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화진 고용노동부 노동정책실장이 30일 오전 정부세종청사에서 외교부에 비준 의뢰 등 ILO 핵심협약 비준 절차를 추진한다고 밝히고 있다./ 사진=뉴시스 강종민 기자
박화진 고용노동부 노동정책실장이 30일 오전 정부세종청사에서 외교부에 비준 의뢰 등 ILO 핵심협약 비준 절차를 추진한다고 밝히고 있다./ 사진=뉴시스 강종민 기자
정부의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 추진이 난항을 빚고 있다. 정부의 입법안을 놓고 내부적으로 노사 갈등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외부적으로 통상마찰 비화 가능성에 대한 부담이 증가하며 진퇴양난에 빠진 형국이다.

고용노동부는 ILO 핵심협약 중 결사의 자유 87호와 98호, 강제노동 금지 29호에 대해 지난달 30일 외교부에 비준을 의뢰하고 핵심협약과 충돌하는 노동조합법, 공무원노조법, 교원노조법 등 3개 법률의 개정안 주요 내용을 공개했다.


지난 5월 말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이 “올해 정기국회에서 ILO 3개 협약의 비준 동의안과 관련 법안이 함께 논의될 수 있도록 준비하겠다”고 밝힌 지 두달여 만에 본격적인 절차를 밟게 된 것이다.

당초 정부는 관련법과 제도개선을 먼저 마무리한 후 비준을 추진하기로 했지만 EU가 ILO 핵심협약 비준 지연을 이유로 우리나라를 상대로 한·EU 자유무역협정(FTA)의 분쟁 해결 절차를 개시하자 비준과 법개정 동시 추진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이번에 발표된 정부입법안은 실업자와 해고자, 퇴직 공무원과 교원, 소방 공무원, 대학 교원, 5급 이상 공무원 등의 노조 가입을 허용하는 내용을 담았다. 또한 사용자가 개별교섭에 동의하는 경우 모든 노조에 대한 성실 교섭 및 차별금지 의무를 부여했다.

다만 단체협약 유효기간은 현행 2년에서 3년으로 연장하고 사업장 일부 또는 전부를 점거하는 쟁위행위는 금지하도록 하는 등의 몇가지 방어장치를 뒀다.


고용부는 이 같은 내용의 법률개정안을 입법예고, 9월9일까지 의견수렴을 거쳐 법안을 확정해 이르면 10월 말 국회에 제출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정부의 입법안이 국회의 문턱을 넘기까지는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정부입법안에 경영계와 노동계 모두 반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영계는 정부입법안에 재계의 요구사항이 제대로 담기지 않았다며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유독 대립적·투쟁적인 우리나라 노사관계를 고려하지 않은채 노동자의 단결권을 대폭 강화할 경우 힘의 균형이 노조로 쏠릴 수밖에 없다는 판단에서다.

이 때문에 경영계는 사측의 대응권한도 함께 강화해야 한다며 ▲대체근로 허용 ▲부당노동행위제도 개선 ▲사업장 내 쟁의행위 금지 ▲쟁의행위 찬반투표절차 보완 ▲단체협약 유효기간 확대 등 5가지를 요구했지만 이번 정부입법안에는 대체근로허용이나 부당노동행위제도 개선 등의 내용은 담기지 않았다.

반면 노동계는 정부입법안이 ILO 권고나 국제노동기준에 크게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라며 노동개악이라고 비판한다. 특히 정부입법안 중 ▲사업장 내 생산·주요 업무시설 점거 금지 ▲단체협약 유효기간 상한 3년 연장 조항은 경영계의 요구를 들어준 것이라며 즉각적인 철회를 촉구하고 있다.

같은 입법안을 놓고 노사가 서로 다른 해석으로 대립하는 형국이다. 앞으로 진행될 논의 과정이 순탄하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문제는 비준시기를 무작정 미룰 수도 없다는 점이다. 우리나라는 1991년 ILO에 가입했지만 ILO가 정해놓은 핵심협약 8개 가운데 결사의 자유에 관한 협약 2개, 강제노동에 관한 협약 2개 등 4개를 비준하지 않다가 2010년 한·EU FTA 체결 당시 비준을 약속했다.

당초 EU는 올 4월9일까지 성과물을 내놓으라고 요구했지만 노사의 이견으로 비준이 지연되자 FTA 조약 위반이라며 분쟁해결 절차에 돌입, 현재 최종단계인 전문가 패널 소집을 요청한 상황이다. 만약 EU가 실제로 통상압박을 개시할 경우 미중 무역전쟁과 일본의 수출규제로 통상위기를 겪고있는 우리나라의 부담이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정부는 노사의 양보를 당부하고 있다. 이재갑 고용부 장관은 “오랜 기간 형성된 법·제도와 견고해진 노사 관행을 바꾸는 것이 쉽지는 않겠지만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대적 과제인 만큼 이번 정부입법안 제출을 통해 노사가 조금씩 양보하면서 우리 노사관계를 바꿔 나가는 계기로 삼아줄 것으로 요청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