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23~25일 광명스피돔에서 경륜 별들의 전쟁 '그랑프리'가 열린다. /사진제공=국민체육진흥공단
오는 23~25일 시즌 경륜 대미를 장식할 그랑프리에 팬들의 이목이 광명스피돔에 집중되고 있다. 특히 이번 그랑프리는 선수층이 두터운 탓에 예선부터 치열한 접전으로 명승부가 펼쳐질 전망이다.

신인 경주나 각종 대상 경주가 스타의 등용문이라면 그랑프리는 명실상부한 최강자를 뽑는 자리다. 우승자는 경륜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다.


잠실(올림픽공원) 경륜부터 광명경륜까지 그랑프리 20년사를 경륜 예상지 '최강 경륜' 박창현 발행인의 도움으로 살펴봤다.

역대 그랑프리 우승자. /자료제공=국민체육진흥공단
◆빅3→5인방→4천왕→지존시대… 경륜 변천사


과거 잠실 경륜 시절인 1996년, 연말 예정된 경주가 폭설로 취소되는 초유의 사태를 맞이한다. 돔 경륜장 시대인 지금으로선 상상하기 힘든 모습이다. 덕분에 당시 마지막 대상 경주(경륜사장배)서 우승을 차지한 정세연이 그랑프리 초대 챔피언에 오른다. 

1997년에는 2기로 입문한 빅3 김보현, 원창용, 정성기가 벨로드롬(경륜장)을 호령했다. 이 시점부터 창원팀이 독주체제를 갖추게 되는데 이 지역 출신인 원창용(1997년)과 김보현(1998년)이 연말 그랑프리를 나란히 접수한다.


이후 3기로 입문한 아마추어 도로 최강자인 용석길과 원년 멤버의 자존심 허은회가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하며 벨로드롬은 다시 절대 강자 없는 5인방 시대로 재편된다. 물론 세를 불려가던 창원팀의 입지는 점점 더 강화된다.

하지만 이도 잠시, 창원팀에 제동을 건 두 마리 용이 등장한다. 바로 4기로 입문한 엄인영과 주광일이다. 엄인영은 '경륜 황제' 칭호를 얻으며 5인방을 차례로 제압하면서 1999년 전무후무한 연대율(1, 2위로 골인한 회수를 전체 출주 회수로 나누어 백분율로 나타낸 것) 100%를 기록, 그해 그랑프리까지 움켜쥔다.


두 선수의 출현은 5인방 시대에서 4천왕 체제로 전환하는 계기가 됐다. 엄인영은 팔당에 새롭게 둥지를 틀며 창원팀 독주에 제동을 걸기 시작한다. 결국 라이벌이 된 두 팀의 맞대결은 벨로드롬의 최대 흥행카드로 늘 구름 관중을 몰고 다녔다.

이때가 경륜의 전성기로 각종 대상경주 등 큰 규모의 대회에서 엄인영·주광일 콤비가 맹위를 떨쳤다.


◆밀레니엄시대… 지성환, 지존 시대를 열다

2000년 엄인영이 시드니 올림픽 참가 이후 갑작스런 슬럼프로 주춤할 무렵, 히로시마 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인(1㎞ 독주) 지성환(6기)이 혜성과 같이 등장한다.

지성환은 페달링부터 달랐다. 스타트시 엉덩이를 들지 않았는데 순간스피드가 뛰어났고 종속도 한 바퀴 승부를 나서도 떨어지는 법이 없었다. 죽마고우였던 원창용을 따라 창원에 둥지를 튼 지성환은 단숨에 4천왕을 굴복시켰고 밀레니엄시대 첫 그랑프리 우승자가 됐다.

엄인영에 흔들렸던 창원팀은 또다시 무적의 반열에 오른다. 벨로드롬이 처음으로 1인 독주시대를 맞이했고 그는 '경륜지존'이 됐다.

하지만 지성환은 고질적인 허리 부상으로 결국 이듬해 수술대에 올라 짧지만 굵은 활약을 마감했다.

이후 국내 최고의 스프린터 찬사를 받던 현병철(7기)과 홍석한이(8기)이 차례로 등장하며 지성환의 대를 잇는다. 현병철은 2001년 챔피언에 올랐다. 홍석한은 2002년과 2003년 연속 우승으로 '두 번은 허락하지 않는다'는 그랑프리의 불문율을 깨는 기염을 토했다.

2004년엔 그랑프리 사상 처음으로 큰 이변이 발생된다. 아마시절 도로 출신인데다 선천적으로 한 쪽 다리가 짧았던, 게다가 경륜에선 무명과 같던 이경곤이 주인공이다. 이경곤은 시즌 후반 파란의 주인공으로 떠오르더니 연말 그랑프리까지 움켜쥐었다. 화려한 아마 명성의 스프린터들이 독식한 그랑프리에서 일대 파란이 일어난 것.

