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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경에 탄식, 아홉 골짜기의 선경
주자를 흠모한 정구 선생의 발자취 아련
폐비된 비운의 인현왕후는 경북 김천의 청암사(靑巖寺)에서 3년간 머물렀다. 인현왕후는 조선 제19대 숙종의 계비로 곡절 많은 삶을 살았다. 그런 인연으로 김천시는 수도산 청암사를 중심으로 인현왕후길을 만들었다.
증산면 수도리에는 인현왕후길 외에 김천과 성주를 잇는 무흘구곡(武屹九曲)도 있어 걷기여행객들을 반기고 있다. 주희를 흠모하는 조선의 유학자들은 앞다퉈 구곡을 열었다. 조선 중기 영남학계의 대표적인 학자인 정구도 주자의 무이구곡처럼 무흘구곡을 경영했다. 무흘구곡을 걸으며 도학의 세계를 조금 엿볼까 한다.
아직 이른 시간, 날은 더워서 가만히 있어도 땀은 송글송글 목덜미를 적신다. 김천시 증산면 수도리 주차장을 출발해서 마을로 접어들었다. 맛있는 전이 익는 지글거림에 이끌려 한 음식점에서 시원한 막걸리 한사발을 들이키고 말았다. 3년의 슬픔을 간직한 인현왕후의 길과 주자의 세계를 꿈꾼 정구 선생의 무흘구곡에 들어서는 순간이다.
◆인현왕후 3년 머문 청암사, 인현왕후길
인현왕후길은 인현왕후가 3년을 기거하던 청암사 주변 수도산 자락에 있다, 청암사는 비구니 절이다. 수도리 마을을 지나 잠시 동안 가파르게 마을길을 따라 올라간다. 적당히 숨이 찰 때면 딱 그만큼의 거리에 수도암 삼거리가 있다. 여기서부터 9㎞의 본격적인 인현왕후 숲길이 시작된다. 길에는 인현왕후가 걸으면서 사색했음직한 글과 그림이 놓여 길의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길은 위아래 편차가 없어 편안히 걸을 수 있다. 내리쬐는 뜨거운 햇볕도 숲에 가려 시원하다. 길을 지나다가 언뜻언뜻 드러나는 햇볕에 더위를 느낄 정도이니 숲의 고마움을 저절로 체험하게 한다. 산허리를 따라 몇 구비를 돌다보면 청암사 삼거리가 나온다. 청암사 가는 길은 안내가 친절하지가 않다. 청암사를 들르지 말고 돌아가게끔 안내돼 있어서다. 이날은 인현왕후길과 무흘구곡을 보고 다음날은 청암사와 직지사를 들르기로 작정했다. 따라서 청암사 방향을 포기하고 돌아나가는 길을 택했다. 산에서 흘러내려오는 자그마한 계곡물에 발을 담그니 온몸이 짜릿하다.
다시 출발지점으로 가기 위해 산과 계곡을 따라 오른다. 옥동천 계곡은 깊고 수량도 풍부해서 이른 아침인데도 사람들이 벌써 자리를 잡고 있다. 깊은 계곡을 따라 오르다가 우르릉 커다란 소리가 들려온다. 많은 사람이 몰려있는데 그곳이 바로 무흘구곡의 폭포 용추(龍湫)다.
◆무흘구곡과 정구 선생
무흘구곡은 주희의 무이구곡을 잇댄 이름이다. 김천과 성주로 이어지는 약 35㎞의 계곡 이름은 주자를 흠모하고 사숙하던 한강 정구 선생이 중국 음이 비슷한 ‘무흘’로 본 따 칭한 것이다. 아름다운 절경 아홉곳이 있어 무흘구곡이 됐다.
용추는 구곡의 마지막이다. 수도리에서 흘러내려오던 옥동천이 급전직하 굉음을 낸다. 물은 하얀 포말로 부숴지며 사방으로 비산한다. 용추의 시원한 냉기는 피서 인파를 불러 모았다.
