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가 수천년간 정보전달의 매개로 사용한 텍스트가 점차 사라진다. 신문·독서 인구가 감소하고 이미지·동영상시장이 급격한 성장세를 보이며 제로텍스트 현상을 가속화한다. Z세대를 포함한 젊은층이 직관적이고 이해하기 쉬운 제로텍스트를 반기는 것과 달리 노년층은 콘텐츠 내용을 받아들이는 데 어려움을 호소한다. <머니S>는 글자가 없어지는 제로텍스트 현상을 짚어보고 새로운 시대를 준비하는 자세에 대해 살펴봤다.<편집자주>

[글자가 사라진다… ‘제로 텍스트’ 시대-④·끝] ‘텍스트’ 없이 살아본 닷새


지난 주말 넥타이를 매야 할 일이 있었다. 넥타이가 익숙하지 않아 매번 씨름을 벌였는데 이번에는 스마트폰을 켜고 인터넷에서 ‘넥타이 매는법’을 검색해 다시 시도했다.


가장 간단한 매듭법이라는 ‘포인핸드’에 도전했다. ▲대검을 측면으로 돌려주고 다시 측면으로 돌린다 ▲대검을 안쪽 아래에서 위로 뽑아준다 ▲대검을 매듭 속으로 넣는다. 3단계 과정을 10분을 넘게 시도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그림과 글로는 한계를 느꼈다. 다시 유튜브에 똑같은 내용을 검색했다. 1분 만에 넥타이 매듭법을 숙달했다.

제로텍스트시대. 글자가 사라지는 시대가 왔다. 넥타이 매듭법뿐만 아니라 글보다는 이미지, 이미지보다는 영상이 편하다. 요즘 초등학생들은 모르는 내용이 있으면 유튜브에서 검색한다. 지식인에게 물어보던 예전 세대와는 다르다.


자연스럽게 제로텍스트시대로 나아가고 있다. 설명서를 읽지 않고 사용기를 보는 시대가 왔고 읽는 책 대신 듣는 오디오북이 나왔다. <머니S>는 생활 속에 스며든 텍스트를 대체한 도구를 이용해봤다.


사용자 명령에 반응하는 음성인식 스피커. /사진=심혁주 기자
사용자 명령에 반응하는 음성인식 스피커. /사진=심혁주 기자

◆“OO야, 오늘 미세먼지 농도 알려줘”

가장 손쉽게 이용할 수 있는 음성인식서비스는 TV 옆에 자리 잡은 스피커였다. 평소에 굳이 부르지 않아도 가끔씩 혼자서 대답하며 존재를 드러내는 기계다. 아침마다 스마트폰으로 날씨를 확인하지만 이날은 직접 물어봤다.

“OO야 오늘 날씨랑 미세먼지 농도 알려줘.”, “서울특별시 ○○구 ○○동의 날씨는 최저기온 18도, 최고기온 28도입니다”며 곧바로 답이 날아왔다. 옷을 입으면서 날씨를 확인할 수 있는 것. 음성인식의 장점이다. 시간이 단축될 수 있겠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집에 있는 스피커는 기자의 발음과 목소리를 잘 알아듣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노래가 듣고 싶으면 가수이름과 노래제목이 필요했다. 명령을 인식하지 못한 스피커는 꼭 사과의 말을 남기며 시간을 끌었다. 성격이 급한 사람으로서는 답답할 노릇이다. 아직까지는 검색, 글자에 익숙한 세대라 불편함이 느껴졌다.


휴대폰 음성인식 서비스를 이용해 음악어플리케이션을 실행 시킨 모습. /사진=심혁주 기자
휴대폰 음성인식 서비스를 이용해 음악어플리케이션을 실행 시킨 모습. /사진=심혁주 기자

◆읽는 책 말고 ‘듣는’ 책 과연…

한장 한장 넘기는 맛이 좋아 종이책을 고집했다. 태블릿PC에 넣고 다닐 수 있는 온라인북이 인기를 끌 때도 굳이 무거운 종이책을 가방에 넣고 다녔다.

독서할 시간이 없어지자 출퇴근시간을 이용해보기로 했다. 손을 뻗기도 힘든 협소한 버스에서 독서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손을 쓰지 않고도 책을 읽을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하는 고민 끝에 오디오북을 선택했다. 최근에는 책을 요약해 설명해주는 콘텐츠도 많지만 일반 독서와 최대한 비슷한 환경을 만들어 보기 위해 전체 분량을 들어보기로 했다.


일주일간 함께한 책은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 총 낭독시간은 3시간40분. 200페이지가 채 안되는 소설이라 재생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

“서문. 나는 그 사나이의 사진을 석장 본적 있다. 한장은 유년시절이라고나 해야 할까. 열살 전후로 추정되는 사진인데 검은 줄무늬 바지를 입은 아이가 여러 여자들에게 둘러싸여…”

책은 이렇게 시작한다. 한명의 낭독자가 책을 그대로 읽어주는 식이다. 어릴 적 부모님이 잠자기 전 읽어준 동화책 이후로 누군가 책을 읽어준 적은 처음이었다. 그래서인지 집중력이 올라갔다. 볼륨을 높이니 주변 소음에서 벗어나 온전히 책에 집중할 수 있었다.

출퇴근시간을 활용해 5일 동안 한권의 책을 마무리했다. 비슷한 분량의 종이책을 읽는 시간과 큰 차이는 없었지만 받아들이는 방식에 차이는 있었다. 오디오북은 들을 때 생생한 장면이 그려지고 몰입된다. 종이책은 읽고 난 뒤 여운이 남는다.

◆"추론능력에 중대 변화"

종이책과 오디오북의 가장 큰 차이는 ‘개입’이다. 백지상태의 독자와 주관이 담긴 목소리를 이미지로 받아들이는 청자는 시작이 다르다. 오디오북은 성우의 목소리 억양에 따라 인물의 특징이 정해진다. 이를테면 성우가 A라는 인물의 대사에 힘없는 목소리로 연기하면 청자는 A라는 인물이 약하고 피곤한 이미지라 생각하며 듣게 된다. 독서를 할 때 오는 자유로움도 찾을 수 없었다. 오디오북을 듣고 나서는 ‘독서는 해야 하는 데 시간이 없어 책을 읽고 싶을 때 읽는’ 느낌이 강했다.

굳이 체험을 할 필요 없이 일상생활에서도 너무도 당연하게 다양한 수단이 글자를 몰아내고 있다. 의도적으로 제로텍스트를 실천하려고 해도 평소와 별다른 변화가 없는 지경이었다. 미디어가 텍스트를 대체하고 갈수록 영상에 익숙해지는 세상이 오고 있지만 글자라는 도구는 오히려 더 필요함을 느꼈다.

인간을 제외한 다른 동물은 글을 읽을 수 없다. 읽는 뇌분야의 세계적 연구자이자 <다시책으로>의 저자인 매리언 울프는 ‘읽는 힘’은 인간을 다른 동물과 구별하는 결정적 차이라고 말했다. 그는 “아이들이 외부의 지식원에 점점 더 의존하게 되면서 내면에 누적되는 지식이 줄어든다면 추론을 끌어내는 능력에 중대한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고 경고했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99호(2019년 7월2~8일)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