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사다난했던 무술년이 지고 기해년의 새로운 해가 밝았다. 지난해 우리나라는 남북관계 진전을 비롯해 외교부문에서 가시적인 성과를 얻었지만 극심한 내수부진과 저성장 늪,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부작용 등으로 어려운 한해를 보냈다. 정부도 정책의 실패를 인정하고 올해는 경제를 살리는 데 집중할 계획이다. 이에 <머니S>는 올해 경제부문의 주요현안을 짚어보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한다. <편집자주>


[2019 코리아 희망찬가] ⑤·끝 ‘비정상 산업구조’ 바로잡자


지난해 말 발생한 한 비정규직 노동자의 죽음이 국내 노동시장 개혁에 대한 사회적 염원에 불을 당겼다. 한국서부발전 태안화력발전소 협력업체 직원으로 일하던 고 김용균씨(24)는 지난해 12월11일 새벽 야간근무 도중 사고를 당했다. 위험한 업무라 2인1조 근무가 원칙이었지만 김씨는 혼자였다. 앞서 하청업체 노동자들이 요구한 인력 충원은 이뤄지지 않았다. 2016년 5월 발생한 ‘구의역 사고’ 이후 변한 건 없었다. 당시 하청업체 비정규직 노동자였던 김모군(19) 역시 2인1조 매뉴얼이 지켜지지 않은 상황에서 혼자 작업을 도맡다 참변을 당했다.

하청업체 직원이면서 동시에 비정규직 노동자였던 김씨의 죽음은 국내 노동시장의 폐해를 여실히 드러냈다. 그 중심에 원청과 하청으로 나뉘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이중구조’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대기업은 입찰방식의 가격경쟁을 내세워 중소기업에 ‘단가 후려치기’를 일삼는다. 이어 비용절감과 책임 회피를 위해 위험한 업무를 하청에 떠넘긴다. 이를 해소하지 않는 한 제2, 제3의 하청업체 비정규직 노동자 죽음을 막을 길은 없다.


지난해 12월26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민주노총·한국진보연대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고 김용균 사회적타살 책임자 처벌 결의대회’를 마친 후 국회를 지나 자유한국당 당사로 향하고 있다. /사진=뉴스1

◆고착화되는 ‘영원한 하청’ 구조

김씨의 죽음에 한국 사회가 한마음으로 애도에 나선 건 그와 같은 사고를 내 자식과 지인도 당할 수 있다는 불안감 때문이다. 단순 사고가 아닌 비정상적인 산업구조의 병폐에 따른 결과라는 점에서다. 특히 첫 직장이 하청이면 영원히 하청 노동자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우리나라 산업구조는 새로운 신분사회로 고착되고 있다.

‘첫 직장이 하청이면 영원한 하청’. 대·중소기업 간 단절 현상을 가리키는 말이다. 계층 사다리가 끊어졌다는 얘기이자 노동시장의 이중화 현상을 말한다. 노동시장 간 이동이 제약되면 사회적 양극화는 더 심화될 수밖에 없다.

실제 중소기업 노동자가 대기업으로 이동하는 비율이 떨어지고 있다. 한국노동연구원에 따르면 1~299인 기업에서 종사하는 노동자가 취직 1년 후 300인 이상 기업으로 이동하는 비율은 2004~2005년 3.5%에서 2015~2016년 2.2%로 낮아졌다. 첫 출발점이 중소기업일 경우 대기업으로 이직하기가 더욱 힘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반면 같은 기간 중소기업에서 중소기업으로 이동하는 비율은 66.1%에서 78.8%로 늘었다.


한국경제는 선진국 문턱에 서있지만 대·중소기업 노동자의 임금 격차는 갈수록 벌어지고 있다. 우리나라의 1인당 국민총소득(GNI)은 지난해 말 기준 선진국 진입 기준인 3만달러를 기록할 전망이다. 하지만 대·중소기업 양극화 현상은 점차 심화되는 양상이다. 한국은행이 지난해 12월 발간한 보고서를 보면 1987년 이전 300인 이상 대규모사업체와 그 이하 사업체의 임금격차는 1.1배 이하로 거의 미미한 수준이었지만 이후 꾸준히 벌어져 2014년 1.7배까지 커졌다.

우리나라의 대·중소기업 양극화 현상은 세계적으로도 높은 편이다. 1분위(하위 10%) 임금근로소득 대비 10분위(상위 10%) 임금근로소득의 배율을 나타내는 ‘임금 10분위 배율’을 보면 우리나라는 4.50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 3.41보다 월등히 높다. 상하위 평균 소득임금 격차가 3.41배인데 반해 우리나라는 4.5배라는 뜻이다.


◆‘원-하청 불공정거래’ 끊어야

국내 노동시장의 이중구조가 불러낸 또 다른 폐해가 ‘불공정거래’다. 불공정거래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고질적인 병폐다. 특히 원청과 하청 간 관계에서 불공정거래가 일상화됐다. 교섭력 차이에서 비롯되는 원청의 ‘갑질’에 노동시장의 이중구조가 심화되고 있는 것이다.

원·하청의 공정거래를 해치는 대표적인 예가 ‘납품단가 후려치기’ 관행이다. 이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격차를 벌리는 주요 배경으로 지목된다. 원청이 시장 지배력을 이용해 줄인 비용만큼 하청은 수익이 감소한다. 대기업은 배를 불리지만 중소기업은 마른 수건을 쥐어짜도 직원에게 줄 임금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이같은 문제 해결을 위한 시도가 없었던 건 아니다. 2011년 납품단가협상의무제와 납품단가연동제, 부당대금감액 등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 등이 도입됐다. 하지만 ‘을’인 하청이 이러한 제도를 활용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단가 후려치기는 원·하청 간 불공정거래의 한 예일 뿐이다. 원청이 비용 절감을 위해 각종 업무를 싼 값에 외주화하며 하청 노동자는 위험에 노출된다. 원청은 산재 책임도 피할 수 있으니 외주를 둘수록 이익인 셈이다. 이번 김용균씨의 죽음은 이러한 구조에서 발생했다.

중소기업들이 네트워크를 형성해 대기업에 대한 교섭력을 강화하는 등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협동조합 등의 형식으로 중소기업들이 조직화하고 대기업과 집단교섭이 가능하도록 단결권, 교섭권, 협약체결 요구권 등을 제도적으로 지원하자는 것이다.

김남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부회장은 최근 열린 정책토론회에서 “대·중소기업 간 격차 해소를 위해 노동자·중소기업·자영업자들이 단체를 구성하고 대기업과 대등한 구조에서 교섭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조성재 한국노동연구원 노사관계연구본부장 역시 “파편화된 기업별 노사관계 시스템을 포용과 연대, 참여와 혁신이 가능한 통합적 노사관계 시스템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연대임금 등 기업단위 교섭의 조정 강화와 업종·지역·직종별 교섭단위의 통합이 가능하도록 법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밖에 불공정 행위를 저지르는 대기업에 대한 양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된다. 구체적으론 징벌적 손해배상 대상 확대, 불공정행위로 한차례만 고발돼도 1년간 공공분야 입찰 참여 금지, 상습법위반사업자 명단공개 및 신용등급 하향조정·대출금리 불이익 제재 조치 등이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73호(2019년 1월1~7일)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