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릿느릿 떠나는 중국 츠수이(적수) 걷기여행 곳곳 폭포수, 그리고 다톄화의 치명적 아름다움
쇳물의 불꽃 향연 '타철화'. /사진=박정웅 기자 샛노란 쇳물이 춤춘다. ‘삼세번’이라 했나. 무쇠의 불꽃 역시 ‘삼세판’이다. 단단하고 시커먼 무쇠는 용광로에서 거센 불길을 만나 노랗고 무른 꽃으로 핀다. 이윽고 하늘로 솟구친 쇳물은 서로를 놓아 ‘쇠꽃’으로 산화한다. 허공서 제 명을 다하지 못했다는 악다구니인가. 쇳물은 땅을 할퀴더니 기를 쓰듯 생애 마지막 불을 토한다.
쇳물의 장단에 사람 또한 춤춘다. 호기심에 무턱대고 다가섰다가 대뜸 쏟아지는 불똥에 갈팡질팡. 아예 멀찌감치 내뺀 곳, 쇠꽃의 황홀경에 이끌렸다간 또다시 허둥지둥. 춤 또한 삼세판인가.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곳, 쇠꽃의 향연에 시선을 고정한 채 발끝만 그 놀림이 가볍고 경쾌하다.
단단하고 시커먼 무쇠는 무르고 노란 본성을 품었나. 쇳물이 그리는 쇠꽃, 다톄화(打鐵花·타철화). 지난달 18일, 중국 구이저우(貴州)성 츠수이(赤水)의 토성고진(土城古鎭). 츠수이허(赤水河) 강변에서 펼쳐진 타철화는 중국 기예(技藝)의 ‘끝판왕’이었다. 더구나 협곡 봄바람까지 업었으니 그 아름다움은 오죽 치명적이었으랴.
◆쇳물 튈라… 섬뜩해 더 매혹적인 타철화
타철화는 1600~1700도의 펄펄 끓는 쇳물로 불꽃을 만드는 도교의 기예로 출발했다. 명과 청나라 시절 흥성했던 중국의 민간 전통 불꽃놀이다. 2008년 국가지정 무형문화재가 됐다. 쇳물이 그리는 아찔한 아름다움은 중국의 4대 발명품 중 하나인 화약으로 만드는 불꽃보다 더 장렬했다.
용광로에서 들끊는 쇳물. 토성고진 지역민으로 구성된 공연팀은 일상복 차림으로 타철화를 공연한다. /사진=박정웅 기자 초창기 타철화는 도교의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목적으로 펼쳐졌다. 위험해서 더 매혹적인 타철화로 도교의 기세를 과시하고 민중을 사로잡으려 선보인 것. 아무나 흉내 낼 수 없는 ‘고난도’ 기예를 통해 도교에 대한 군중심리를 유도하려 한 퍼포먼스였다.
이후 타철화는 길함을 얻으려는 민간 전통놀이로 변모했다. 이른바 ‘발전’을 뜻하는 ‘파’와 발음이 비슷한 ‘화’(花)를 이용, ‘불꽃놀이(打花)를 할수록 더 발전하라’는 의미로 공연의 틀을 넓혔다.
토성고진 야경. 인구 2만여명의 토성고진은 관광 활성화를 위해 매주 주말 저녁 타철화를 비롯해 문화공연, 레이저쇼 등을 펼친다. /사진=박정웅 기자 현지민에 따르면 타철화의 본고장은 과거 제련술이 뛰어난 허난(河南)성 일대였다. 아름답지만 위험한 이 기예의 명맥을 오늘에도 잇기는 하나 춘절 대보름에만 반짝 선보인다. 이에 반해 토성의 타철화는 소형 공연이지만 주말마다 펼쳐져 원시의 츠수이를 밝힌다.
특히 방염복은 고사하고 일상복 차림으로 위험천만한 공연을 뚝딱 해치우는 배짱은 여간한 게 아니었다. 더 놀라운 건 출연자가 외지의 전문 공연팀이 아닌 평범한 지역민이라는 점이다.
타철화는 안전요원의 지시에 따라 일정 거리에서 관람하는 게 기본인데 이들 역시 일상복 차림이다. 그래도 두렵다면 아예 멀찌감치 떨어지거나 바람을 등진 곳에서 중국 기예의 꽃을 눈에 담을 수 있다.
☞ 미리보는 타철화(영상)
◆원시의 대숲길… 폭포는 쉬어가라 하네
어둡고 검은 게 쇠뿐이랴. 원시의 색은 대숲과 폭포로 이어진다. 그 규모는 오늘의 잣대로 헤아리기 어렵다. 특히 붉은 사암 퇴적층인 세계자연유산 단샤(丹霞)를 둘렀을 땐 원시의 색은 더욱 도드라진다.
