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초는 설악산이나 바다로 가기 위한 여행의 분기점 역할을 해왔다. 그렇지만 속초에 가는 것만으로도 완벽한 여행이 된다. 인천공항 리무진을 타고 속초터미널에 탁. 멀리 갈 필요 있나? 여기서 먹고 놀고 즐기다 보면 하루가 모자란다.
영랑호.
범바위. ◆ 영랑호에서 걷고 놀자
속초하면 바다라고? 아니, 영랑호는 호수다. 바다로 이어지는 석호이기 때문에 바다와 호수, 설악산까지 즐길 수 있는 최적의 장소다. 둘레가 8㎞, 면적 1.21㎢로 산책하기 딱 좋은 코스다. 영웅길로 불리는 이 길은 한바퀴를 걷는 데 1시간30분~2시간 정도 걸리고 자전거를 타고 돌기에도 좋다.
일부러 좋은 자리를 택해 조성한 것 마냥, 경관이 좋고 주변에 리조트와 골프장이 있다 보니 ‘인공호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지만 영랑호는 확실한 자연산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물가가 굽이쳐 돌아오고 암석이 기괴하다. 호수 동쪽 작은 봉우리가 절반쯤 호수 가운데로 들어갔는데 옛 정자 터가 있어서 이것이 영랑신선무리가 놀며 구경하던 곳”이라고 했다.
또 전설에는 이 호수를 화랑이 발견했다고 전한다. ‘신라’라 하면 경주인데 강원도에서 화랑의 얘기를 들으니 무슨 말인가 싶다. 사연인즉, 신라 화랑 영랑, 술랑, 남랑, 안상 등이 금강산에 가서 수련을 했다고 한다. 수련을 마치고 무술대회에 나가려고 금성(경주)으로 가는 길에 근처 고성에서 사흘을 쉬고 다시 길을 나서다 영랑호를 지나게 됐고 마침내 이곳의 풍치가 그들의 발목을 잡았다.
화랑들은 이 좋은 곳의 매력에 빠져서 무술대회도 잊고 즐겼다고 한다. 아름답기로는 최고인 금강산에서 수련을 하다 온 무술대회 참가자들의 의지가 이 석호에서 꺾여버린 것이다. 아울러 이 곳을 발견한 사람의 이름이 ‘영랑’어서 ‘영랑호’가 됐다고 한다. 시험을 망쳤으니 대대로 원망을 들었을 지도 모르는 영랑은 호수에 그 이름을 남겼다. 이후로 화랑들의 수련장으로 쓰였고 수많은 도사들이 찾아와 수도를 했다. 지금도 궁도를 연마하는 활터가 있고 화랑도 체험관광단지가 있어서 승마나 활쏘기를 체험해 볼 수 있다.
영랑호의 대표적인 볼거리는 범바위다. 속초 8경 중 하나로 호수가에 범이 웅크리고 앉은 모습을 하고 있다. 그런데 바위가 워낙 크다 보니 보는 방향에 따라 호랑이, 물개, 바다사자, 뱀 등으로 달리 보인다. 바위 위에 올라가 보면 너럭바위 위에 사람 키를 훌쩍 넘는 커다란 바위가 서로 의지하며 놓여 있는데 마치 신들이 공기놀이를 하다가 대충 놓아둔 것 같다. 바위 틈새로도 사람이 지나갈 수 있을 만큼의 공간이 된다. 이 바위 틈으로 보는 영랑호의 모습도 놓치지 말아야 할 포인트다.
영랑호는 ‘구슬을 감춘 것 같다’고 한 이중환의 말처럼 물빛이 맑다. 이를 따라 봄에는 꽃이 예쁘고, 가을엔 단풍이 좋고, 겨울에는 천연기념물인 고니 떼가 찾아온다. 이 밖에도 낚시, 뱃놀이, 수상스키, 골프 등을 즐길 수 있는 잔잔하지만 다채로운 매력을 가졌다.
카페 보드니아.
메밀전병.
