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유의 공급과잉과 중국 경기둔화 우려로 ‘저유가 공포’가 현실화됐다. 여기에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의 대립이 외교단절이라는 결과로 곪아터지면서 국제원유시장에 닥쳐올 큰 위기가 예고된다. 양국의 지리적 위치가 세계 최대원유수송망과 겹치기 때문이다. 이 같은 악재들로 최근 국제유가가 배럴당 20달러대까지 폭락했다. 전문가들은 국내산업이 심각한 불황을 겪을 수 있다며 우려한다.


하지만 저유가가 우리나라에 큰 호재가 될 수 있다는 기대도 존재한다. 기름값이 떨어지면 자가용운전자는 이득이다. 산업계도 기름 소비량에 따른 원가를 절감할 수 있다. 이렇게 따지면 저유가는 ‘양날의 검’인 셈이다. 경제 전반에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과 부정적인 영향을 모두 가졌다는 얘기다. 국내 증시에서 바라보면 유가 하락은 위험자산 선호심리를 위축시킨다. 그러나 유가 하락으로 수익성이 높아지는 업종도 있다.

◆정유·석유화학·유틸리티업종 ‘주목’

국제유가 하락으로 수혜가 기대되는 업종은 정유업이다. 정유업종은 지속되는 저유가 기조로 정제마진이 커졌다. 또 제품수요가 늘면서 상승기류를 타고 있다. 신영증권에 따르면 SK이노베이션은 올해 영업이익으로 1조8451억원, S-Oil은 1조871억원, GS는 1조4819억원을 기록할 전망이다. 2014년에 이들 정유사는 모두 적자를 기록했다. 하지만 올해는 끊이지 않는 저유가 흐름으로 흑자전환이 기대된다.


증권사들의 정유사 관련 리포트는 긍정적이다. 메리츠종금증권은 SK이노베이션의 올해 정제마진이 강세를 띠고 석유화학제품 수급이 타이트함을 고려할 때 영업이익이 크게 늘어날 것으로 분석했다. 또 교보증권은 S-Oil이 유가 약세에 따른 정유 실적개선 등으로 영업이익이 전년대비 2673억원 상승할 것으로 내다봤다. 국제유가 하락은 정유사의 정제마진에 긍정적이어서 올해 대체로 전망이 밝다는 게 증권사들의 공통된 평가다.


SK이노베이션 울산 정유공장 전경. /사진제공=SK이노베이션
LG화학 여수공장. /사진제공=LG화학

정유 3사의 주가 흐름도 꾸준히 오름세다. 지난해 8월 8만원대였던 SK이노베이션의 주가는 최근 13만원대로 치솟았다. 같은 기간 S-Oil은 5만원대 초반이었지만 지금은 8만원대를 넘본다. GS는 지난해 8월 4만원대 초반에서 거래됐지만 연말에 5만원대로 뛰었다.

석유화학도 저유가 덕을 볼 것으로 전망된다. 석유화학업체는 원유에서 나오는 납사(Naphtha)로 제품을 생산하는데 유가가 떨어지면서 납사가격도 하락한 것. 제품가격이 그대로 유지되는 현 상황에서 꽤 매력적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석유화학업종 중에서는 LG화학과 한화케미칼의 성장세가 눈에 띈다. 석유화학업계에 따르면 LG화학의 올해 영업이익은 지난해보다 39% 증가한 5053억원, 한화케미칼은 22% 늘어난 4870억원의 호실적이 기대된다. 윤재성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마진 확대뿐만 아니라 최근 이란시장이 열리면서 석유화학제품의 수출 여력도 증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저유가는 에너지를 원자재로 소비하는 유틸리티업종에도 긍정적이다. 특히 한국전력의 실적상승이 점쳐진다. 유가가 떨어지면 연료비와 전력 구입비가 감소하기 때문이다. 한전은 전기요금 인상으로 2013년부터 영업이익이 흑자로 전환됐다. 또 저유가 영향으로 영업이익이 2013년 1조5190억원에서 지난해 5조7876억원으로 대폭 증가했다.

증권업계는 한전의 올해 영업이익이 10조원을 넘을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았다. 김영환 신한금융투자 애널리스트는 “두바이유 가격이 배럴당 1달러 내려가면 한전의 영업이익은 2155억원 개선되는 효과가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한국전력 사옥. /사진제공=한국전력


◆항공·해운, 더 이상 수혜업종 아냐


반대로 과거에는 저유가 수혜주로 꼽혔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은 업종도 있다. 항공주는 그동안 대표적인 저유가 수혜주로 꼽혔다. 전체 비용에서 유류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30%에 육박하기 때문. 그러나 국제유가가 폭락한 요즘 항공주는 약세다.

이유는 환율에 있다. 국내 항공사들은 항공기를 미국과 유럽 등에서 수입(임대)하기 때문에 외환(달러)부채가 많다. 달러가 강세일 경우 그만큼 빚이 늘어난다. 1년 전 1070원대였던 원/달러환율은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 등의 영향으로 1200원을 넘어섰다.

송재학 NH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유가가 1달러 떨어질 때마다 대한항공은 연간 320억원, 아시아나항공은 140억원의 유류비 절감 효과를 얻는다”며 “반면 원/달러 환율이 10원 오르면 대한항공은 800억원, 아시아나항공은 170억원의 외화 환산 손실이 나타난다”고 분석했다.

저유가 때마다 주목받던 해운업도 최근 투자자의 관심 밖으로 밀렸다. 저유가로 인한 원가절감 효과보다 경기침체로 인한 수요부진 등의 외부 경기상황이 더 크게 작용했기 때문이다. 과거 저유가시절 해운업체는 유가가 떨어지는 만큼 원가를 절감했다. 앞으로 유가가 상승할 것에 대비해 원유를 구입하는 수요도 있어 매출이 늘어날 가능성도 있었다.

하지만 저유가는 신흥국의 경기침체를 촉발해 해운사들에게 악재로 다가왔다. 한진해운 주가는 지난해 4월14일 이후 계속 내리막길을 걸었다. 현대상선도 지난해 4분기 최고점이었던 종가 8120원에서 2000원대로 하락했다. 하준영 하이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해상운임에 유류비가 포함돼 유가가 떨어지면 운임도 낮아진다”며 “수요부진이 겹치면서 운임이 더 떨어지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항공과 해운주는 전통적인 저유가 수혜주로 꼽히지만 이번에는 상승세를 타지 못했다”며 “국제유가가 너무 많이 내려간 탓”이라고 말했다. 또 “글로벌 경기침체에 따른 수요 부진과 업종별 상황에 따라 수혜를 기대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며 “따라서 투자자들의 철저한 사전분석이 요구된다”고 덧붙였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420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