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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도 순성(巡城)놀이라는 것이 있었다. 새벽에 도시락을 싸들고 5만9500척(尺)의 전 구간을 돌아 저녁에 귀가했다. 도성의 안팎을 조망하는 것은 세사번뇌에 찌든 심신을 씻고 호연지기까지 길러주는 청량제의 구실을 하는 데 부족함이 없다. 현재 서울은 도성을 따라 녹지대가 형성된 생태도시의 면모를 보여주기에 충분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위한 복원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해설은 과거와 현재의 대화다. 수년간 한양도성을 해설한 필자가 생생하게 전하는 도성 이야기를 소개한다. <편집자주>
부암동의 동명은 부침바위(付岩)에서 유래됐다. 이 바위에 자기 나이만큼 다른 돌을 문지르다 손을 뗐을 때 붙어서 떨어지지 않으면 사내아이를 낳는다는 전설이 있다.
많은 여인이 작은 돌을 붙이려고 애쓴 탓에 표면에 벌집처럼 구멍이 송송 뚫린 듯한 자국이 생겨서 부침바위라는 이름이 붙었다. 지금은 하림각 건너 종로구 부암동 경로당 건물 전면 하단에 부침바위터(付岩址)라는 표지판만 붙어있다.
부암동의 관할 법정동은 부암동·신영동·홍지동 등 3개 동이다. 이 가운데 백악산자락 동쪽 일부와 창의문, 백석동천 인근이 부암동이다. 백악산으로 올라가기 전 부암동 명승 서너곳을 찾아본다.
◆최고 권력가의 별장 ‘석파정’
'윤동주 시인의 언덕'을 내려와 부암동 북쪽으로 간다. 자하문터널을 지나면 서울미술관이 나온다. 서울미술관으로 들어가면 뒷산 기슭에 석파정(石坡亭·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26호)이 있다. 석파정은 조선 철종 때 영의정이던 안동김씨 세도가 김흥근의 별장이었다. 전 국왕의 외척세력을 몰아내고 흥선대원군이 집권한 후 이 별장의 주인도 바뀌었다.
대원군은 김흥근에게 석파정을 사려 했으나 거절당한 이후 아들 고종과 함께 그곳에서 하루를 묵었다. 임금이 묵은 곳은 신하가 지낼 수 없다는 것이 당시의 불문율이었기에 대원군은 별장을 빼앗을 수 있었다. 김흥근이 이곳에 살 때는 삼계동정사(三溪洞精舍)라고 불렀으나 대원군이 살면서 그의 호 석파를 붙여 석파정으로 고쳐 불렀다.
여기에는 안태각(安泰閣), 낙안당(樂安當), 망원정(望遠亭), 유수성중관풍루(流水聲中觀風樓) 등 8채의 건물이 있었는데 지금은 안채와 사랑채, 별채만 남아있다. 주변의 경치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휘늘어진 낙락장송이며 서쪽 암벽에서 흘러내리는 계류가 잡목 숲과 어울려 도심 속 선경을 이룬다. 석파정에서 나오면 창의문에서 시작해 부암동을 한바퀴 돌고 다시 창의문으로 돌아온 셈이다.
2012년 개관한 서울미술관은 ‘황소’, ‘자화상’, ‘환희’ 등 이중섭의 작품 19점을 포함해 박수근, 천경자, 김기창, 오치균 등 한국 거장의 작품 100여점을 소장하고 있다.
◆안평대군 꿈속의 비경, 무계동
부암동주민자치센터 뒷골목으로 올라가면 옛 무계동터가 나온다. 안평대군이 꿈에서 본 부암동골짜기는 중국의 ‘무릉도원’처럼 생겼다고 해서 무계동(武溪洞)이 됐다. 안평대군은 꿈에서 본 비경을 화가 안견에게 그리게 했고 그 그림이 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다. 지금은 일본 천리대 중앙도서관에 소장 중이다.
안평대군은 이곳을 무계정사(武溪精舍·서울시 유형문화재 제22호)로 정해 학문과 무예를 닦는 장소로 삼았다. 그러나 계유정난(1453) 때 그의 형인 수양대군에 의해 강화도로 유배됐다가 사사됐다. 그의 큰 뜻은 한줄기 바람처럼 한자락 구름처럼 사라졌고 직접 썼다는 ‘武溪洞’(무계동)이라는 각자만이 외롭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곳의 문화재로는 무계정사 외에도 윤웅렬 별장(서울시 민속자료 제12호)등이 있고 325-2번지에 현진건 집터가 있다.
창의문을 보고 백악산 성곽길로 오르기 전 창의문 밖 부암동을 둘러보는 것도 좋다. 부암동은 몇 년 전까지 소도시의 변두리 동네처럼 조용한 산골동네였다. 고개 하나 사이인데도 청운동과 부암동의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지금은 여기도 군데군데 개발의 바람이 분다.
‘북촌’에 이어 ‘서촌’이 뜨더니 이젠 부암동까지 들썩이는 것은 대중들에게 소구력이 강한 TV 덕분이다. ‘커피프린스 1호점’이라는 드라마 촬영지가 이곳 ‘전망 좋은 집’이었기 때문일까. 이곳에서는 창의문에서 백악산마루로 올라가는 성곽길을 가장 잘 바라볼 수 있다.
창의문 고개를 넘으면 커피 미식가들에게 잘 알려진 ‘클럽 에스프레소’라는 커피점이 손님을 반기듯 얼굴을 내민다. 여기서 조금 더 올라가면 ‘자하손만두’라는 소문난 맛집이 있다.
그러나 우리의 목적지는 ‘환기미술관’이다. 그곳에 가려면 ‘동양방앗간’ 옆을 지나야한다. 요즘에도 이런 방앗간이 있다는 점에 놀란다. 방앗간 벽돌에 붙은 친절한 이정표를 따라 환기미술관을 찾아간다.
환기미술관은 화가 김환기를 기념하기 위한 미술관이다. 그가 죽은 뒤 재미 건축가 우규승이 설계하고 김환기의 아내 김향안이 세워 1992년 11월5일 개관했다. 미술관은 본관과 별관으로 나눴다. 본관은 지상 3층 건물로 3개 전시실과 사무실, 수장고, 도서실 등으로 구성됐다.
본관 1층과 3층 전시실은 김환기 기획전 및 기타 기획전시를 주로 하고 2층 전시실은 김환기 작품 중 100호 이상 대작의 상설전시장으로 사용한다. 별관은 지하 1층, 지상 2층 건물로 1층은 카페테리아와 아트샵을 겸하며 2층은 기획전 전용전시실로 쓰인다.
김향안은 김환기와 결혼하기 전 시인이며 소설가인 이상의 아내였다. 그녀는 현대문학과 현대미술에 큰 획을 그은 두 예술가와 부부의 연을 맺었다. 이상은 그녀와 결혼 3개월 만에 일본으로 건너가 이듬해(1937) 뇌출혈로 사망한다. 김향안은 7년 뒤 김환기와 재혼했다. 그의 본명은 변동림(卞東琳)으로 이상의 친구 구본웅의 이모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37호(2018년 4월25일~5월1일)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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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창무 한양도성해설가
자본시장과 기업을 취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