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다가왔지만 날씨는 여전히 여름을 방불케 한다. 국내 보일러업계의 날씨 또한 이와 비슷하다. 본격적인 가을 성수기를 맞아 업체간 경쟁구도가 한층 치열해졌다.


국내 보일러시장은 경동나비엔을 선두로 귀뚜라미보일러, 린나이코리아가 2~3위를 형성해왔다. 하지만 지난해를 기점으로 변화의 조짐이 감지됐다. 매출 3823억원을 기록한 경동나비엔이 앞선 가운데 3위 린나이코리아가 3084억원의 매출을 기록하며 귀뚜라미보일러(2864억원)를 제치고 2위로 올라선 것.

올 들어 보일러업계는 또 하나의 변수를 맞았다. 독일 최대 보일러 생산기업이자 글로벌 1위 업체인 바일란트가 한국 진출을 선언하며 국내시장에 뛰어든 것이다. 이 회사는 프리미엄 보일러시장을 겨냥해 고급·대형주택을 타깃으로 삼고 본격적인 마케팅을 시작했다.

바일란트뿐이 아니다. 보쉬, 비스만 등 다른 독일 메이저업체도 이미 세계 최대시장이 될 중국에 생산기지를 구축하고 중국은 물론 아시아 지역으로 시장을 확대하고 있다. 특히 한중 FTA 체결로 국내로 수입되는 중국 내 생산제품의 관세가 철폐된 상황에서 중국 내 생산 기지를 기반으로 국내 시장 진출을 호시탐탐 노리던 글로벌 메이커들은 호재를 맞았다. 이에 따라 국내 보일러 제조사들은 시장 수성을 위해 상대적으로 불리한 위치에서 그들과 경쟁하는 처지에 놓였다.

경동나비엔의 글로벌 생산기지 서탄공장 전경. /사진제공=경동나비엔

◆ 바일란트 국내 입성, 긴장하는 한국

현재 국내 보일러업계는 글로벌 메이커들의 공격적인 움직임에 대비해 사물인터넷(IoT)기술과 접목한 신제품을 내놓는 등 탄탄한 영업망과 A/S 시스템을 바탕으로 적극적인 대응국면에 돌입했다. 특히 글로벌시장에서 바일란트를 비롯한 유럽업체와 겨뤄본 경험이 있는 경동나비엔의 행보가 주목된다.


경동나비엔은 도시가스가 막 보급되던 지난 1988년, 아시아 최초로 물을 데우고 버려진 폐열을 다시 이용해 물을 데울 수 있는 콘덴싱보일러를 개발해 우리나라에 고효율·친환경 보일러 시대를 열었다. 이후에도 콘덴싱 기술력을 바탕으로 업계 최초로 세계시장에 진출하며 보일러 및 온수기의 수출산업화를 주도했다.

실제 미국을 비롯한 북미 지역과 러시아에서의 성과는 눈여겨 볼 만하다. 큰 물탱크에 물을 데워놓고 쓰는 저탕식 온수기가 일반적인 북미지역은 2000년대 들어 다카키를 선두로 린나이, 노리츠 등 일본 기업이 순간식 가스온수기를 내놓으며 보일러시장을 선점했다.


순간식 가스온수기시장의 성장가능성을 확인한 경동나비엔은 자사의 콘덴싱기술을 접목한 초고효율의 친환경제품을 선보이며 일본기업들이 점령한 시장의 판도를 바꿔놨다. 경동나비엔은 현재 미국과 캐나다시장에서 지난 2008년부터 콘덴싱 가스온수기 부문 시장점유율 7년 연속 1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콘덴싱보일러 역시 2013년도부터 1위를 고수 중이다.

경동나비엔은 독일브랜드를 선호하는 러시아에서도 바일란트, 보쉬, BDR 등 서유럽 기반의 기업을 제치고 벽걸이형 가스보일러시장 점유율 1위에 올랐다. 글로벌시장에서의 이 같은 성과는 콘덴싱기술을 기반으로 현지에 최적화된 제품을 선보인 결과다. 특히 북미 지역은 초고효율의 콘덴싱기술력을 적극 활용한 제품으로 프리미엄시장을 공략한 게 주효했고, 러시아 지역에선 가혹한 기후환경에도 가동이 멈추지 않는 안정된 품질력으로 승부한 것이 효과를 봤다.

러시아 냉난방설비 전시회 ‘아쿠아썸 모스크바’에서의 경동나비엔 부스. /사진제공=경동나비엔

◆ 미·러 '강자' 경동나비엔, 바일란트 무릎 꿇릴까

그러나 유럽에서 확고한 1위를 차지한 바일란트는 유럽 외 지역에서는 그리 좋은 성적을 내지 못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전세계 보일러기술의 격전지로 떠오른 미국시장에서의 결과. 미국시장에서 바일란트는 지난 2008년 태양열 시스템으로 진출했지만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판매 실적으로 곤혹을 치렀다.


러시아에서의 성적도 바일란트로선 아쉬움이 남는 대목. 이 회사는 독일 브랜드에 대한 높은 선호도를 바탕으로 시장 1위를 노렸지만 네덜란드 기업 BDR의 벽을 넘지 못해 2위에 머물렀다. 더욱이 2008년 러시아 진출을 본격화한 경동나비엔이 2011년 시장 1위로 올라선 이후에는 3위로 밀려났다.

그렇다면 바일란트는 한국시장에서 어떤 성적표를 받게 될까. 사실 이 회사는 국내시장에 대한 기억이 좋을 리 없다. 국내시장 진출이 이번이 세번 째로 앞선 두 차례 도전에서 바일란트는 높은 시장의 벽을 실감하고 번번이 고배를 마셨다. 지난 1992년 국내 업체인 라니와 합작사를 설립하며 국내 진출을 타진했으나 무위에 그쳤고 2009년에는 지사까지 설립하며 야심차게 한국시장에 들어왔지만 글로벌 금융위기 등 녹록지 않은 시장환경을 이기지 못하고 발길을 돌렸다.

북미시장을 제패한 경동나비엔의 프리미엄 보일러 'NCB'. /사진제공=경동나비엔
따라서 지금은 '국내 1위' 경동나비엔과 '세계 1위' 바일란트의 본격 대결에 보일러 업계의 이목이 집중된 상황이다.

경동나비엔으로선 맞대결을 자신하는 분위기다. 그도 그럴 것이 이 회사는 연 생산량 200만대로 단일 규모로서는 세계 최대 보일러 생산공장인 서탄공장을 건립하며 글로벌 시장 확대를 위한 기반을 마련했다. 서탄공장을 통해 원가 경쟁력 강화와 체계적인 품질 관리를 동시에 실현함으로써 바일란트, 보쉬 등 글로벌 업체를 제치고 세계 1위 보일러 기업으로 올라서겠다는 각오다.

또한 경동나비엔은 엄격하기로 유명한 미국기계학회(ASME)의 품질인증을 통과한 프리미엄 보일러 NCB를 하반기 국내에서도 출시해 바일란트 제품과 정면승부를 벌일 계획이다. ASME는 전산업에 사용되는 보일러 및 압력용기 등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제품별 품질 및 생산 시스템에 대한 인증으로, 품질과 생산시스템에 관한 가장 공신력있는 인증제도다. 단순히 완성품만이 아니라 부품의 설계, 내구성, 생산시스템 등 모든 생산과정을 검증하며 3년마다 인증을 갱신한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400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