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 섬긴 정약용의 혼 담긴 '다산길 170㎞'

운길산 수종사에서 바라본 두물머리 전경. /사진=박정웅 기자
"군자의 학(學)은 수신이 그 반이요 나머지 반은 목민인 것이다. 성인의 시대가 이미 멀어졌고 그 말씀도 없어져서 그 도가 점점 어두워졌으니 오늘날 백성을 다스리는 자들은 오직 거두어들이는 데만 급급하고 백성을 기를 바는 알지 못한다." <목민심서 서문>

다산길은 남양주의 실핏줄이다. 느릿느릿 걸으며 남양주의 속살을 만나는 데엔 다산길만 한 것이 없다. 다산길은 남양주 마재마을에서 나고 자란 다산(茶山) 정약용(1762∼1836)의 이름을 땄다. 그 길 170㎞엔 얘깃거리가 많다.


조선의 대표적인 실학자인 다산은 남양주의 얼굴이다. 다산의 관직 생활과 유배 기간은 공교롭게도 18년씩이다. 독은 오히려 약이 됐다. 특히 남도에 홀로 몸을 묻은 시간은 철학에 깊이를 더하게 했다. 고절함과 쓸쓸함은 다산의 정신을 더욱 명징하게 했다. '1표2서'(경세유표·목민심서·흠흠심서)를 비롯한 500여권의 방대한 역저. 다산은 장 자크 루소와 헤르만 헤세와 함께 2012년 유네스코 세계기념인물로 선정됐다.

다산길 한강나루길을 걷다 마주한 팔당댐. /사진=박정웅 기자

◆18년 유배의 고절함이 낳은 철학


이번 무술년은 다산이 고향으로 되돌아온 지 200주년이 되는 해다. 목민심서(牧民心書) 또한 200주년을 맞았다. 남양주는 이 의미를 살려 올해를 '정약용의 해'로 선포했다. 목민(위정자)을 바로 잡아 하민(민중)을 이롭게 하려 한 다산의 혼은 다산이 걸었던 다산길 곳곳에 살아있다. 전남 강진에서 마재까지 '517㎞ 해배길 이어걷기'는 그래서 뜻깊다. 다산길은 남양주를 넘어 한반도 전체를 고르게 아우르는 실핏줄인 셈이다.


다산길은 총 13코스로 구성됐다. 한강삼패지구(덕소)-운길산역 한강나루길(1코스)부터 사릉길(13코스)까지 너른 남양주를 골고루 엮었다. 이 중 한강나루길은 다산을 가장 가까이 만나는 길이다. 능내 폐역 인근 마재의 다산유적지와 팔당호, 운길산 수종사엔 다산의 다향이 은은하다.
 
남양주시 조안면 팔당호 인근 다산유적지의 정약용 동상. /사진=박정웅 기자

◆다산유적지로 향하는 한강나루길


한강나루길은 한강을 허리춤에 낀 길이다. 중앙선 폐철로를 활용한 것으로 걷기와 자전거 여행을 겸할 수 있다. 팔당역에서 팔당호로 향하는데 한강의 고즈넉한 겨울 풍경을 담기에 좋다. 수도권의 생명줄인 팔당호는 남한강과 북한강의 정기를 모았다.

옛 중앙선 폐터널인 봉안터널. /사진=박정웅 기자
팔당댐 인근 봉안터널은 시간여행에 제격이다. 아롱다롱한 조명은 옛 중앙선 폐터널에 새 생명을 불어넣었다. 터널 안팎은 인생샷 스폿으로 손색없다. 여름철과 겨울철엔 각각 시원하고 따뜻한 기운을 선사한다. 상쾌한 기분으로 터널을 나서면 또 다른 시간여행이 기다린다. 바로 능내 폐역이다. 빛바랜 늙은 역은 새빨간 우체통을 품었다. 낮은 걸상에 몸을 걸치면 "넘어오면 안 돼!" 했던 이른바 '38선 책상'이나 '달고나'의 추억이 저절로 떠오른다. 엽서 달랑 한 장, 수취인 없어도 좋다.

