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앞에선 재벌도 별 수 없다?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이 적과의 동침을 시작했다. 최근 범 현대가와 손잡고 서울 용산에 국내 최대 규모의 면세점을 짓겠다고 나선 것. 시내면세점사업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에 비유되는 만큼 업계는 그리 놀랄 일이 아니라는 반응이다. 앞서 면세점 사업권 경쟁에서 호텔롯데에게 밀린 자존심을 회복하기 위한 이 사장의 ‘신의 한수’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사진=머니투데이 홍봉진 기자

◆삼성-현대가 ‘손 잡다’

지난 4월13일 서울 시내면세점 '참전'을 앞두고 호텔신라와 현대산업개발이 손을 잡았다. 이를 위해 두 회사는 합작법인(HDC신라면세점)을 설립하기로 하고 공정거래위원회에 기업결합을 신고했다. 면세점 예정지는 현대산업개발이 갖고 있는 용산 아이파크몰. 이들은 이곳에 4개층 1만2000㎡ 규모의 국내 최대 면세점을 짓겠다는 계획이다.

당초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과 정몽규 현대산업개발 회장은 독자적으로 시내면세점 사업권을 노렸다. 두 회사가 손을 맞잡은 것은 서로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한 결정으로 보인다.

현대산업개발은 도심 한복판에 철도역과 지하철역이 통과하는 용산 아이파크몰이라는 탁월한 사업지를 보유하고 있지만 면세점 운영 경험이 없다는 게 단점이다. 이에 국내뿐 아니라 외국계 면세 사업자를 만나며 사업 파트너를 물색해왔다.

호텔신라는 그 반대의 경우다. 면세점 운영 경험은 많지만 사업지를 놓고 고심하던 터였다. 경쟁사인 호텔롯데가 면세 사업부문에서 승승장구하고 있다는 점도 한 몫 했다는 분석이다. 이 사장이 앞서 인천공항 면세점 사업권 경쟁에서 호텔롯데에 뒤진 데다 제주 서귀포 면세점 운영권마저 따오지 못해 향후 면세사업 확장에 차질이 빚어졌기 때문이다.

특히 세계 1위 매출을 자랑하는 인천공항 면세점 사업권은 이 사장에게는 자존심이 걸린 과제였다. 대기업에 할당된 8개 구역 중 4개 구역을 따낸 호텔롯데와 달리 호텔신라는 3개 구역을 가져오면서 사업장 면적까지 절반으로 감소하는 굴욕을 맛봐야 했다.

그중에서도 매출이 가장 많은 구역으로 분류되는 DF1·DF3 구역을 롯데가 가져감으로써 향후 호텔신라의 매출타격이 만만치 않을 것이란 게 업계 관계자들의 공통된 예상이다.

재계 한 관계자는 “더구나 루이비통 매장이 들어서 있는 구역을 롯데에 뺏긴 것이 이 사장에게는 치명적이었을 것”이라며 “이 사장은 인천공항 진출을 추진하면서 전세계 면세점 최초로 루이비통 단독 매장 입점이라는 깜짝 카드를 내놓은 인물인데, 몇년 뒤 그 성과를 롯데에 고스란히 넘기게 된 셈”이라고 말했다.

이런 이유로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이 사장이 정 회장과 손잡고 시내면세점 확보에 나선 것이란 게 업계의 분석이다. 단순 사업 확장 측면에서 경쟁사와 한 배를 탄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실제 이 사장이 면세 사업을 위해 다른 기업과 협업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2013년 호텔신라는 범 롯데그룹인 동화면세점의 지분 19.9%를 600억원에 인수하고 상품 공동구매와 공동마케팅을 진행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 당시 호텔신라가 운영하는 호텔과 동화면세점 계열 여행사와의 협력도 강화하면서 중국, 일본 등 외국인 고객 확대 등의 효과도 동시에 얻었다.

◆ 이름만 호텔, 속은 면세점

삼성, 현대, 롯데…. 재벌들이 이렇듯 ‘피보다 진한’ 면세점 경쟁을 벌이는 이유는 이 시장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에 비유되기 때문이다.

기획재정부가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 제출한 '2014년도 전국 보세판매장 매장별 매출액' 자료를 살펴보면 지난해 전국 면세점 총 매출액은 8조3000억원으로 전년대비 매출 신장률이 21.6%에 이른다.

이는 최근 3년간 매출 평균성장률 14.7%를 크게 웃도는 실적이다. 이 중 시내면세점 매출이 5조4000억원으로 전년대비 32.2% 증가한 반면 출국장 면세점 매출액은 2조5000억원으로 5.9% 늘었다.

이 사장이 이끄는 호텔신라의 주력분야 역시 ‘호텔’이 아닌 ‘면세사업’이다. 본업이 호텔인 것 같지만 호텔신라 전체 매출에서 호텔사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10% 안팎에 불과하다.

호텔신라 매출의 90%가량은 면세점에서 발생한다. 최근 몇년 사이 중국인관광객 증가 등에 힘입어 국내 면세점시장이 급성장하면서 면세사업부문에 치중된 호텔신라 매출 성장세도 꾸준히 이어진 것.

실제 이 사장이 최고경영자(CEO)에 취임한 지난 2010년 이후 호텔신라 매출은 1조4524억원에서 지난해 2조9089억원으로 두배 가까이 늘었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40% 증가했다.

물론 면세사업의 성패에 따라 명암이 엇갈리는 수익구조라는 점에서 이 사장이 안고 있는 리스크는 존재한다. 지난해 호텔신라의 성장성이 두드러진 것 역시 면세점사업이 폭발적으로 성장한 덕분이다. 이 때문에 이 사장은 호텔신라 최고경영자로서 내수 위주의 사업구조를 글로벌로 다변화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호텔신라가 한단계 더 도약하려면 ‘호텔-면세점’과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신사업이 필요하다는 데 이견이 없다. '여행-면세-호텔'이라는 밸류 체인이 완성되는 순간 호텔신라가 글로벌 서비스회사로 도약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달아오른 면세점 전쟁. 이 사장이 시장의 우려를 말끔히 씻고 호텔신라를 성공 궤도에 안착시킬지 주목된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80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