용추에서 2㎞를 내려가면 계곡물은 용이 길게 드러누워 있는 듯 굽이쳐 감싸고 나간다. 억겁의 세월, 흐르고 흘러 부드럽게 굴곡진 바위를 타고 흐르는 물줄기를 그렇게 받고 있는 와룡암(臥龍巖)이다. 와룡암은 8곡이다. 물은 바위를 타고 돌아 헤어졌다가 다시 만나며 와룡암을 지나갔다. 정구 선생은 “노는 사람 오든 말든 나 몰라라 하누나”(不管遊人來不來)라면서 와룡암의 절경을 노래했다.
7곡인 만월담(滿月潭)은 와룡암에서 1㎞ 남짓 내려와 있다. 만월담에서 옥동천을 따라 2.8㎞ 내려가면 6곡인 옥류동(玉流洞)이다. 대가천과 합류하는 지점에 있다. 대가천을 흐르는 맑은 물과 너럭바위들이 펼쳐진다. 솔숲이 우거진 계곡, 홀로 우뚝 솟은 옥류정 정자의 풍광은 아름답다. 6곡에서 9곡을 품은 김천의 무흘구곡은 5곡부터 성주로 절경을 넘긴다.
◆벼슬을 버린다… 성주의 무흘구곡
성주는 5곡 사인암(捨印巖)부터 1곡인 봉비암(鳳飛岩)이 있다. 사인암에는 얘기가 있다. 관인(官印·벼슬)을 버린다는 뜻으로 경치가 매우 좋아 관직을 버리고 이곳에 들어와 영원히 살겠다는 뜻이다. 기암절벽과 괴석으로 펼쳐진 광경은 눈을 돌릴 수 없게 만든다. 길게 절벽을 끼고 이어진 계곡에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나겠다는 마음이 일어난다.
우뚝 솟은 절묘함의 4곡 선바위와 3곡 배바위(무학정)를 뒤로하고 2곡인 한강대(寒岡臺)로 향했다. 한강대는 대가천의 맑은 물이 모여 연못이 된 곳이다. 정구 선생이 들린 절벽이기도 하다. 최근 세워진 한강정 뒤로 절벽으로 난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연못을 제대로 볼 수 있다. 바위에 새겨진 글자도 보여 멀리 연못을 바라보던 정구 선생이 떠올라 조용히 흉내를 내어본다.
한강대를 나와 1.5㎞ 떨어진 회연서원(檜淵書院)을 향했다. 정구 선생의 자취가 남아있는 곳이다. 회연서원은 정구와 이윤우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됐다. 희연서원의 뒤 작은 동산에는 1곡인 봉비암이 있다. 대가천에서 흘러들어온 양정소의 맑은 물과 깎아지른 듯 높고 기괴한 모양의 절벽, 또 나무들이 어우러져 경관은 빼어나다. 이곳에서 주자의 무이구곡을 본 따 무흘구곡이라 했다. 정구처럼 조선의 유학자들은 전국 100여곳에 구곡을 만들어 주자를 따르려 했다. 조선은 성리학의 세계였다.
정구 선생은 용추에서 구곡을 완성시키고는 다음과 같이 노래했다. “구곡이라 하여 고개를 돌리고서 다시 탄식하노니/ 이내 마음 산천만을 좋아한 게 아니로세/ 샘의 근원에는 절로 형언 못할 묘리 있어/ 이를 버려두고 어찌 천지를 찾으리”(九曲回頭更喟然 我心非爲好山川 源頭自有難言妙 捨此何須問別天)
☞ 본 기사는 <머니S> 제607호(2019년 8월27일~9월2일)에 실린 기사입니다.
