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하기 힘든 시대다. 어렵사리 창업에 성공해도 생존할지는 미지수다. 하물며 시장에 성공적으로 안착하며 자리매김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사장·대표를 한 번이라도 해봤다면 장수기업이 얼마나 대단한지 깨닫게 된다. 팔림직한 제품·서비스는 숱하게 많다. 그 와중에 소비자는 나날이 영리해진다. 웬만한 만족과 감동이 아니면 고객은 더 이상 소비자극을 받지 않는다. 지금처럼 장기불황이 지속되는 저성장시대에선 더욱 그렇다.



그래도 잘나가는 회사는 늘 있다. 불황에서 호황을 낚으니 평범하지 않은 건 당연하다. 열매만 보면 줄기와 뿌리는 놓치기 십상이다. 정작 중요한 건 열매 그 이전단계다. 그 줄기와 뿌리에는 어떤 형태로든 혁신의 요소가 숨어있기 마련이다. <파괴자들 ANTI의 역습>은 생존과 진화를 통해 ‘파괴→혁신’의 연결고리를 만들어낸 4개 기업을 다룬다. 기존 강자들이 호령하던 질서를 파괴하고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낸 주역들이다. 그래서 제목이 ‘파괴자들’(Disrupters)이다.

책은 이들 4개 성공기업의 새로운 혁신질서를 분석한다. 바로 아마존, 넷플릭스, 테슬라, 이케아 등이다. 누구나 한두 번쯤은 들어봤음직한 거대기업이다. 이들은 몇몇 공통점을 갖는다. 이케아가 지난해 말 1호점을 개장하고 아마존이 한국 진출 초기 단계지만 나머지 2개사는 한국 진출이 아직이다. 그런데도 관심은 지대하다. 업계는 물론 언론조차 이들의 일거수일투족에 주목한다. ‘파괴자들’의 명성처럼 한국 진출에 따른 후폭풍이 상당할 것이란 두려움 탓이다. 저자들은 ‘포비아’(Phobia, 공포증)란 표현까지 쓴다. 국내 경쟁사가 그 파괴대상일 수 있어서다.


공통점은 또 있다. 파괴자들의 면모가 놀랍도록 일치하는 게 ‘고객우선’의 가치 지향이다. 어떤 기업이든 그러하겠지만 이들 기업은 상품기획부터 AS까지 아주 차별화된 고객주의를 실천한다. 편의성이나 가격 메리트만 내세우지 않는다. 고객이 뭘 원하는지 꼬집어 제안해 입소문의 평판에 올랐다. 불편함을 판다는 이케아가 그 선두주자다. 인터넷 쇼핑환경을 획기적으로 개선한 아마존, 간편한 시청환경과 강력한 추천엔진을 갖춘 넷플릭스, 빠르고 안전하되 친환경적이기까지 한 테슬라도 매한가지다. 답답해도 기존질서를 수용할 수밖에 없었던 고객심리를 정확히 꿰뚫어본 덕이다.

‘파괴→혁신’은 일차원이 아니다. 그 사이에 ‘진화’를 넣음으로써 ‘파괴→진화→혁신’의 다차원적인 창조노력을 조직 내부에 안착시켰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기획부터 판매까지 개별단계 하나하나에 누락되지 않는 진화과정을 체화시켰다는 점은 그 혁신이 끊임없이 유동적임을 의미한다. 회사조직이 생생하게 숨 쉬는 진화생물체니 제아무리 고객변심과 이탈경고조차 탄력적인 대응이 가능하다. 민주적 디자인과 독특한 마케팅·브랜딩 전략이 일상적인 운영체계(이케아), 컴퓨터 업그레이드하듯 상상초월의 전기자동차 혁신공정(테슬라), TV와 인터넷을 고객시선에 맞춰 늘 진화하는 기업문화(넷플릭스), 원칙을 뺀 나머지는 끝없이 개선토록 만든 실용주의 유통조직(아마존) 등이 그렇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책의 기획배경은 공포조장이 아니다. 기존 질서를 깨고 승승장구하는 그들의 파괴력을 분석해 벤치마킹을 하자는 의도가 짙다. 정체된 시장잠재력에 허우적대며 좀처럼 새로운 기운이 스며들지 못하는 한국시장에 대한 안타까움도 많다. 저자들의 설명처럼 한국의 신생기업과 새로운 미래를 꿈꾸는 이들에게 용기가 되기를 원한다. 그 핵심가치는 기업가정신이다. 혁신을 반복하며 기업이익보다 고객이익을 우선하는 가치체계의 대전환은 오직 기업가정신에서 비롯되는 까닭이다.

김인순 외 지음 | 한스미디어 펴냄 | 1만6000원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411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