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종원 IBK기업은행장이 취임식은커녕 본관 행장실 근처에도 가지 못한 채 외부 집무실 경영을 이어가고 있다. 금융노동조합이 청와대 출신 ‘낙하산 인사’라며 윤 행장의 출근을 저지해서다. 관행처럼 여겨진 노조의 반대투쟁은 이번에도 장기화되는 분위기다.


정부가 먼저 ‘낙하산’이란 빌미를 제공했지만 대치상태가 계속되면 경영불안이 커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잊을만하면 반복되는 낙하산 인사와 이를 기회로 잇속을 챙기려는 노조 간 대립을 풀기 위한 현명한 해법 마련이 시급한 상황이다.

윤종원 신임 기업은행장이 지난 3일 서울 중구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열린 2020년 범금융 신년인사회에 참석했다./사진=임한별 기자
최근 금융권에 따르면 윤 행장은 금융연수원에 마련된 임시 집무실에서 업무보고를 받고 있다. 윤 행장은 기획재정부 경제정책국장과 청와대 경제금융비서관, 국제통화기금(IMF) 상임이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특명전권대사,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 등 경제정책 전반을 담당한 정통 경제관료 출신이다. 

기업은행 노조는 지난 3일부터 윤 행장의 본점 출근을 저지했다. 여기에 금융노조도 가세하면서 상황은 더 악화됐다. 금융노조위원장으로 선출된 박홍배 당선인은 새 집행부의 첫 과제로 ‘기업은행 낙하산’ 저지를 천명했다.

청와대와 금융위원회는 윤 행장의 전문성을 검증했다고 반박하고 있다. 정부의 경제·금융 정책의 큰 뿌리인 ‘포용적 성장’, ‘혁신 금융’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 기업은행의 핵심 역할을 한 단계 발전시키는 데 기여할 것이라는 평가다.


기업은행 관계자는 “출근이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이기 때문에 임시 집무실에서 행장으로서 업무를 정상적으로 진행하고 있다”며 “노조와 대화하기 위한 통로를 마련하고 있다”고 말했다.

신임 국책은행장 임명에 노조가 출근저지로 실력행사에 나선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지난 2017년 9월 수출입은행장 임명 당시 일주일간 사무실로 출근하지 못했고 이덕훈 전 행장도 노조의 저지로 5일 간 은행에 들어서지 못했다. 산업은행 노조도 이동걸 회장의 출근 저지에 나섰으며 공개 토론 후 하루 만에 농성을 풀었다.


기업은행장은 금융위원회가 제청하고 대통령이 임명한다. 법적절차를 밟지 않은 이상 현실적으로 윤 행장의 임명 철회가 불가능하다. 때문에 노조가 윤 행장의 개인의 능력이 아닌 출신을 거론하며 반대하는 투쟁에 다른 의도가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견도 나온다.

오는 21일 서울 잠실 실내체육관에서 한국노총 신임 임원선출을 위한 정기선거인대회가 열리는 것과 무관치 않다는 의견도 나온다. 사무총장에 허권 금융노조 위원장이 출마한 것과 연계해 윤 행장의 출근을 저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기업은행 노조가 ‘노동이사제 도입’ 등의 실리를 취하기 위한 행보라는 해석도 있다.


노동이사제는 노조가 추천한 인물을 이사회 이사로 선임해 의사 결정에 참여하는 제도다. 금융노조는 금융권의 노동이사제 도입을 촉구하고 있으며 기업은행 노조는 추천서를 전달하는 형태로 이사 선임을 요구했다가 무산된 바 있다.

노조의 출근 저지 기간이 길어지면서 기업은행의 내부 기류도 심상찮다. 지난 9년간 기업은행은 조준희·권선주·김도진 행장 등 내부 인사가 행장에 올랐지만 내부 개혁을 이루지 못했다. 내부 인사가 CEO로 계속 선임되자 줄서기 문화, 파벌 문화 등 부작용도 나왔다.

당장 기업은행은 인사에 브레이크가 걸렸다. 연초 임기가 만료되는 기은 부행장급 이상 임원은 5명이며 김영규 IBK투자증권 사장, 장주성 IBK연금보험 사장, 서형근 IBK시스템 사장, 시석중 IBK자산운용 사장도 후임이 정해지지 않아 한시적으로 직을 유지하고 있다.

윤 행장은 이번 인사에서 적극적인 대화로 긴장된 노사 관계 회복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금융권 관계자는 “노조와의 협의점 모색은 윤 행장이 은행장으로서의 리더십을 평가받는 첫 시험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627호(2019년 1월14~20일)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