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1988년 국민연금제도를 도입했다. 이후 1994년 개인연금, 2005년 퇴직연금제도를 시행하면서 다양한 연금보장체계를 갖췄다. 하지만 1층 공적보장에 해당하는 국민연금은 현재까지도 기금고갈 문제와 수령시기 연장, 수령액 축소 등 개혁논란에 휩싸였다.
퇴직연금은 은퇴자 중 상당수가 중간정산과 퇴직금 일시금 수령으로 적립액 대부분이 연금화되지 않았다. 조만간 퇴직연금이 소진될 것으로 예상된다. 개인연금은 공적연금과 달리 퇴직연금처럼 가입이 강제화되지 않은 임의제도로 가입률이 약 15.7%에 그친다. 10년 후 유지율은 약 52.4%에 불과해 실제 노후자금으로 사용되는 비율이 높지 않은 실정이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노인빈곤율과 빠르게 진행되는 고령화 추세 등을 감안하면 효과적인 노후소득 확보를 위해 연금화 전략이 중요한 과제로 떠오른다. 이에 따라 은퇴적립금은 일시금 수령이 아닌 연금으로 수령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라고 본다.
그럼에도 소비자들이 일시금 지급방식을 더 선호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원인은 크게 은퇴자의 심리적 요인과 제도적 요인으로 나눠 분석할 수 있다.
◆ 연금, 손실 아닌 미래준비금
은퇴자의 심리적 요인은 이렇다. 첫째, 소비자는 연금구입을 비용 및 손실로 인식한다. 연금구매자가 조기에 사망하면 납입보험료보다 수령한 연금소득이 적을 수 있다. 이런 경우를 가정해 납입보험료를 투자손실, 즉 비용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이는 소득과 손실의 인식 차이에서 비롯된다.
행동재무론에 따르면 소비자들은 미래수익에 대해서는 과소평가하는 반면 현재 소비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특히 DC형(확정기여형,자기책임형)의 경우 은퇴자는 연금상품을 구입하기 위해 거액을 지출해야 한다. 따라서 소비자는 연금상품 구매를 현재의 큰 지출로 인식한다.
둘째, 미래보다 현실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이른바 ‘단기지향심리’ 때문이다. 개인은 미래보다 현재에 더 큰 가치를 둔다. 장기적으로 만들어야 하는 커다란 이득을 이루기까지의 노력을 미루려는 습성이 있다. 장기적인 것은 두드러져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노화와 관련한 실험을 예로 들어보자. 연구자들은 실험참가자의 사진을 70세 모습으로 바꿔 보여줬다. 그러자 참가자들은 자신의 은퇴계좌에 저축금액을 두배로 늘렸다. 미래 자신의 모습을 눈으로 확인한 사람은 미래현상을 현실로 인지한다는 이야기다.
셋째, 소비자는 대부분 ‘비현실적인 낙관주의자’다. 자신의 기대수명을 과소평가하고 보유한 은퇴자산의 소진을 낙관한다. 이는 연금화를 꺼리는 요인으로 꼽힌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은 자동차사고, 심장마비, 이혼 등 불운한 인생을 겪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 것과 같다.
◆ 연금 구입 꺼리는 제도적 요인
제도적 요인에서 연금구입을 꺼리는 이유는 크게 세가지다. 우선 현금유동성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연금은 평생 동일한 소비를 가정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특히 은퇴 후에는 지출규모 및 소비패턴이 달라질 수 있다. 의료비와 같이 갑작스레 긴급자금이 필요한 경우 연금화 시점과 연금수요에 영향을 준다.
또 사적연금은 연금을 지급하는 급여제공옵션이 다양하지 못하다. 공적연금은 조기 퇴직연금 등 연금수령에 대한 옵션이 다양한 반면 개인연금을 포함한 퇴직연금은 55세 이전 일시금 인출을 통제할 수 있는 규정이 없다. 근로자 퇴직급여 보장법에도 연금지급방법에 대한 내용이 없는 상황이다. 금융회사가 제공하는 연금상품은 은퇴자의 재무행위를 적극 반영하지 못하고 은퇴 이후 생활비도 개인의 상황에 따라 자유롭게 설계할 수 없다. 자산운용 역시 개인의 투자성향에 따라 선택할 수 없다.
아울러 지속되는 저금리 현상은 소비자가 은행예금이나 적금 등으로 노후자금을 마련하는 일을 어렵게 한다. 금리하락은 근로자의 투자의사 결정에 영향을 주지만 저금리 현상이 지속되면 적정한 연금구입시점을 선택하기가 어려워진다. 결국 연금구입을 지연시킬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무엇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개인연금에 자발적으로 가입하지 않는다. 국민연금과 퇴직연금에 의존하는 사람이 대다수다.
이러한 요인을 종합해볼 때 연금에 대한 낮은 수요는 하나의 원인이 아닌 심리적·제도적
측면 등 복합적인 원인이 작용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금융사는 연금퍼즐 현상을 완화하고 소비자의 장수리스크를 개선하기 위해 소비자의 재무와 니즈를 고려한 연금상품을 개발해야 한다.
정부의 안정적 노후보장을 위한 정책적 지원도 시급하다. 연금수령 시 세제혜택 확대 및 디폴트 규칙을 통해 연금을 선택하도록 유인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소비자는 안정적인 노후소득 확보를 위해 은퇴자산을 ‘정해진 시기’(when)에 ‘정해진 금액’(what amount)을 ‘종신’(while)토록 받을 수 있게끔 은퇴 후 포트폴리오를 구성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