당시 2착은 역시 특선에선 막 고개를 들기 시작한 김민철로 이들의 동반 입상은 80배가 넘는 쌍승 배당률을 기록했다.

◆벨로드롬의 전설 조호성 등장… 2006년 광명돔 시대 개막

잠실 경륜장 마지막해 우리나라 사이클 선수로는 불세출이란 평가를 받은 조호성의 등장으로 벨로드롬이 떠들썩해진다. 중장거리 출신은 경륜에서 통할 수 없다는 평가에도 조호성은 세계대회 우승자답게 승승장구한다.

처녀 출전한 2005년 잠실 마지막 대회를 접수했고 광명으로 옮긴 2년을 포함해 그랑프리 3연패라는 전인미답의 고지에 올라선다. 조홍성은 그랑프리뿐 아니라 최다 연승, 최다 상금 등 경륜의 모든 기록들을 갈아치우며 '벨로드롬 황제'로 등극했고 은퇴 후엔 경륜 레전드가 된다.

2008년 조호성이 연말 올림픽 출전을 목표로 갑작스레 은퇴를 결심하면서 어수선한 틈을 노린 홍석한이 5년만에 그랑프리를 재탈환한다. 하지만 이도 잠시 80년대생들이 세대교체를 외치며 무섭게 성장한다.

◆춘추전국시대… 80년대생으로 세대교체

황제가 떠난 벨로드롬은 절대 강자가 없는 춘추전국시대에 돌입한다. 특히 80년대생들의 전성시대로 변한 벨로드롬은 4점대의 무시무시한 고기어가 출현한다. 고기어시대를 몰고온 장본인 이욱동은 80년대생으론 첫 우승(2009년)을 거두는 돌풍을 일으킨다.

◆스타군단 호남팀 전성시대… 이명현 등장

포스트 조호성이란 기대와 달리 이욱동의 기세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경쟁 선수들이 고기어에 적응을 마친데다 이욱동은 부상이 겹치면서 하락세로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결국 벨로드롬은 절대 강자도 절대 강팀도 없는 혼란 속에, 2010년 김배영, 김민철, 송경방, 노태경에 16기 수석 이명현이 가세한 호남팀이 지역 판도에 대변혁을 일으킨다.

이른바 '벨로드롬의 레알 마드리드'라 불리는 스타군단 호남팀이 2010년 경륜을 평정하기 시작한 것. 노태경은 그해 승률, 연대율, 상금 등 전 타이틀을 싹쓸이 했다. 이런 노태경과 이명현을 등에 업은 송경방은 그토록 숙원하던 호남팀에 첫 그랑프리를 안긴다.

2011년에는 이명현이라는 괴물 라이더가 등장한다. 4.23의 당시 최고 기어를 장착한 이명현은 화끈한 선행 전법을 주무기로 경륜의 레전드 조호성도 이루지 못했던 대상 7회 연속 우승이란 금자탑을 이룩, 스타덤에 올랐다. 또 하늘만 허락한다는 그랑프리를 다음회까지 2회 연속 접수한다.

하지만 영원할 것 같던 호남팀의 아성은 신성 이현구, 박용범이 등장하면서 흔들렸다. 설상가상 이명현도 기흉(폐질환)이란 복병을 맞이하며 권좌에서 물러났다.

◆비선수 출신 첫 그랑프리 우승자 박병하

경륜 출범 20년째를 맞이한 2013년 일대 사건이 일어나게 되는데 박병하가 비선수 출신 최초로 그랑프리를 거머쥔 것이다. 이는 최고의 엘리트 국가대표 출신들에게만 허용했던 금단의 벽을 허문 '충격' 그 자체였다. 

그리고 제2의 전성기에 접어든 김해팀의 좌청룡·우백호 이현구·박용범이 차례로 2014년과 2015년을 접수, 김해팀이 벨로드롬을 접수한다.

한편 그랑프리 승부수는 추입이 14회로 가장 많았다. 선행과 젖히기는 각 1회와 5회에 불과했다. 우승자 평균 연령다. 우승자 평균연령은 28세, 역대 최고령은 33세(조호성 2007년)였다. 

쌍승 최고 배당은 85.7배, 평균배당은 약 15배를 기록했다. 이중 최저배당이 동반입상에 성공한 예는 1997년과 2008년, 단 두 차례밖에 없었다.

또한 자력으로 우승을 차지한 것은 2001년, 2004년, 2009년(현병철, 이경곤, 이욱동) 등 세 차례에 불과했다. 실력이 비슷한 선수들이 몰릴 경우 팀동료나 친한 선후배 연대가 직간접적으로 우승에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