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올해 초 전미경제학회(AEA)가 열린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직장을 구하기 위해 행사장을 찾은 김영수씨(가명)를 만난 적이 있다. 김씨는 한국에서 미국으로 유학 와 경제학 석·박사를 모두 마친 엘리트다. 당시 그는 “2년째 AEA 연차 총회에 직장을 구하러 왔다”며 “미국경제가 개선되면서 채용문이 넓어졌다고 하는데 석·박사 출신자들은 오히려 일자리를 구하기가 이전보다 더 어려워진 것 같다”고 말했다.
#2. 뉴욕대에서 부동산 석사과정을 밟고 있는 이정수씨(가명)는 내년 여름 학위를 딴 후 취업할 생각을 하면 벌써부터 머리가 아프다. 미국의 디벨로퍼 회사에서 일하겠다는 포부를 갖고 부동산 석사과정에 진학했으나 자기가 원하는 분야에서의 취업은 하늘의 별따기기 때문. 석사과정을 같이 밟고 있는 미국인들도 취업에 어려움을 겪는 상황에서 한국인인 자신에게까지 기회가 올 것 같지는 않다는 게 이씨의 생각이다.
지난 10월 미국의 실업률이 6년3개월 만에 최저인 5.8%로 떨어졌지만 고급인력의 구직난은 여전한 실정이다. 특히 김씨와 이씨처럼 석·박사 출신 한인들은 일자리를 구하는 데 더 애를 먹고 있다.
‘로스쿨과 MBA(경영대학원) 졸업’이 고소득 일자리를 보장해 주던 시대가 끝난 지 오래다. 이 때문에 로스쿨과 MBA 입학자가 최근 감소세라고 한다. 억만장자인 마이클 블룸버그의 단골 레퍼토리인 ‘일류대학을 못 갈 거면 배관공이 되는 게 낫다’는 말이 자연스럽게 와 닿는 게 미국 고용과 교육의 현주소다.
◆ 美 대학원, 인도 등 아시아계 '봉'
석·박사가 미국사회에서 더 이상 고급 일자리를 보장해 주지 않는 반면 학비는 비싸기 때문에 미국 대학원의 미국인 학생 수는 갈수록 줄고 그 빈자리를 인도 등 아시아계 학생이 대거 채운 것으로 나타났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 12일(현지시간) 수년간 미국 대학원에서 공부하려는 학생 중 인도 등 아시아계 학생이 크게 증가했으나 전체 학생 수는 큰 변화를 보이지 않아 학자금 대출에 부담을 느낀 미국 학생 수가 줄어든 것으로 분석된다고 보도했다.
WSJ가 인용한 미국 285개 대학원 연합인 미국 대학원협회(Council of Graduate School)에 따르면 미 대학원에 등록한 아시아계 학생은 17%를 차지했으며 이 중 절반 이상은 공학·과학·경영을 전공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로스쿨과 MBA 입학자는 최근 5년 사이 매년 1% 이상씩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관련 제이슨 딜라일 뉴아메리칸파운데이션 교육담당 애널리스트는 “대학원 학자금이 미국 학생들의 진학을 꺼리게 만들었다”며 “상대적으로 비싼 학자금대출이자는 불안정한 고용시장에서 이들을 더 힘들게 하고 있다”고 말했다.
딜라일의 올해 보고서에 따르면 1조2000억달러 규모의 학자금 채무 중 40%는 대학원 학생들이 지고 있다. 대학원에서 의학·법학 석사학위를 따거나 대학원을 마친 학생의 빚은 지난 2004∼2012년 사이에 43% 증가한 5만7600달러를 기록했다. 학부생의 빚은 같은 기간 39% 증가한 2만7000달러였다.
이에 2008~2013년 사이에 대학원 입학생 수는 0.7% 증가하는 데 그친 반면 유학생 숫자는 지난 4년간 7~10% 증가했다. 대학원뿐 아니라 학부 유학생도 증가세다. 지난해 사상 최대 숫자를 기록한 학부 유학생은 현재 전체 학부생의 약 4%인 80만명을 넘었다.
중국인유학생 수는 지난 2012년까지 큰 폭으로 증가했으나 이후에는 둔화됐다. 반면 지난 2년 동안 입학 허가를 받은 인도 학생 숫자는 평균 27% 증가했다. 외국인 유학생 덕분에 미국경제에는 240억달러가 유입된 것으로 추산된다. 한마디로 아시아계를 비롯한 외국인유학생들이 미국 대학재정의 ‘봉’이 되고 있는 것이다.
◆ 美 대학·대학원 유학 재고할 때
미국 대학과 대학원의 현실이 이런 데도 불구하고 한국사회의 미국유학 열풍은 여전히 뜨겁다. 미국 대학과 대학원 유학을 컨설팅해 주는 학원들이 성업 중인 게 이를 방증한다.
미국이 여전히 초강대국이라는 점에서 미국유학을 통해 글로벌 인재로 클 수 있다는 장점은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미국 내에서조차 ‘아메리칸 드림시대가 지고 있다’는 말이 나오는 점을 감안할 때 미국 명문대나 명문 MBA·로스쿨 졸업이 성공을 보장해 주는 시대는 끝난 듯하다.
데이비드 루벤스타인 칼라일그룹 CEO(최고경영자)는 최근 미국 증권산업금융시장협회(SIFMA) 연례모임에서 “요즘 미국인들은 더 이상 열심히 공부해 대학에 가서 학위를 받으면 최고가 될 수 있다고 믿지 않는다”며 “사회적 계층이동성이 사라졌는데 이는 큰 문제로 경기침체의 잔여물”이라고 말했다.
루벤스타인의 지적처럼 금융위기 후 미국 내 계층이동성은 거의 사라졌고 미국인들의 삶이 빡빡해지면서 이민자와 외국인에 대한 차별은 더 심해지고 있다. 한국인이 미국인과 같은 명문대학을 나와도 똑같이 대우해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미국의 유명인사들이 앞다퉈 대학 무용론을 제기하고 비싼 학비 때문에 미국인들도 대학원 진학을 꺼리는 지금, 미국유학에 대해 재고해볼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