능내폐역에서 팔당호 방향의 야트막한 산을 넘으면 다산이 있다. 다산유적지는 세상을 골고루 이롭게 하려 애를 쓴 다산의 뜻을 살펴서인지 입장료가 없다. 다산문화관, 다산기념관, 여유당, 다산묘, 사당, 실학박물관 등으로 이뤄진 유적지는 가족나들이에 좋다. 


다산길 한강나루길을 걷다 만난 능내 폐역. /사진=박정웅 기자
"수령이 백성을 위해서 있는 것인가, 백성이 수령을 위해서 생겨난 것인가? 백성이 곡식과 옷감을 바쳐 수령을 섬기고, 또 수레와 말과 하인들을 내어 수령을 맞아들이고 떠나보내며, 또는 기름과 피와 진액과 골수를 다 없애서 그 수령을 살찌우고 있으니 백성이 과연 수령을 위하여 생겨난 것인가. 그렇지 않다. 수령이 백성을 위해서 있는 것이다." <여유당집 원목(原牧)>

◆수령은 백성을 위해 있다

위정자가 가져야 할 기본은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다. 다산유적지 곳곳엔 다산의 추상같은 글귀가 많다. 다산은 위정자에겐 쓴소릴 주저하지 않았다. 위선자 틈바구니에서 곤욕을 치른 건 죄다 민중을 위한 따뜻한 마음에서였다. 다산에게 민중은 '개돼지'가 아닌 섬김의 대상이었다. 다산을 자세히 몰라도 괜찮다. 이러한 글귀만 훑어도 다산을 알기엔 충분하다. 


다산문화관은 다산의 방대한 저술과 두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담았다. 민중의 삶을 살찌우려 한 방대한 저술은 다산을 유네스코 세계기념인물로 만들었다. 탄생 250주년이던 지난 2012년, 다산은 프랑스 계몽사상가인 장 자크 루소(탄생 300주년), 독일 소설가·시인인 헤르만 헤세(사망 50주기), 프랑스 작곡가인 클로드 드뷔시(탄생 150주년)와 함께 세계기념인물이 됐다.

다산유적지 전경. 거중기를 비롯해 기념관과 여유당, 정약용 묘 등이 있다. /사진=박정웅 기자
다산문화관을 나서면 오른쪽엔 수원화성 축조의 상징인 거중기가, 왼쪽엔 다산기념관이 있다. 기념관엔 "하민(下民)들은 여위고 시달리고 시들고 병들어 서로 쓰러져 진구렁을 메우는데, 그들을 기른다는 자(牧民)는 바야흐로 고운 옷과 맛있는 음식으로 자기만 살찌우고 있으니 어찌 슬프지 아니한가"라며 위정자를 통렬히 비판한 목민심서를 비롯해 다산의 역저 사본이 전시돼 있다.

다산유적지 중심엔 다산동상이 서 있다. 동상 오른쪽으로 접어들면 다산의 일대기를 만난다. 언덕 아래엔 다산이 나고 자라 생을 마감한 여유당(복원 생가)이 있다. 언덕에 자리한 다산묘는 유적지와 팔당호를 굽어본다.

여유당(與猶堂)은 1925년 을축년 대홍수로 유실된 것을 1986년 복원한 것이다. 집 바로 앞엔 한강이 흐르고 뒤엔 낮은 언덕이 있어 다산은 여유당을 수각(水閣)이라고도 했다. 당호인 여유는 다산이 고향에 돌아와서 지었다. 여유당기에서 다산은 자신의 약점을 코끼리(與)와 원숭이(猶)에 비유한 노자를 따랐다. 신중하기로는 코끼리가 겨울 살얼음을 건너는 것과 같고 삼가기는 원숭이가 주변을 살피는 것과 같이 하라는 뜻이다.