물회. ◆ 중앙시장에서 먹고 놀자
속초의 매력은 바다와 산, 그리고 먹거리에 있다. 싱싱한 해산물로 만드는 전통 먹거리뿐 아니라 실향민의 음식인 아바이순대, 어린 여행자의 입맛을 사로잡는 닭강정과 주전부리, 강원도라 더 향기로운 커피까지. 먹거리만 찾아 다녀도 하루가 모자랄 정도다.
속초중앙시장. 이곳에서라면 여행자들의 식탐이 한방에 해결된다. 주말에 이곳을 가면 여행자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곳곳에 긴 줄을 발견하는데 근원지를 찾아가보면 여지없이 소문난 맛집이 있다. 달콤하고 고소한 기름냄새가 나는 곳에는 씨앗호떡을 팔고, 매콤하게 기름 튀는 소리가 나는 곳에는 닭강정이 있다. 그 틈새에 수수부꾸미와 오징어순대가 있고, 오징어 만두, 통오징어튀김, 메밀전병, 꼬마김밥, 새우튀김, 단호박식혜, 홍게빵 등 각종 재미있고 입맛을 자극하는 먹거리들이 가득하다.
사실 속초중앙시장은 전국에서 손꼽히는 건어물시장이었다. 지난 2006년부터 ‘속초관광수산시장’으로 이름을 바꿨지만 사람들에겐 여전히 ‘중앙시장’이 익숙하다. 시장의 역사는 6.25 전쟁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전쟁 때 강원도 북부지역은 부침이 많았다. 속초 역시 두 세력이 충돌하는 지역이었고 실향민들이 이곳에 많은 이유도 그 때문이다.
1953년 전쟁이 끝나고 속초가 수복된다. 그리고 시장이 만들어진다. 1군단 공병단 지원으로 논과 웅덩이를 메우고 상인들이 부담한 총공사비 800여만원을 들여 263개의 점포가 들어섰다. 당시로서는 상당히 큰 규모의 시장이다. 이 때는 이곳이 속초리 3구에 있어서 ‘3구시장’으로 불렸다. 1966년 마을이름이 3구에서 중앙동으로 바뀌고 시장이름도 ‘중앙시장’으로 바꿔 부르게 됐다.
시장은 골목마다 특징이 있다. 이 중 ‘아바이순대’ 골목은 이름부터가 이색적이다. ‘아바이’는 아버지를 뜻하는 함경도 사투리이고 ‘아바이순대’는 대창 속에 찹쌀밥, 선지, 부재료를 넣는다. 우리가 흔히 먹는 순대는 찹쌀밥을 넣지 않고, 작은 창자를 이용해 만들기 때문에 그 크기와 모양부터 차이가 있다. 속초에서 갯배를 타고 아바이마을에 갈 수 있는데, 이곳이 바로 실향민들의 집단 정착촌이었다. 바쁜 일정으로 아바이마을까지 가볼 수 없다면 중앙시장 순대국밥 한그릇을 먹으며 여행을 대신할 수도 있겠다.
시장 바깥으로도 소문난 맛집들이 많다. 알록달록 차림새부터 화려한 물회, 국물까지 싹싹 비우게 되는 생선찜, 푸짐한 생선구이, 해물탕 등 하루 삼시세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싱싱하고 맛있는 먹거리들이 선택의 고민을 부추긴다.
여기서 빼 놓을 수 없는 것이 커피다. 강릉에서부터 올라온 강원도의 커피 문화가 속초를 피해갔을 리 없다. 비릿한 맛을 실컷 즐기고 나면 커피 생각이 나기 마련인데, 마침 주변에 예쁜 커피가게들이 있다. 복잡한 시장통에서 나와 커피 한잔의 여유까지 즐길 수 있으니 입도 마음도 밸런스가 맞아 떨어진다.
영랑호를 걷고, 시장의 북적거림을 즐기고, 푸짐하게 먹고, 커피로 마무리 하는 여행. 더 많이 갈 것도 없이 속초 시내 안에서 완벽하게 해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