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돌무더기 틈에서 껍질을 깨고 세상에 얼굴을 내민 도토리씨앗
삼월의 마지막 주말, 황사기가 가시지 않은 뿌연 하늘을 원망하며 대야산(경북 문경시·931m) 트레킹에 나섰습니다.



대야산에는 울창한 소나무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대야산의 소나무는 서울 남산의 소나무와는 많이 다르게 보입니다. 솔잎의 색깔이 다르고, 향기가 다르며, 솔방울의 크기와 맺히는 개수가 다릅니다. 도심의 공해에 고스란히 노출된 남산의 소나무는 생존의 위기를 느끼고 서둘러 번식하고자 인적 드문 산중의 소나무보다 솔방울을 훨씬 더 많이 맺는다 합니다. 도심의 매미가 첩첩산중의 매미보다 두배 이상의 목청(날갯짓)을 갖는 것과 같은 까닭인 듯합니다.



가야산의 소나무. 촉촉함이 느껴질 정도로 밝은 색과 짙은 솔향을 지녔다.
경북 문경시 가은읍 용추계곡에서 정상으로 가는 등산로는 움트는 새 생명들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돌무더기 흙 속에서, 메마른 나뭇가지에서, 차가운 계곡물 속에서 따스한 봄 햇살에 깨어나 솟아오르는 생명들입니다.



비쩍 마른 산수유나무에도 가지마다 포도송이 같은 열매가 싹트고 있었습니다. 심한 가뭄에도 이곳 계곡에는 요란한 물소리가 귀청을 울립니다. 이 많은 물이 어디에 숨어 있었는지, 겨울이 끝나가는 것을 어떻게 알고서 봄노래를 담고 흐르는지 신기하기만 합니다.



용추소를 배경으로 친구들과 함께 선녀(仙女)라도 된 듯 즐거웠다.
오월의 신록까지 한 달 이상 남아있어 보통의 산에는 메마른 풍경뿐인데, 대야산 등반로에는 풀빛의 신우대가 계곡을 따라 빽빽이 늘어서 있어 푸르른 소나무군락과 함께 앞당겨 봄을 느끼게 해줍니다. 하지만 산 중턱의 그늘진 곳에서는 채 녹지 않은 하얀 얼음계곡들이 검은 흙과 함께 겨울의 마지막 발걸음을 붙들고 잇는 듯합니다. 산록의 그늘에서 얼음으로 바뀐 잔설이 짙어져가는 봄의 기운을 처연히 막고 있는 것 같아 아련한 슬픔이 가슴 한 켠에 울림을 줍니다.



4월이 코앞이지만 산그늘 군데군데 남아있는 얼음들
밀재에서 대야산 정상까지의 길에는 거북바위, 코끼리 바위 등 기묘하게 생긴 바위들과 암릉들이 이어집니다. 집채 만한 바위틈 사이사이에는 아름드리 소나무가 뿌리내려 버티고 있어 그림과 같은 풍경을 보여줍니다.



암벽사이를 위태위태하게 넘고 넘어 드디어 정상에 올랐습니다. 대야산 정상에서 사방을 둘러보면 북쪽으로는 희양산이 남쪽으로는 조항산이 대야산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듯 우뚝 솟아있습니다. '어진 자는 산을 좋아하고 지혜로운 자는 물을 좋아한다'는 의미는 머리로는 이해하지 못하지만 가슴으로 그 뜻을 알 수 있을 것 같은 때가 바로 지금과 같이 정상에 올라 사위를 둘러볼 때 같습니다.



암벽 바위틈새에 뿌리내린 소나무들
다시 같은 길로 돌아서 내려왔습니다. 황사기는 많이 가시고 햇살이 구름을 뚫고 등줄기를 따스하게 간지럽힙니다. 차가운 개울물에 발을 담궈 부은 발을 식혀봅니다. 차가운 한기가 발끝에서 뇌리로 스치는데 단 몇 초도 견디기 힘들 정도로 오싹합니다.



이번 대야산트래킹을 생각하면서 가장 공을 들인 것은 현지인들이 즐겨 찾는 맛집을 알아내는 일이었습니다. '문경맛집'이라고 여러 매체에 소개된 집들은 대개가 홍보성이기 쉽기에 사심(?)없는 그 지방출신의 추천이 믿을만하기 때문입니다. 친구들의 인적네트워크까지 동원하여 찾아낸 곳은 문경 국군체육부대 앞의 '은지네매운탕'입니다. 은지네는 영강(穎江)가 자전거길옆에 널따랗게 자리하고 있습니다. 백두대간 깊은 산속에서 굽이쳐 내려오는 계곡물이 모여 강이 되어 흐르고 이 강에서 서식하는 민물고기가 은지네의 재료가 됩니다. 미리 전화로 주문한 잡어탕을 기다리는 동안 주인장이 생색내며 내온 하수오주와 함께 그가 직접 물질로 채취해 끓인다는 올갱이국을 맛보았습니다. 민물매운탕의 맛은 생각했던 것 이상이었습니다. 뭐라 형용할 수 없는 시원함이 답답했던 가슴을 뚫어주는 듯합니다. 감격에 겨워 먹으면서도 몇 년 후에도 이곳에서 이 맛을 볼 수 있을까 하는 노파심도 같이 들었습니다.



☞ 글·사진 김은주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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