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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운사 동백에 취하다
미당의 '막걸릿집 여자' 육자배기 아련한 곳
| 선운사 동백. /사진=박성기 여행 칼럼니스트 |
자주 들르는 선운사지만 계절에 따라 산사는 다르게 다가온다. 봄이면 겨우내 나무에 숨겨둔 동백을 피워낸다. 가을이면 꽃무릇이 안개처럼 온 산을 뒤덮어 그리운 이를 생각나게 한다. 그리고 형형색색 물든 단풍의 향연이 가을의 끝을 장식하곤 한다.
| 바닥에 떨어진 선운사 동백꽃. /사진=박성기 여행 칼럼니스트 |
선운사는 동백과 벚꽃을 즐기려는 상춘객들로 북적인다. 기대한 동백은 보이지 않고 벚꽃이 지천이다. 일주문에 이르는 동안 벚꽃세상이다. 선운사 일주문에 도달했다. 봄을 품은 햇살이 선운천에 내려앉아 연록의 푸르름으로 기분을 상쾌하게 한다. 좌측 길로 접어들어 도솔교를 건넜다.
도솔제를 들렀다가 동백숲으로 가기로 했다. 동백이 궁금해서다. 봄을 두팔로 가득 품으며 숲으로 들어갔다. 도솔천(선운천) 물소리가 경쾌하다. 나무사이로 건너편 선운사가 아름답게 보인다.
| 봄 기운이 완연한 도솔천(선운천). /사진=박성기 여행 칼럼니스트 |
다시 길을 되짚어 쉼터로 내려왔다. 선운천은 도솔제의 물과 도솔암의 물이 만나 선운사 앞을 흐른다. 쉼터는 내려오던 두 갈래 물이 섞이면서 잠시 쉬는 곳이다. 사람 또한 쉬는 곳이기도 하다.
| 선운사 대웅전. 대웅전 뒷편에 동백꽃이 가득 피었다. /사진=박성기 여행 칼럼니스트 |
◆동백꽃에 빠지다
선운사 끝 담벼락에서 왼쪽 산을 타고 올랐다. 동백이 선운사 뒤편을 지붕인양 가득히 덮었다. 한때 선운사 동백숲을 산사 울타리쯤으로 여긴 적도 있었다. “이럴 거면 웬 선운사 동백이랴”라는 푸념이었다.
| 동백숲과 선운사. /사진=박성기 여행 칼럼니스트 |
소설가 김훈은 동백의 낙화를 일컬어 ‘후드둑 떨어진다’고 비유했다. 백제가 느닷없이 멸망하듯 말이다. 그렇게 떨어진 붉은 동백꽃은 하나씩 가슴에 와 박혔다. 그것도 아주 진하고 붉게 박혔다. 사방으로 꽃을 내보내고도 동백은 꽃을 가득 품었다. 겨울을 지나 한달여를 피고지는 게 동백 아니던가. 동백나무는 그런 것과 상관없이 여전히 짙푸르다.
| 땅에 떨어져 뒹구는 선운사 동백꽃. /사진=박성기 여행 칼럼니스트 |
붉은 안개처럼 가득한 동백숲을 뒤로 하고 선운사에 들어섰다. 만세전을 지나 대웅전 뒤를 돌아드니 동백꽃에 나무가 부러질 듯하다. 동백꽃의 붉음이 짙은 탓에 산사 뒤도 붉게 물들었다. 다시는 울지 말자며 눈물을 감추다가 동백꽃 붉게 터지는 선운사 뒤에서 이내 펑펑 울었다는 시인의 감성을 이해할 수 있겠다.
수십년을 다녔던 선운사다. 하지만 이번 동백꽃 여행은 선운사를 새로운 모습으로 기억하게 했다. 노랫말처럼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에 다시 찾아야겠다.
| 선운산 동백꽃. 땅에 떨어져 또한번 검붉게 핀다. /사진=박성기 여행 칼럼니스트 |
선운사 동구
―서정주
선운사 골짜기로
선운사 동백꽃을 보러 갔더니
동백꽃은 아직 일러 피지 안했고
막걸릿집 여자의 육자배기 가락에
작년 것만 상기도 남었습니다.
그것도 목이 쉬어 남었습니다.
―서정주
선운사 골짜기로
선운사 동백꽃을 보러 갔더니
동백꽃은 아직 일러 피지 안했고
막걸릿집 여자의 육자배기 가락에
작년 것만 상기도 남었습니다.
그것도 목이 쉬어 남었습니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90호(2019년 4월30일~5월6일)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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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기 여행 칼럼니스트
박정웅 기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