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실부모, 말더듬이, 불행한 가족사, 명창을 사랑함, 실연, 늑막염, 폐결핵, 치질, 29세로 사망…. 여기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사람이 있다. 짧은 생애 동안 강하고 진한 여운을 남긴 천재, 김유정을 찾아가 본다.


 

김유정 생가

◆ 김유정, 그 인생이 곧 소설

스토커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연희전문학교에 입학했지만 소위 ‘여자 꽁무니’를 따라다니다 학교도 그만둔다. 대상은 명창이자 두살 연상의 박녹주였다. 7살에 어머니를, 9살에 아버지를 잃고 어렸을 적 애정결핍으로 말더듬이였던 그에게 이성에 대한 집착은 당연한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혈서를 쓰고, 죽인다고 협박을 하고, 매일매일 따라다니며 편지로 못살게 굴었으니 하는 사람이나 당하는 사람이나 요즘 말로 ‘암 걸릴 일’이다. 일찌감치 고아로 컸으니 영양상태도 부실했을 테고 칙칙하고 어두운 남의 집 살이에 병인들 없었을까. 22세에 이미 늑막염 환자였던 그는 재산을 탕진한 형 때문에 가족의 도움도 받지 못한 채 누나 집에 얹혀 살다가 고향으로 내려온다.

더 늦기 전에 유산을 나눠 받고 몸을 회복하고자 했지만 뜻대로 되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나라를 잃은 조국에서 청년 엘리트의 정신은 살아 있었고, 브나로드 운동에 참여한 그는 고향 실레마을에서 금병의숙을 세워 학생들을 가르친다. 그렇지만 계속되는 형의 음주벽과 횡포로 고향생활도 오래 가지는 못한다.

1933년에 서울로 올라온 그는 마침내 소설을 쓰기 시작한다. 1935년 <소낙비>가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1등으로 당선되고, 이어서 조선중앙일보에 가작으로 입선하였고, '구인회' 활동도 했다. 그는 불과 2년여 기간 동안 30여편의 작품을 토해내듯 발표했다. 사실 교과서에 실린 김유정의 소설은 웃기고 짧아서 좋았다. 나이 들어 다시 읽어보면 그 뒤에 깔린 애수의 정서와 투박한 표현 속에 섬세하게 살아있는 인물의 감정선에 다시 한번 놀라게 된다.

역시 타고난 이야기꾼이었다. 글을 써 본 사람이라면 다 아는 것, 쉽고 짧게 쓰는 게 가장 어렵다. 김유정의 작품은 그 모든 것을 만족시켰을 뿐 아니라 자신만의 독특한 화법과 토속적인 언어들로 소설에 생기를 불어 넣었다. 그런 의미에서 문학사가 정의한 ‘골계미’라는 어려운 말은, 쉽게 쓴 김유정의 소설에 어울리지 않는 타이틀이다.

'그 돈이 되면 우선 닭 삼십마리를 고와 먹겠다…'. 그는 죽기 전 안회남에게 보낸 편지에 회복의 의지를 다졌다. 탐정소설을 번역해 돈을 벌어 닭과 뱀을 구해 먹고 낫고 싶다고 했다. 그렇지만 닭 한마리 먹지 못하고 서른도 되기 전에 고단한 생을 마감했다. 지금은 춘천뿐 아니라 김유정 생가 주변에도 닭갈비집이 넘쳐나는데, 그 인생을 알고 나니 그 맛이 더 맵고 아리게 느껴진다.


김유정문학촌
김유정기념전시관

◆ 김유정문학촌, 그 마을이 곧 소설

김유정은 소설 30여편, 수필 12편, 편지와 일기 6편, 번역소설 2편을 남겼다. 그런데 유품은 하나도 없다. 누나와 형의 집, 전세방을 옮겨 다니다 요절했으니 어느 한곳에 오래 머물지도 못했고 따르던 제자가 있을 리 없고 출세한 친구, 재력 있는 지인도 없었다. 폐병으로 사망한 터라 유품도 불태워졌고 그 자신 또한 화장해 한강에 뿌려졌다. 



그런데 그를 기리는 생가가 복원되고 전시실이 만들어지고 실레마을과 김유정역까지 그 자신이 한 동네를 이뤘다. 이것은 순전히 그가 남긴 글의 힘이다. 문학촌에는 생가와 전시관이 있다. 들어서면 닭 싸움을 붙이는 점순이의 모습이 보인다. 자신의 사랑을 받아주지 않는 '나'에게 투박한 시위를 벌이는 시골 소녀, 김유정 소설 <동백꽃>의 한장면이다. 학교 때 읽었던 것이 <동백꽃>인가? <봄봄>인가? 헷갈리는 기억을 정리하고 생가 쪽으로 발길을 돌리면 비로소 김유정선생의 동상이 보인다.

동상을 등지고 전시실이 있고 왼쪽에 생가를 복원해 놨다. 이것은 조부가 지었던 원래 집을 조카 김영수씨와 마을주민의 증언에 따라 2002년에 복원한 것이다. 그런데 집이 참 독특하다. 위치와 구조를 보면 꽤 규모가 있는데 초가를 올린 모습이 소박하다. 원래 조부 김익찬은 춘천 의병 봉기 때 재정지원을 했고, 당시 이 마을 대부분의 땅을 가진 재력가였다.

