흡연자들이 설 자리가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금연구역은 계속 확대되는데 흡연구역 설치는 지지부진해서다. 갈 곳을 잃은 흡연자들은 흡연구역도 금연구역도 아닌 거리의 ‘회색구역’에서 행인의 눈치를 살피며 흡연을 하는 경우가 늘었다. 이는 일반 행인의 간접흡연 피해 증가로 이어져 흡연자·비흡연자 모두가 불행한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설 자리 잃어가는 흡연자들
개정된 국민건강증진법에 따라 2015년부터 모든 음식점 등 영업소에서 전면 금연이 시행됐다. 이후 각 지방자치단체 조례에 의해 실내외 금연구역이 지속적으로 확대되는 추세다.
지난해 12월부터 스크린골프장과 당구장 등 실내 체육시설도 금연구역으로 지정됐으며 올해 말부터는 전국 5만여곳에 달하는 어린이집과 유치원 경계 10m 이내도 금연구역으로 지정돼 금연구역 표지판이 설치된다.
또한 이달부터 실내에 식품자동판매기를 설치해 흡연이 가능하도록 한 일명 ‘흡연카페’가 금연구역으로 변경되며 전국 14개 공항의 흡연실도 단계적으로 폐쇄될 예정이다. 특히 공항 국내선 구역의 경우 실내 흡연실은 전면 철거되고 실외 흡연실도 이용객의 동선과 멀리 떨어진 곳으로 이전된다.
이에 대해 국내 최대 흡연자 커뮤니티인 아이러브스모킹 이연익 대표운영자는 “출국 수속을 마치고 최소 1시간 이상을 대기하는 특수공간에서 흡연자를 위한 유일한 공간은 좁고 환기시설이 부족한 흡연공간이 전부”라며 “이런 공간마저도 퇴출한다면 흡연자의 ‘행복추구권’과 ‘사생활의 자유’ 등 헌법상 기본권을 침해할 소지가 매우 높다”고 주장했다.
/사진=뉴시스DB 통계를 살펴보면 이 추이는 더욱 명약관화하다. 2011년 서울시가 금연구역으로 지정한 실외 금연구역은 670개소에 불과했으나 지난해 말에는 1만9201개소로 27배 이상 증가(실내 금연구역 포함 시 26만5113개소)했다.
반면 현재 서울시 내 합법적인 실외 흡연구역은 43개소에 불과해 흡연공간을 마련해줘야 한다는 주장이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2017년 7월 기준).
이처럼 금연구역은 급증하고 흡연구역은 줄어들자 흡연자들이 회색구역으로 몰리며 일반 보행자들의 간접피해 사례가 다수 발생하고 있다.
지난해 질병관리본부의 국민건강영양조사에 따르면 성인 비흡연자의 직장 내 간접흡연율은 17.4%, 가정 내 간접흡연율은 6.4%이며, 공공장소 간접흡연율은 22.3%로 조사됐다.
또한 2015년 서울시가 시민 285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간접흡연 관련 여론조사에 따르면 시민 91%가 간접흡연 피해를 호소했고 공공장소 중 간접흡연이 가장 빈번한 곳으로 ‘길거리’(63.4%)를 꼽았다.
지역구민의 지속적인 민원제기로 인해 서울시 자치구들이 흡연구역을 점차 늘리려는 노력을 하고 있지만 흡연구역 지정 및 설치에 대한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없고 법적 강제성이 없어 간접흡연 피해 예방을 위한 대책 마련에 어려움을 겪는 실정이다.
서울시는 지난해 1월 ‘실외 금연구역 내 간접흡연 피해 방지를 위한 흡연구역 설치 가이드라인’을 마련했으나 흡연구역(흡연부스)을 늘리는 데는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실외 흡연실 간 이격거리를 최소 500m로 규정한 데다 폐쇄성 흡연시설 설치를 막아놨으며 담배회사로부터 후원받는 것도 금지했기 때문이다.
◆‘흡연구역 설치’ 목소리 커진다
이에 전문가들은 보행자의 간접흡연 피해를 줄이고 흡연자의 권리 보장을 위해 흡연구역을 확대·설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신경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국민건강증진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하며 시설 전체를 금연구역으로 지정할 경우 흡연구역을 의무적으로 설치하도록 했으며 흡연실 설치비용의 전부 또는 일부를 국민건강증진기금에서 지원할 수 있도록 명시했다.
업계 관계자는 “금연구역이 확대되는 만큼 흡연공간도 충분히 확보해 간접흡연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흡연자의 기본권도 보장할 필요가 있다”며 “흡연시설 확충에 대한 규제가 완화되면 담배업체에서도 활발히 지원해 흡연구역 설치가 확대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