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경제협력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특히 지난달 18~20일 평양에서 열린 제3차 남북정상회담에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경제인 17명이 참여하며 남북경협 재개가 임박했다는 얘기가 나온다. 북한도 이번 정상회담에서 남북경협에 대한 강한 의지를 여러 차례 드러낸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달 19일 평양 옥류관에서 문재인 대통령 평양 방문 특별 수행원으로 방북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최태원 SK그룹 회장·손경식 CJ그룹 회장이 리선권 조국평화통일 위원장 등 북측 인사들과 식사하고 있다. /사진=평양사진공동취재단 ◆정체된 내수시장 확대 돌파구
식품·유통산업은 남북경협 재개 시 빠르게 북한경제에 녹아들 분야로 지목된다. 이에 대비해 발빠른 유통기업들은 이미 대북사업 구상에 착수했다.
유통기업 중 대북사업 준비에 가장 적극적인 곳은 롯데그룹이다. 2차 남북정상회담 직후인 지난 6월부터 그룹 내에 ‘북방TF’를 구성하고 북한·러시아 연해주·중국 동북3성을 아우르는 지역에 대한 연구에 착수했다.
롯데는 오래전부터 북한에 관심을 갖고 관련 사업을 검토했다. 1995년 북방사업추진본부를 설립하고 북한과의 경협 방안을 검토하기 시작했는데 북한 주민에게 행복한 맛을 전달할 수 있는 제과공장 설립이 우선적으로 검토됐다.
1997년에는 북한의 조선봉화사(민경련 산하 무역회사)와 함께 초코파이 투자를 추진했고 이듬해 정부로부터 남북협력사업자로 승인받고 평양 인근에 초코파이공장을 설립하기로 했다. 하지만 당시 정치·경제적 여건이 성숙되지 않아 실행되지 못했다.
이후 롯데는 2002년부터 2014년까지 개성공단에 초코파이·칠성사이다 등의 제품을 공급하는 한편 북한 연구를 지속적으로 진행했다. 2015년 16개 계열사의 신사업 전문가 20여명이 모여 6개월간 북한연구회를 운영했고 지난 6월부터 북한연구회 2기도 활동을 시작했다.
대북사업은 일개 기업이 독자적으로 진행하기 어렵다. 남북한의 복잡한 정치·사회적 문제,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등 선행과제가 풀려야 진행이 가능하다. 이를 감안해 롯데는 북한 접경지역인 러시아 극동지역과 중국 동북부지역으로 사업을 확장하며 남북경협 재개 시 발빠르게 움직일 준비도 하고 있다.
롯데그룹 관계자는 “수십년간 축적한 지식, 경험, 인프라 등을 바탕으로 북방지역과 협력을 강화할 방침”이라며 “우선 북방지역에 진출한 식품·관광 계열사를 활용해 해당 지역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 교류를 활성화하는 한편 국제기구와 협력해 인도적 차원에서 문화·경제적 지원을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남북경협 재개를 위해선 우선적으로 남북한 정치적 문제와 국제사회의 북한 제재 등이 풀려야 하는데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며 “다만 그 때를 대비해 북방TF·북한연구회를 통해 북한에서 진행할 수 있는 사업들을 연구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손경식 CJ그룹 회장은 경총 회장 자격으로 3차 남북정상회담 특별 수행원단에 참가해 직접 북한을 다녀온 뒤 블룸버그TV와 진행한 인터뷰에서 “북한은 한국으로부터 경제협력과 기술지원을 바라고 있다”며 “CJ는 북한의 식품 및 물류산업에서 가능성을 보고 있다”고 언급했다.
이는 남북경협이 본격화되면 CJ그룹이 식품사업을 주력으로 하는 CJ제일제당과 물류사업을 하는 CJ대한통운을 앞세워 대북사업을 전개할 수도 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업계에선 남북경협이 재개되면 CJ그룹의 식품과 물류분야 역할이 확대될 것이라고 내다본다. CJ제일제당의 주요 제품인 밀가루·조미료 등 필수 식료품은 그동안 정부의 대북 무상지원 품목에 포함되기도 했고 CJ대한통운의 경우 남북적십자회담, 남북 이산가족상봉행사 물자 운송, 구호물품 전달 등을 통해 북한사업 관련 경험을 쌓아왔다.
CJ그룹 관계자는 “남북경협 재개는 기업이 나서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그룹 차원에서 조직적으로 대북사업을 준비하는 것은 없다”면서도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다 문호가 열린 후 갑자기 사업을 전개할 수는 없기 때문에 그룹 연구원에서 대북사업 연구를 진행하며 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달 18일 오전 서울공항에서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손경식 CJ그룹 회장·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최태원 SK그룹 회장을 비롯한 2018 평양남북정상회담 특별 수행원들이 평양으로 향하는 전용기에 탑승해 출발을 기다리며 이야기하고 있다. /사진=평양사진공동취재단 ◆대·중소업체, 엇갈린 대비법
이외에도 농심·오뚜기·샘표도 북한 내 라면의 인기와 창업주의 출생지라는 이유로 남북경협 재개의 수혜기업이 될 것이란는 전망이 나온다. 다만 이들은 기대감을 갖고 있지만 구체적인 행동에는 나서지 않고 있다.
농심 관계자는 “정체된 내수시장을 넓힐 기회라는 점에서 남북경협 재개에 대한 기대가 크지만 우리가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현재로선 구체적으로 대북사업을 준비하지는 않고 있다”고 말했다.
오뚜기 관계자는 “창업주 고 함태호 명예회장(함경남도 원산 출신)이 북한 태생이고 과거 북한에 어린이 결핵환자를 돕기 위한 결핵약품 구입 후원금과 쇠고기수프를 전달한 활동 등이 남북 화해무드와 맞물려 뒤늦게 주목받는 것 같다”며 “내부적으로 대북사업 준비 지침이 내려오거나 관련 업무 진행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샘표 관계자는 “박진선 사장이 지난 5월 기자간담회에서 남북경협과 관련해 ‘기회가 되면 당연히 간장이나 관련 제품과 얽힌 사업을 해야 할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며 “기대감을 갖고 남북 관계 변화를 예의주시하고 있지만 구체적으로 준비하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중견 식품업체 관계자는 “최근 남북경협 재개에 대한 기대감이 높고 식품·유통분야가 빠르게 북한경제에 녹아들 수 있는 분야로 꼽히지만 정치·외교적 변수가 많아 규모가 작은 기업은 별도의 대응팀을 꾸리기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관련 이슈를 예의주시하며 아이디어 확보 차원에서 대북사업을 구상하는 중견 식품사가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