실학박물관은 실학을 주제로 한 국내 최초의 박물관이다. 조선후기 실학의 출현과 발전 및 성과를 재조명하고 실학의 현대적 계승을 강조한 곳으로 교육적 가치를 앞세운다. 상설전시와 특별전시를 통해 실학을 조명한다. 이 중 상설전시는 실학의 형성, 전개, 천문과 지리 등으로 구성되고 특별전시는 실학 탄생의 배경이 된 김육과 대동법 등을 다룬다.

걷기길과 자전거길을 겸한 북한강철교. 오른쪽 산이 수종사가 있는 운길산이다. /사진=박정웅 기자

◆다선과 차를 나눈 수종사

운길산역은 다산길 1코스의 종착점이다. 또 예봉산(683m)과 운길산(610m)으로 각각 향하는 다산길 4코스와 5코스의 분기점이기도 하다. 운길산은 다산과 인연이 있는 수종사(水鐘寺)를 품었다. 5코스 초입의 조안체육공원을 지나 왼쪽 조안보건지소에서 운길산을 오르면 수종사다.

"담쟁이 험한 비탈길 끼고 우거져/ 절로 드는 길 분명치 않은데/ 응달엔 묵은 눈 쌓여 있고/ 물가엔 아침 안개 흩어지네/ 샘물은 돌구멍에서 솟아오르고/ 종소리 숲 속에서 울려 퍼지네/ 유람길 두루 밟지만/ 돌아올 기약 어찌 다시 그르치랴"

운길산 중턱 수종사로 오르는 계단길은 아름답다. /사진=박정웅 기자
다산은 서거정(1420~1488)이 '동방에서 제일의 전망을 가진 사찰'로 꼽은 수종사를 자주 찾았다. 이 시(遊水鐘寺)는 마재마을에서 유년 시절을 보낸 다산이 14세에 지은 것이다. 푸른 구름을 쫓아 고향을 떠날지라도 수종사를 잊지 않겠다는 다짐을 담았다.

다산은 '군자삼락’'에 비유할 정도로 수종사에서 지낸 즐거움을 추억했다. 다선(茶仙) 초의선사가 다산을 찾아와 두물머리의 빼어난 풍광을 즐기며 차를 즐긴 곳도 수종사다. 그런 연유에서인지 수종사엔 삼정헌(三鼎軒)이 있다. 삼정헌은 시(詩), 선(禪), 다(茶)를 엮은 다실이다.

세조와의 인연으로 수종사를 500년 이상 지켜온 은행나무. 나무 뒤로 북한강이 보인다. /사진=박정웅 기자
수종사는 두물머리 풍광이 압권이다. 예로부터 음유시인들은 수종사가 품은 풍광을 시(詩), 서(書), 화(畵)로 남겼다. 대표적인 인물이 서거정이다.

"가을이 오매 경치가 구슬퍼지기 쉬운데/ 묵은 밤비가 아침까지 계속하니 물이 언덕을 치네/ 하계(下界)에서는 연기와 티끌을 피할 곳이 없건만/ 상방(上方, 절) 누각은 하늘과 가지런하네/ 흰 구름은 자욱한데 뉘게 줄거나/ 누런 잎이 휘날리니 길이 아득하네" <양수리 수종사>

수종사는 모든 공간이 뷰포인트다. 두물머리 풍광은 삼정헌 바로 옆 뜰에서 봐도 괜찮다. 또 세조와 인연이 깊은 500년 은행나무 옆에서도 그만이다. 특히 응진전과 산신각으로 향하는 돌계단에서 수종사와 두물머리를 아우른 조망은 으뜸이다.

이 돌계단엔 약수가 있다. 돌 틈으로 맑은 물이 흘러나와 떨어질 때 종소리가 나 수종사라 했다는 다산이 말한 그 약수인 듯하다. 삼정헌의 차가 아닌들 어떠랴. 물맛 빼어난 약수엔 민중을 사랑한 다산의 다향, 맑고 향긋하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23호(2018년 1월17~23일)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