주자를 흠모한 정구 선생의 발자취 아련
| 회연서원 뒤 양정소 전경. /사진=박성기 여행 칼럼니스트 |
증산면 수도리에는 인현왕후길 외에 김천과 성주를 잇는 무흘구곡(武屹九曲)도 있어 걷기여행객들을 반기고 있다. 주희를 흠모하는 조선의 유학자들은 앞다퉈 구곡을 열었다. 조선 중기 영남학계의 대표적인 학자인 정구도 주자의 무이구곡처럼 무흘구곡을 경영했다. 무흘구곡을 걸으며 도학의 세계를 조금 엿볼까 한다.
| 인현왕후길 안내도. /사진=박성기 여행 칼럼니스트 |
◆인현왕후 3년 머문 청암사, 인현왕후길
인현왕후길은 인현왕후가 3년을 기거하던 청암사 주변 수도산 자락에 있다, 청암사는 비구니 절이다. 수도리 마을을 지나 잠시 동안 가파르게 마을길을 따라 올라간다. 적당히 숨이 찰 때면 딱 그만큼의 거리에 수도암 삼거리가 있다. 여기서부터 9㎞의 본격적인 인현왕후 숲길이 시작된다. 길에는 인현왕후가 걸으면서 사색했음직한 글과 그림이 놓여 길의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 무흘구곡의 9곡 용추폭포. /사진=박성기 여행 칼럼니스트 |
다시 출발지점으로 가기 위해 산과 계곡을 따라 오른다. 옥동천 계곡은 깊고 수량도 풍부해서 이른 아침인데도 사람들이 벌써 자리를 잡고 있다. 깊은 계곡을 따라 오르다가 우르릉 커다란 소리가 들려온다. 많은 사람이 몰려있는데 그곳이 바로 무흘구곡의 폭포 용추(龍湫)다.
◆무흘구곡과 정구 선생
| 용추폭포 계곡을 잇는 구름다리. /사진=박성기 여행 칼럼니스트 |
용추는 구곡의 마지막이다. 수도리에서 흘러내려오던 옥동천이 급전직하 굉음을 낸다. 물은 하얀 포말로 부숴지며 사방으로 비산한다. 용추의 시원한 냉기는 피서 인파를 불러 모았다.
| 7곡 만월담. /사진=박성기 여행 칼럼니스트 |
7곡인 만월담(滿月潭)은 와룡암에서 1㎞ 남짓 내려와 있다. 만월담에서 옥동천을 따라 2.8㎞ 내려가면 6곡인 옥류동(玉流洞)이다. 대가천과 합류하는 지점에 있다. 대가천을 흐르는 맑은 물과 너럭바위들이 펼쳐진다. 솔숲이 우거진 계곡, 홀로 우뚝 솟은 옥류정 정자의 풍광은 아름답다. 6곡에서 9곡을 품은 김천의 무흘구곡은 5곡부터 성주로 절경을 넘긴다.
◆벼슬을 버린다… 성주의 무흘구곡
| 4곡 선바위. /사진=박성기 여행 칼럼니스트 |
우뚝 솟은 절묘함의 4곡 선바위와 3곡 배바위(무학정)를 뒤로하고 2곡인 한강대(寒岡臺)로 향했다. 한강대는 대가천의 맑은 물이 모여 연못이 된 곳이다. 정구 선생이 들린 절벽이기도 하다. 최근 세워진 한강정 뒤로 절벽으로 난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연못을 제대로 볼 수 있다. 바위에 새겨진 글자도 보여 멀리 연못을 바라보던 정구 선생이 떠올라 조용히 흉내를 내어본다.
| 회연서원. /사진=박성기 여행 칼럼니트스 |
정구 선생은 용추에서 구곡을 완성시키고는 다음과 같이 노래했다. “구곡이라 하여 고개를 돌리고서 다시 탄식하노니/ 이내 마음 산천만을 좋아한 게 아니로세/ 샘의 근원에는 절로 형언 못할 묘리 있어/ 이를 버려두고 어찌 천지를 찾으리”(九曲回頭更喟然 我心非爲好山川 源頭自有難言妙 捨此何須問別天)
☞ 본 기사는 <머니S> 제607호(2019년 8월27일~9월2일)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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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기 여행 칼럼니스트
박정웅 기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