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의 하와이’로 유명한 일본의 남쪽 끝 섬 오키나와. 일본 유일의 아열대 기후와 더불어 청정자연을 자랑하는 대표 관광지로 유명하지만 사실 세계는 이곳을 다른 관점에서 주목한다. 바로 ‘장수’(長壽). 오키나와는 세계 4대 장수마을 중 하나로 꼽힌다. 지난 1973년부터 2004년까지 32년 동안 일본에서 가장 수명이 긴 곳이었다. 특히 오키나와 북쪽에 위치한 오기미손은 20년 전 세계보건기구(WHO)로부터 세계 최고 장수지역으로 인정받았다.

타이라 스미코씨(왼쪽)와 나카이마 유키코씨(오른쪽)가 하루일과를 메모장에 기록하고 있다. /사진=김설아 기자

◆ 장수의 비밀, ‘키워드 3’

오키나와 중심지인 나하시에서 버스로 2시간쯤 달렸을까. 북쪽 해안가에 위치한 오기미손이 모습을 드러냈다. 지난달 11일 장수마을 탐방을 위해 찾은 오기미손 마을은 그야말로 산 좋고 물 좋은 곳에 위치한 작은 농촌마을이었다. 푸른 나무가 모여 숲을 이루고 때 묻지 않은 자연이 병풍처럼 감싸고 있는 곳. 그 신비스런 마을의 비밀을 찾아 첫발을 내딛었다.


“80살은 사라와라비(어린아이). 90살에 저승사자가 마중 나오면 100세가 될 때까지 기다리라 말하고 돌려보낸다. 우리는 나이 들어 늙어갈수록 더더욱 원기왕성하고 늙어서는 자식에게 응석을 부리지 않는다. 장수를 누리고 싶다면 우리 마을로 오라! 자연의 혜택과 장수의 비결을 전수하겠다. 우리 오기미손의 노인들은 여기가 일본 제일의 장수촌임을 드높여 선언한다.”

마을 입구에 자리한 ‘장수 일본 제일’이라는 제목의 석비가 눈길을 끈다. 석비에 새겨진 문구대로 인구 3200여명이 모여 사는 이곳은 일본 장수촌의 명성과 전통을 변함없이 이어오고 있다. 이곳에선 90세 이상의 노인을 쉽게 만날 수 있다. 마을의 90세 이상 인구는 올해로 80명을 넘어섰다.


마을회관에서 만난 타이라 스미코씨(98)는 오기미손 마을의 장수비결로 3가지 키워드를 꼽았다. 규칙적인 생활과 음식, 그리고 노동이다. 무엇보다 이 3가지는 모두 공동체 안에서 이뤄진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이곳 노인들은 대부분 오후 10시면 잠자리에 들어 오전 6시에 일어난다. 기상과 함께 마을회관 혹은 몇몇 집에 옹기종기 모여 차를 마시고 간밤에 무슨 일은 없었는지 살핀 뒤 서로의 건강을 빈다. 한국의 국민체조와 비슷한 ‘라디오체조’는 하루도 빠뜨리지 않는 아침 필수코스다. 체조가 끝나면 각자 집으로 돌아가 아침식사를 한다.


“뭐든지 다 잘 먹어요. 생선과 고기를 매일매일 세끼에 모두 챙겨먹죠. 다만 고기는 삶아서 야채와 곁들여 먹어요. 비타민과 미네랄이 풍부한 우미보도(바다포도)와 고야(여주), 두부 요리도 1년 내내 먹는 음식 중 하나예요. 간식으로는 베니이모(자색고구마)와 시쿠아사(귤 모양의 레몬 일종) 젤리를 즐겨 먹죠.” 

오기미 마을의 점심식단. /사진=김설아 기자

오기미손 마을의 식단 특징은 ▲육류를 많이 섭취하고 ▲고야·파파야 등 녹황색 채소의 섭취량이 일반인에 비해 많으며 ▲콩류의 섭취가 많고 ▲과일 종류를 많이 먹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소금의 섭취량. 일본정부에서 내건 1인당 10g이라는 소금 섭취량을 달성하는 유일한 현이 오키나와이며 그중에서도 오기미손 마을은 1인 평균 9g으로 가장 낮다.

잘 자고 잘 먹었다면 잘 움직여야 한다. 20년째 오기미손 노인회장을 맡은 나카이마 유키코씨(87)의 취미는 게이트볼. 마을의 전통산업인 밭일이 끝나면 몇몇 친구들과 즐기는 게이트볼은 ‘꿀맛’ 이란다.


“이 마을엔 17개 부락이 있는데 각 부락마다 오후 2시간씩 게이트볼을 즐겨요. 우리 마을에도 게이트볼 경기장이 몇군데나 있는데 시간만 되면 알아서 스틱을 손에 쥐고 모이는 식이죠. 전체 대회도 1년에 한번 열리는데 젊은이 뺨치는 격렬한 경기가 펼쳐져요. 열정이 생기는 취미가 아닐 수 없어요.”

◆ 꽃 같은 인생, 진짜는 80대부터

이곳에서는 노동도 하나의 놀이다. 고령이 돼도 몸이 움직이는 한 사회와 관계된 활동을 지속할 수 있다는 게 이곳 노인들의 공통된 생각이다. 밭에 모여 풀을 뽑거나 함께 모여 책을 읽는 노인들의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오기미손 마을에서는 공동체 행사나 봉사활동, 마을의 공공사업 등의 사회적 네트워크가 활발하게 이뤄진다. 남편과 사별 후 혼자 살고 있는 스미코씨를 외롭지 않게 만드는 비법 중 하나다.

“외로울 틈이 없어요. 낮잠은 절대 자는 법이 없죠. 어떤 날은 친구들과 모여 노래를 부르고 어떤 날은 밭에서 가꾼 야채를 수확하고…. 늘 하루하루가 새롭죠. 저는 그날 한 일을 매일 일기로 기록해요. 100세가 되려면 두해가 남았는데 앞으로도 10년은 더 쓸 수 있을 것 같아요(웃음).”

‘9988234’. 일본인들이 인사처럼 자주 건네는 말이다. 99세까지 88하게 살다가 2~3일 앓고 죽자(死)는 뜻. 일본인들은 잔병치레 없이 건강하게 오래 살다 하루아침에 죽는 것을 일생일대의 축복으로 여긴다.

그러나 오기미손 마을에선 이 바람도 무색해 보인다. 이곳 노인들은 말한다. 50~60대는 꽃봉오리에 불과하다고. 진짜 꽃 같은 인생은 80대부터 시작된다고 말이다. 어딜 가나 마주하는 자연과 생명력을 주는 공동체의 삶은 아라비아숫자로 가둔 나이조차 잊게 만든다.

“젊음이 졌다 해도 살아 숨 쉬는 한 현역으로 있고 싶어요. 일도 하고 공동생활도 즐기고 마음이 편안한 상대에게 의지도 하면서 말이죠. 너무 애쓰지 않고 서두르지 않고 느긋하게 지금처럼. 이 작은 마을 안에서 보람을 느끼며 살아가는 ‘낙원의 시간’이야말로 장수의 가장 큰 비결이 아닐까요.”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406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