입찰에서 목표 가격에 못 미쳤고 응찰자의 허용금지사항 요구로 유찰됐다. 이후 LG칼텍스(현 GS칼텍스)와 텍사코 컨소시엄에 7710억원으로 최종 낙찰됐다.
눈여겨봐야 할 부분은 한전이 발전소 부지를 매각 대상에서 제외했다는 점이다. 발전설비와 경영권만 매각하며 사실상 매각 대금을 낮춰준 셈이다. 더구나 한전은 발전소 부지에 대해 매년 관리비 명목으로 해당 토지보유세만 요구했다. 이로써 GS파워(LG칼텍스 정유사업부문)가 부지를 무상 임대하는 상황은 무려 15년에 걸쳐 지속됐다.
한전이 GS파워에 무상 임대한 토지는 안양열병합부지 8만1927㎡와 부천열병합부지 8만9942㎡ 등 총 17만1869㎡다. 지난 5월 기준 공시지가로 환산하면 1813억원에 달한다. 또한 현재까지 안양과 부천의 열병합발전소 부지 무상 사용에 따른 임대료 누락은 1000억원이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문서가 누락된 2010~2011년을 제외하면 임대료 원금만 970억원이다.
하지만 한전은 임대료를 요구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GS파워를 전력거래소가 아닌 한전 자체시장에 포함시켜 임대료를 받을 경우 스스로 비용을 충당해야 한다. 한전이 부지만 매각 대상에서 제외한 것은 LG칼텍스와 텍사코 컨소시엄의 인수 비용을 줄여주거나 부지 임대료를 면제해주기 위한 방편이라는 시나리오가 만들어진다.
/사진제공=뉴스1 ◆부실한 전기요금납부 관리 들통
부동산 무상 임대와 함께 전기요금납부 관리에 소홀했다는 점도 한전을 둘러싼 방만경영 논란 중 하나다. 한전은 2009년부터 2013년 사이에 더 받은 전기요금이 1561억원에 달한다. 같은 기간 받지 못한 전기요금은 879억원이나 된다.
특히 5년 동안 더 받은 전기요금을 살펴보면 산업용 전기요금이 375억원, 주택용 전기요금이 468억원이다. 주택용 전기요금의 과다수납액이 산업용보다 93억원 더 많다. 한전이 국민의 혈세를 손에 쥔 채 방만경영을 일삼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이유다.
전기요금을 받지 못한 가구도 꾸준히 늘고 있다. 지난해 말 기준 전기요금 체납 가구는 59만가구다. 2009년 45만1000가구보다 30.8% 늘었다. 체납 금액도 2009년 467억원에서 지난해 879억원으로 412억원(88.2%) 증가했다. 심각하게 여기지 않아서일지는 모르나 결과적으로 전기요금을 더 받거나 못 받았으면서도 별다른 대책 없이 지금껏 방치했다는 얘기가 된다.
한전이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다면 전기요금납부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는 요금납부제도를 개발해 운영할 필요가 있었다. 또 금융기관과의 계약조건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도 기울여야 했다. 하지만 한전은 그렇지 못했다는 지적이 난무한다.
현재까지의 상황을 종합해보면 결국 한전은 그동안 정확한 전기요금납부 사실을 확인하지 못해 이중으로 납부를 요청하는 사례가 빈번했던 것으로 풀이된다. 실시간으로 납부결과를 확인할 수 없어 이중 수납의 개연성이 상존한 셈이다.
이에 대해서는 한전도 '직무유기'를 인정하는 분위기다. 전기요금납부 관리 부실에 대한 논란이 불거지자 한전은 전기요금 이중 납부를 최소화하기 위해 금융기관과 협의하고 납부 현황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는 시스템을 확대할 방침이다. 또한 앞으로 이중 납부가 이뤄지면 영업일 기준 하루 안에 해당 고객에게 알리고 조치하기로 했다. 기존에는 이중 납부액을 한달에 한차례 고객 계좌로 환불해주거나 다음 달 요금에서 차감하는 방법으로 정산해왔다.
◆부실공기업 오명에 방만경영까지
최근 한전이 방만경영 논란에 휩싸이며 다시 세간의 눈총을 받고 있는 이유는 100조원이 넘는 부채를 안고 있는 공기업이라는 점에 있다. 한전의 부채는 지난 2009년 65조원, 2010년 72조원, 2011년 83조원, 2012년 95조원, 2013년 104조로 계속 늘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올해 초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공공기관장들에게 개혁의지가 없으면 언제든지 경질할 것이라며 최후통첩을 알렸다. 그러나 한전의 부채는 지난 6월 107조원으로 더 불어났다.
이에 조환익 한전 사장은 삼성동 본사부지 매각에 이어 자사주 매각을 추진하는 등 한전의 부채를 줄이기 위해 전력투구하고 있다. 오는 2017년까지 14조7000억원의 부채를 감축하겠다는 각오다. 한전의 부채 비율은 6월 말 기준으로 207%다. 이를 2017년까지 143%로 줄이겠다는 것이다.
한전은 부동산 무상 임대가 당시 김대중 정부의 조속한 구조조정 지시로 이뤄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는 입장이다. 전기요금납부 관리 부실 문제에 대해서는 실시간 납부 현황시스템을 확대하고 이중 납부 시 환불 체계를 강화하겠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100조원이 넘는 부채를 안게 되면서 부실공기업으로 평가받고 있는 한전이 오명을 어떻게 씻어낼지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당장은 수년간 따라다닌 '방만경영'이라는 꼬리표부터 떼어 내는 일이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