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발의 노인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60세 노인이 70세 노인의 발을 마사지해주고, 70세 노인이 80세 노인의 팔순 잔치를 열어준다. 100세시대를 맞아 백발이 돼서도 나보다 어려운 이들을 위해 발 벗고 나서는 노인들이 늘고 있는 것.


봉사활동은 '젊은이들의 몫'이라는 개념을 당당히 깨부순 이들은 "봉사활동이 정신건강에 매우 좋다"며 "거동을 하지 못할 때까지 남 돕는 일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부양받는 노인에서 사회를 책임지는 노인'으로 살고 싶다는 이들을 만나 특별한 여가활동을 조명해봤다.


사진=한국헬프에이지 소속 노인참여나눔터 은빛사랑방

 
노인참여나눔터, "경로당과는 달라"

"한번은 혼자 사시는 할머니 집에 찾아간 적이 있어요. 열쇠를 바깥에 내놓고 사시는 양반인데 글쎄 집으로 들어갔더니 대변을 보시고 그걸 드셨더라고요. 치매로 고생하신 분인데 제가 만약 가지 않았더라면…."

서울시 관악구 은빛사랑방에서 만난 박성신씨(70)는 생애 가장 기억에 남는 봉사활동으로 이 장면을 꼽았다. 박씨는 일흔의 나이에도 서울시와 관악구 등지에서 봉사와 관련한 상을 세번이나 받았을 만큼 남을 돕는 일에 대한 열정이 대단했다. 그는 "봉사활동으로 얻는 것이 너무 많다"며 "병들어 눕지 않는 이상 이 일을 끝까지 할 생각"이라고 다짐했다.

박씨가 활동하는 은빛사랑방은 어르신들의 자치단체인 일명 '노인참여나눔터'로 한국헬프에이지와 관악사회복지에 소속돼 있다. 이 노인참여나눔터는 경제·사회적으로 소외된 65세 이상 저소득 노인들이 자치공동체를 조직해 지역주민과 함께 지역사회활동에 자조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돕는 곳이다. 9월 현재 서울, 경기, 군산 등 전국에 17개 노인참여나눔터가 조직됐다.


은빛사랑방 역시 어르신들이 사회에 도움이 되는 '무엇'인가를 해보기 위해 지난 2007년 결성됐다. 어르신들의 첫 모임은 소소했다. 체조와 텃밭 가꿈 등으로 기존의 경로당 모임과 크게 다를 바 없는 활동이 이어졌다. 그러다 한달에 한번 꼴로 열리는 바자회에서 직접 일군 채소와 담근 김치를 내다 판 뒤 발생한 수익금을 사회에 환원하면서 참여나눔터의 의미를 되새겼다. 어르신들은 이 바자회 수익금으로 저소득가정 학생들에게 교복을 선물하고, 필리핀 하이옌 태풍 피해자에게 구호기금을 전달하기도 했다.

이 모임의 홍보를 맡고 있는 함분녀씨(77)는 "경로당과는 전혀 다른 모임"이라며 "자체적으로 모인 노인들이 봉사활동을 하면서 한 덩어리가 되는 개념"이라고 설명했다.


실상 우리사회에서 노인들은 봉사활동의 주체가 아닌 수혜자로 인식된다. 노인들 역시 남은 생의 여가활동으로 봉사를 선택하는 일이 드물다. 통계청이 지난 2011년 65세 이상 노인을 대상으로 조사한 '앞으로 하고 싶은 여가활동'에 대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봉사활동이라고 응답한 이들은 3.3%에 그쳤다. 다수의 노인들이 여행(34.7%), TV시청(17.1%). 종교활동(8.7%) 등을 선택했다.

하지만 65세 이상 어르신들로 구성된 노인참여나눔터 회원들은 "집에 가만히 앉아 있으면 우울증에 걸리기 쉽고 치매도 오지 않겠냐"며 "봉사활동으로 남을 도우면서 뿌듯함을 얻는 동시에 우리(노인)도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됐다"고 힘주어 말했다. 또 다른 회원은 "좋은 활동으로 생애의 죄를 씻는 것 같다"며 "마음도 편안해졌다"고 덧붙였다.