츠수이 사동구 걷기여행길. 대숲이 빼곡한 가운데 공룡시대 양치식물도 눈에 띈다. /사진=박정웅 기자 츠수이는 대나무와 폭포의 세계다. 단 하루 만에 평생 볼 대나무와 폭포를 만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츠수이의 대나무는 바다를 이뤄 주하이(竹海)국립공원을 만들었다. 우후죽순이라 했나. 아열대성 기후에 비가 내리면 죽순 자라는 소리가 들릴 정도의 대나무 서식지다.
200여종에 이르는 대나무 단일 수종이 빼곡이 들어찬 협곡을 걷다 꼭 만나는 것이 폭포다. 폭포는 붉은 단샤가 꺼지거나 떨어져나간 곳마다 크고 작은 모양으로 걸음을 붙잡는다. 형태도 다양한데 사시사철 마르는 법이 없는 것도, 비가 올 때만 소생하는 것도 있다.
적수대폭포로 향하는 걷기여행길엔 크고 작은 폭포가 이어진다. /사진=박정웅 기자 폭포로 향하는 츠수이 걷기여행, 먼저 지역의 자랑인 적수대폭포(赤水大瀑布)다. 이름처럼 규모가 장대해 십장동(十丈洞)이라고도 부른다. 높이 76m, 폭 81m로 양쯔강(長江) 유역에선 황과수폭포 다음으로 크다. 황과수폭포는 아시아 최대 규모인데 개발의 여파로 폭포 수위를 인공적으로 조절하는 흠이 있다. 반면 적수대폭포는 온전한 자연의 것이라 가치가 더 크다.
부처의 세계인 불광암(佛光岩) 주상대폭포도 빼놓을 수 없다. 높이 261m, 폭 40m의 대폭포는 특히 해질녘 풍광이 압권이다. 붉고 거대한 단샤는 스러지는 옅은 빛을 품어 그 색깔을 더해서다. 비가 오거나 구름이 껴도 괜찮다. 높은 키에서 쏟아지는 폭포수 포말, 멀리 아름답고 웅장한 단샤와 가느다란 폭포수가 보일락 말락 하는 모양도 몽환적이다.
웅장한 붉은 단샤를 두른 운무 속 불광암 주상대폭포. /사진=박정웅 기자 국가지정 풍경구(명승지)인 사동구도 가볍게 찾아보자. 수렴동(水簾洞), 월량담(月亮潭), 비와암(飛蛙巖), 백룡담(白龍潭) 등 4개의 주요 폭포로 이뤄진 대숲길이다. 이중 첫번째 폭포(一洞)인 수렴동은 ‘물의 발’이라는 뜻처럼 폭포수 안쪽을 걸을 수 있다. 폭포수 사이를 뚫고 보는 바깥 풍광은 중국의 옛 무협영화를 떠올리게 한다.
오지 속 오지인 사자암 산촌. 비가 내린 가운데 고느적한 분위기가 좋다. /사진=박정웅 기자 오지 속의 오지인 사자암(獅子巖)의 폭포는 크게 6개로 분류된다. 각 폭포는 협곡 위나 아래쪽으로부터 순서에 따라 그 이름을 대신하곤 한다. 가령 ‘첫번째, 두번째 폭포’라고 불리는데 그만큼 외지인의 발길이 없는 지역이어서 원시적인 트레킹을 즐길 수 있다.
원시적인 트레일에서 만난 사자암의 한 폭포. /사진=박정웅 기자 어쩌면 츠수이 걷기여행은 대숲 속 폭포에서 완성된다. 태고적 단샤의 대숲과 폭포가 뿜어내는 산소와 음이온, 시원한 폭포수까지 더하니 청량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게다가 쥐라기의 양치식물 등 갖은 원시의 생것들이 푸르러 발걸음은 가볍지만 느릴 수밖에 없다.
대장정의 역사를 간직한 병안고진의 전경. 마을 아래로 츠수이허가 흐른다. /사진=박정웅 기자 원시의 자연이 살아 숨 쉬는 츠수이. 츠수이허 일대는 구이저우성과 쓰촨(四川)성, 윈난(云南)성으로 통하는 길목으로서 사람들이 오고간 자취도 아련하다. 주로 옛 마을을 뜻하는 고진(古鎭)이 그것인데 야오바고진(堯覇古鎭), 병안고진(丙安古鎭), 토성고진 등이 대표적이다.
쓰촨의 소금과 구이저우의 차가 만났던 야오바고진의 한적한 골목 풍경. /사진=박정웅 기자 츠수이허 건너편, 쓰촨의 야오바고진은 쓰촨의 소금과 구이저우의 차가 만났던 곳이다. 오래 묵은 객잔에서 한 잔의 차만으로도 느릿한 시간여행이 완성된다. 또 병안과 토성고진은 ‘사도적수’(四渡赤水)라는 홍군의 대장정 역사를 간직했다. 대장정 중 츠수이허를 네번 건넜다는 전적지에서의 인문여행도 츠수이의 또 다른 매력이다. <취재협조=뚱딴지여행·츠수이여행개발유한공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