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정부가 발사르탄 고혈압약 사태와 관련해 제약사들을 상대로 구상권 청구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지며 논란이 일고 있다. 수십만명의 고혈압 환자들이 불편을 겪었고 약제 교체에 들어간 비용문제 등과 관련해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하는데 정부가 이를 제약사들에게 전가하는 것으로 비춰지며 업계가 반발하고 나선 것이다.
/사진=이미지투데이 ◆발암물질 고혈압약 파문… 제약사 독박?
보건복지부는 지난 13일 ‘제15차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서 발사르탄 사태 수습 경과 및 향후 계획안을 부의안건으로 심의했다. 요양기관 비용정산, 문제 품목 회수 후 판매중지·급여정지 해제여부 검토 등이 핵심이다. 특히 정부는 건강보험공단이 문제 약제를 제조·판매한 제약사를 대상으로 구상권 또는 손해배상 청구를 하겠다고 안건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방침의 근거는 건강보험법 제58조(구상권)다. 해당 조항에는 건강보험공단이 제3자의 행위로 보험급여 사유가 생겨 가입자 또는 피부양자에게 보험급여를 한 경우 그 비용에 대해 제3자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할 권리를 얻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문제의 약제 교환에 들어간 건강보험 재정을 제약사들에게 받아내겠다는 것.
하지만 제약업계에선 정부가 문제의 발사르탄 원료·완제의약품을 허가해 정상적 절차를 밟아 제조·판매한 제약사가 아무도 예기치 못한 사태에 대한 손실을 모두 떠안는 것은 부당하다며 반발하고 있다.
발사르탄은 고혈압·심부전·심근경색 후 환자의 사망위험성 감소를 윙해 쓰이는 의약품의 주성분인 원료의약품으로 혈관을 수축시키는 ‘안지오텐신Ⅱ’라는 물질의 작용을 저지해 혈압을 떨어뜨리는 역할을 한다.
앞서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지난 7월 중국 제지앙화하이 발사르탄에서 N-니트로소디메틸아민(NDMA)이 검출된 후 국내에 수입·제조된 모든 발사르탄 원료의약품(52개사, 86개 품목)에 대한 수거·검사를 완료하고 잠정 NDMA 관리기준(0.3ppm)을 초과한 발사르탄 의약품에 대해 판매·제조 중지 조치를 내렸다.
또한 고혈압 환자의 불편 감소를 위해 문제가 된 의약품의 무료 재처방·재조제를 결정했다.
NDMA는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 암연구소(IARC) 분류상 인간에게 발암물질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는 ‘2A군’에 해당하는 물질이다. 그러나 NDMA가 비의도적으로 생성되는 불순물로 세계적으로 기준을 정해 놓은 국가는 없다.
/사진=뉴시스DB ◆정부 규정·방침 따르다 손실 눈덩이
때문에 정부에서도 발사르탄 원료의약품의 제조공정 변경 시 심사한 자료에 NDMA를 예측할 수 있는 단서가 전혀 없었으며 유럽, 미국·일본 등 선진국의 보건당국도 마찬가지라고 발표한 바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이번 사태가 발생한 이후에야 국제적으로 인정된 ICH M7(의약품 중 유전독성 불순물의 평가·관리) 가이드라인을 적용해 관리기준을 산출하고 공식 자문기구인 중앙약사심의위원회 자문결과에 따라 NDMA 잠정 허용기준을 0.3ppm 이하로 설정했다.
이에 대해 고혈압약 회수조치를 받은 A사 관계자는 “정부가 승인한 데다 유해성 여부가 명확히 확인되지 않은 의약품을 정부방침에 따라 강제로 판매중지·회수한 뒤 관련 비용을 제약사에 떠넘긴다는 발상이 어떻게 나왔는지 궁금하다”며 “이미 정부가 지목한 의약품의 제조를 중단하고 유통된 제품을 강제로 회수하는 과정에서 막대한 손실이 발생했는데 추가로 건강보험 재정 손실분까지 보전하라는 것은 부당하다”고 꼬집었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이번 발사르탄 고혈압약 사태는 정부도 제약사도 예상하지 못한 천재지변에 가까운 일”이라며 “누구의 잘못을 더 따질게 아니라 유사 사태 재발을 대비해 정부와 제약사가 공동으로 가이드라인을 마련하는 게 더 시급한데 책임 떠넘기기에 급급한 것 같아 아쉽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