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 텔루라이드 /사진=기아차 제공
올 연말 자동차업계 최대 관심사는 대형SUV다. 한동안 고유가와 환경규제강화 등으로 소형SUV시장에 경쟁이 집중되면서 대형SUV는 마니아층을 제외하면 선택지에서 밀려났다.

자동차업계와 IHS통계 등에 따르면 2013년 국내 대형SUV시장은 연간 3만대 규모였고, 소형SUV는 1만2000대에 불과했다. 하지만 지난해엔 대형SUV 3만9000대, 소형SUV는 14만3000대로 큰 격차로 역전됐다.


지난 10여년 간 현대기아차를 비롯한 국산차회사가 소형차개발에 소홀한 반면 그사이 가격경쟁력을 갖춘 수입 소형차가 빠르게 시장을 잠식했다. 특히 르노삼성차가 유럽에서 큰 인기를 누린 소형SUV 르노 캡처를 QM3로 국내 출시하며 새로운 시장을 개척했고 한국지엠의 트랙스, 쌍용 티볼리의 삼파전 양상이 이어지다가 뒤늦게 현대 코나, 기아 니로와 스토닉 등 신차가 쏟아지며 7종이 경쟁하는 시장으로 확대됐다.
QM3 마린블루 /사진=르노삼성 제공

뛰어난 연비, 개성있는 디자인, 실용적인 구조와 작은 차체 사이즈를 무기로 내세운 소형SUV의 기세는 꽤나 강렬했다. 서로의 파이를 빼앗는 게 아니라 오히려 파이를 키웠다.

이렇게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사이 대형SUV는 점점 설자리를 잃어갔다. 배출가스기준을 맞추지 못해 단종되는가 하면 신차 투입 타이밍이 늦어지며 노후화된 모델로 근근히 연명하는 수준이다.

현재 국산 대형SUV는 기아 모하비와 쌍용 G4렉스턴이 양분한 상태다. 모하비는 10여년째 같은 디자인을 고수하며 파워트레인 변경으로 프레임타임 SUV라는 명맥을 이어가는 중이다. 점유율은 G4렉스턴에 뒤처진 40%. 쌍용은 렉스턴W로 오랜 시간을 버텨왔지만 티볼리가 회사를 살려내며 G4렉스턴의 출시로 이어졌다.


그사이 현대 베라크루즈는 단종됐고 후속 모델 없이 싼타페 롱바디 모델인 맥스크루즈가 그 자리를 대신해왔다. 지금은 베라크루즈 후속 모델 출시를 앞뒀다.
혼다 파일럿 /사진=혼다 제공

결국 국산SUV 중에선 두 차종 말고는 선택지가 없는 상황이라 자연스레 수입 대형SUV로 관심이 쏠린다. 국산차를 대신해 포드 익스플로러, 혼다 파일럿, 닛산 패스파인더 등 북미시장에서 경쟁하는 차종이 국내에서도 경쟁하는 형국이다.

여기에 랜드로버 레인지로버, 벤츠 GLS, 아우디 Q7, 폭스바겐 투아렉(내년에 신형 출시), 포르쉐 카이엔 등 개성 넘치는 차종도 판매량이 적지 않다. 볼보는 XC90을 통해 달라진 이미지를 확실히 어필했고 하위 차종의 동반 성공으로 이어졌다.

BMW는 최근 SUV 라인업 중 가장 덩치가 큰 X7라는 신차를 공개했고 아우디도 Q8 모델을 곧 내놓는다. 두 모델은 국내에도 출시될 전망이다.


수입SUV가 국내시장을 장악하는 것을 국산차회사들이 그냥 두고보진 않는다. 북미시장에서 대형SUV와 픽업트럭 판매량이 늘어나며 세단 수요를 흡수하는 상황이어서 북미수출을 염두에 둔 제품개발이 잇따랐다. 모터쇼에서 공개됐듯 현대차의 그랜드마스터 HCD-2 콘셉트(베라크루즈 후속), 기아 텔루라이드 등이 대표모델이다. 여기에 한국지엠은 쉐보레 트래버스 출시를 예고한 상태고 쌍용차는 G4렉스턴 2019년형으로 대응한다.
HDC-2 그랜드마스터 콘셉트의 공개 장면 /사진=박찬규 기자

업체들이 대형SUV에 다시 관심을 가진 배경이 뭘까. 가장 큰 이유는 차를 많이 팔 수 있다는 판단이 뒷받침됐기 때문이다. 북미시장과 중국시장에서 대형SUV 관심이 늘어나는 추세에 발맞추기 위한 것. 이는 곧 수익성과도 연결된다.

이를테면 소형SUV 100대를 파는 것과 대형차 30대를 파는 게 이윤이 같다면 대형차를 파는 편이 훨씬 이득이다. 100대를 만들고 팔기 위한 노력과 소요시간 등 무형의 활동까지 고려하면 조금 만들고 많이 남기는 게 기업의 속성상 맞는 이치다.
쉐보레 트래버스 /사진=쉐보레 제공

대형SUV는 대당 단가가 높다. 따라서 가격 저항이 낮다. 소형SUV에서 100만~200만원은 큰 차이지만 대형SUV에서는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 따라서 제조사는 더 좋은 부품을 쓰고 더 신경써서 만들어 비싸게 팔 수 있다. 비단 이는 SUV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대형차와 소형차의 근본적 차이점이다. 다만 글로벌 트렌드가 SUV라는 점에서 대형SUV, 고급SUV가 주목받는다. 대중브랜드 외에도 프리미엄브랜드나 스포츠카브랜드조차도 SUV를 내놓는 배경이다.

결국 매출액을 높이고 수익성을 개선하려면 고급스러움을 가미한 대형차를 만들어야 하고 그중에서도 판매량을 담보받기 위해서는 SUV를 만들어야 하는 셈이다. 나아가 브랜드의 '얼굴'과 마찬가지인 점, 팔릴 차이면서 팔아야 하는 차이기도 한 특성이 대형SUV에 관심이 늘어난 배경으로 볼 수 있다.

올 연말부터 시작되는 대형SUV 경쟁을 바라보는 소비자는 즐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