은빛사랑방이 결성된 지 올해로 7년, 뜻깊은 행사도 많았다. 홀로 사는 노인을 위해 칠순·팔순·구순잔치를 연 것이 그중 하나다. 함씨는 "동사무소 한층을 빌려 잔치를 벌였다"며 "어르신들이 얼마나 좋아하시는지 많은 사람들이 오셔서 함께 축하해주니까 그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고 회상했다.

독거노인의 삶을 위로해주고 있는 그들이지만 시간의 흐름을 이겨낼 수는 없는 법. 7년이 지난 지금 은빛사랑방의 최연소자는 70세, 최고령자는 95세에 달한다. 이에 은빛사랑방에 자리한 회원들은 "95세 어르신은 이제 거동을 못해 모임에는 참석하지 못하신다. 우리 모두 건강이 허락하는 한 활동을 계속하고 싶다"고 소망했다.


사진=대한노인회 서울시연합회

 
노인자원봉사클럽, "전문지도자 양성"

노인들을 위한 보다 전문적인 봉사활동 조직도 있다. 노인단체인 대한노인회는 노인자원봉사를 활성화하기 위해 중앙회와 시·도 연합회에 노인자원봉사지원센터를 설치했다. 센터는 노인들이 주도적으로 봉사활동을 할 수 있도록 자원봉사클럽 조직 및 교육, 행정, 활동비 등을 지원하며 어르신들의 봉사활동 문화를 조성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1개 클럽(15명 정원)당 월정액의 활동운영비가 지원되며 1년에 한번씩 우수 자원봉사클럽과 자원봉사자를 치하하는 '전국 자원봉사클럽 경진대회'가 열린다.

이 봉사클럽의 활동은 무궁무진하다. 60세 이상 어르신들로 구성된 클럽 회원들은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의 외출보조 활동을 비롯해 ▲청소·빨래·목욕 등 청결지원 ▲식사·반찬지원 ▲집짓기·수리 등 주거개선 ▲말벗 및 상담 ▲청소년 등 멘토링 ▲간호 및 간병 ▲문화·예술 공연봉사 ▲야간방범 등 범죄예방활동 ▲아동 등하교 안전지도 ▲교통정리·주정차 안내 등 다양한 곳에서 자원봉사활동을 펼친다.

봉사자에게 주어지는 개인적 혜택은 아무것도 없지만 서울시에서만 95개 클럽에 1538명, 경기·부산·대구·광주·대전·울산본부 등 전국 각 지역에서 총 3만3971명이 클럽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대한노인회 자원봉사클럽과 타 단체의 차이점은 '전문성'에 있다. 자원봉사클럽은 코치양성 교육을 통해 노인들이 주도적으로 활동을 기획하고 운영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특히 과거 간호사·교사 등 전문직에 근무했던 이들이라면 코치에 한발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이 클럽에서 마사지 및 네일케어 코치로 활동 중인 조화숙씨(61)는 "어르신들의 경우 평생 처음으로 발마사지와 네일케어를 받는 분들이 많다"며 "자녀와 손녀도 하지 않는 발을 만져준다는 것에 처음에는 쑥스러워 하시지만 '내게 이런 날도 오는구나'하면서 우실 때 참 여러 가지 생각이 스친다"고 말했다. 조씨는 "봉사활동을 할 때마다 '내가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는다"며 "육체적으로는 힘들지만 정신적으로 만족한다"고 덧붙였다.

한석철 서울시연합회 자원봉사부장은 "노년기에 자원봉사활동에 참여함으로써 노인들은 삶의 질적 수준을 높이고 생산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게 된다"며 "퇴직 등으로 인해 상실한 사회적 지위와 역할을 보충해주고 소외감과 고독을 줄여줘 긍정적인 자아개념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돕는다"고 설명했다. 또한 그는 "사회적 차원에서도 노인에 대한 인식 전환과 노인복지비용 절감, 사회적 연대감과 사회통합의 촉진 등 긍정적인 효과를 낸다"고 강조했다.


 
   

봉사활동 참여 방법
 
 1. 노인참여나눔터 가입 조건 및 경로
 ·65세이상 저소득 어르신(기초연금 수령액 기준)
 ·한국헬프에이지와 각 지역 주민센터 소개
 2. 대안노인회 노인자원봉사클럽 가입 조건 및 경로
 ·60세 이상 어르신
 ·경로당, 노인대학 등을 통한 모집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49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