그는 중부지방에서 보기 드믄 ‘ㅁ’ 자형 구조로 집을 지었다. 이는 헐벗고 굶주린 사람들이 많던 시절, 집의 내부가 잘 보이지 않도록 하고, 가족을 보호하기 위한 뜻이라고 한다. 같은 이유로 부엌의 굴뚝을 낮게 했다. 밥 짓는 연기가 높이 올라가지 않도록 해 마을에 끼니를 거르는 사람들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였다고 한다.

생가 뒤편 장독대 앞에는 또 다른 소설의 한장면이 있다. 천진난만하게 고개를 빳빳이 쳐든 꼬맹이 점순이, 머리 위에 손을 올려 키를 재는 봉필영감, 절망적인 주인공 ‘나’…. 바로 <봄봄>의 한장면이다. 이들의 표정이 하도 생생해서 잠시 가물가물 했던 소설 줄거리가 단박에 떠오른다. 다시 보니 봉필영감 표정 한번 얄밉다.

문학촌을 포함한 이 마을은 실레이야기길이다. <봄봄>, <동백꽃>, <금 따는 콩밭>, <만무방>, <산골나그네> 등 김유정 소설 12편이 이 마을의 실제 인물을 소재로 했다. 대부분의 건물은 없어지고 터만 남았지만 길을 걸으며 할 이야기가 많다. 들병이들 넘어오던 눈웃음길, 점순이가 ‘나’를 꼬시던 동백숲길, 산신각 가는 산신령길, 장인 입에서 할아버지 소리 나오던 데릴사위 길 등 길을 걸으며 소설의 장면들을 떠올릴 수 있다.

금병산은 <봄봄길>, <동백꽃길>, <산골나그네길>, <만무방길>, <금따는콩팥길> 등 김유정의 소설제목을 딴 등산로가 있다. 등산로를 내려오면 소설들의 무대가 되는 실레마을과 만나게 되고 금병의숙, 생가, 김유정역까지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김유정 문학촌에서는 3월에 김유정추모제를 시작으로 연중 김유정문학제, 청소년 문학축제 ‘봄.봄’, 김유정문학캠프, 실레마을 이야기잔치 등 다양한 행사가 열린다.

 

레일바이크

◆ 김유정역, 이름을 남기다

마을 앞에는 '김유정역'이 있다. 원래 이름은 '신남역' 이었는데 2004년에 김유정역으로 이름을 바꿨고 이는 한국에서 인물을 역명으로 쓴 첫 사례다. 지금은 번듯하게 한옥식으로 역사를 꾸며놨지만 200m쯤 떨어진 곳에 폐역사가 있다.

규모로 보아 작은 마을의 간이역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렇지만 지금은 수많은 여행자가 찾아오는 관광지가 됐다. 구 경춘선 폐선은 레일바이크를 즐길 수 있도록 해 여행자에게 즐거운 놀이까지 선물한다. 한국의 대표 문학작품을 모아놓은 커다란 책장이 레일바이크 휴게실로, 많은 사람들이 이 앞에서 사진 한장을 찍는다. 당연히 책들의 맨 앞에 놓인 것은 김유정 전집이다.

[여행 정보]


● 김유정문학촌 가는 법 (서울 출발 기준)

서울춘천고속도로 – 남춘천IC삼거리에서 ‘양평, 춘천, 비발디파크’ 방면으로 우회전 – 종자리로 – 광판삼거리에서 ‘춘천, 김유정역’ 방면으로 우회전 – 김유정로 – 덕만이터널진입 후 70번 지방도를 따라 이동 – 팔미2교차로에서 ‘김유정역, 김유정문학촌’ 방면으로 우회전 – 한치로 – 김유정로

[대중교통]
경춘선 김유정역 하차 – 1번출구로 나와 도보이동

[주요 스팟 내비게이션 정보]
김유정문학촌: 검색어 ‘김유정문학촌’ / 강원도 춘천시 신동면 실레길 25
김유정역: 검색어 ‘김유정역’ / 강원도 춘천시 신동면 김유정로 1435

김유정문학촌

문의: 033-261-4650
관람시간: 오전 9시 ~ 오후 6시 (매주 월요일 휴관)
관람료: 무료

강촌 레일바이크

김유정역에서 출발하여 강촌역까지 가는 코스로 무료 셔틀버스를 이용해 출발역으로 되돌아 올 수 있다.
문의: 033-245-1000
이용요금: 2인승 25,000원 / 4인승 35,000원
운행시간: 하절기(2월~10월) 아침 10시부터 총 10회 운행. 사이트나 역 시간표 참고.

● 음식
봄봄닭갈비: 김유정문학촌 앞에 있으며, 양념이 과하지 않고 담백하고 깔끔하다. 봄봄 막걸리를 판매하고 깔끔한 인테리어에 테이블이 많은 것도 장점이다.
봄봄닭갈비 11,000원 / 오골계갈비 15,000원 / 봄봄막걸리 3,000원 / 봄봄칵테일 3,000원
강원도 춘천시 신동면 풍류1길 34 / 033-262-9396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88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