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노아크 개발자 B씨가 머리를 숙이고 사과하고 있다. /사진=온라인커뮤니티
게임업계가 또 한번 ‘남성혐오 사상검증’ 논란에 휩싸였다. 게임 일러스트레이터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남성혐오를 동조하는 게시물을 게재하자 회사 개발자가 머리를 박고 사과하는 사진을 게재한 후 해당 인력을 교체하기에 이른다. 페미니스트 게이머 단체는 관련 사안에 대해 본격적으로 규탄했다.

◆개발자 사과 있기까지

해당 사건은 로그라이크 RPG ‘크로노아크’에서 비롯됐다. 지난해 11월 크로노아크 일러스트레이터 A씨는 ‘여성살해 멈춰라 프랑스 물들인 보랏빛 행진’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공유했다. 기사는 프랑스 파리에서 남성 파트너에 의해 살해된 137명을 추모하고 ‘페미사이드’(여성살해)를 규탄하는 집회가 열렸다는 내용이 담겼다. 앞서 A씨는 ‘세상이 좀 급격하게 변했으면, 여자 소비하고 괴롭히는 문화 이제 좀 그만’이라는 트윗도 리트윗했다.


이후 A씨가 이달 초 자신의 SNS에 크로노아크 스킬 일러스트 작업을 한 사실을 공지하면서 논란이 발생했다. A씨가 크로노아크에 외주로 참여한 것이 알려지며 온라인커뮤니티를 중심으로 게임 ‘보이콧’ 운동이 확산됐다. 일부 유저는 환불을 요구하며 완강한 태도를 보였고 개발사 측에서는 진화작업에 나섰다.

크로노아크. /사진=공식 SNS
개발자 B씨는 본인의 SNS를 통해 사과문과 함께 머리를 바닥에 박은 채 절하는 사진을 게재했다. 사과문에서 B씨는 “크로노아크 스킬 일러스트 건에 대해 제 미숙한 검토로 인해 유저분께 상심을 드린 점 죄송하다”며 “커뮤니티에서의 경솔한 발언에 대해서도 고개 숙여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이어 B씨는 관련 스킬 일러스트에 대한 교체를 진행하는 한편 철저한 검토를 진행하겠다고 강조했다.

페미니스트 게이머 단체인 페이머즈는 업계의 사상검증을 규탄하는 성명서를 발표하고 개발자는 물론 정부의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밝혔다. 지난 8일 페이머즈는 SNS를 통해 “업계 여성 노동자가 논란의 여지가 있다는 블랙 컨슈머들의 주장으로 직업적 불이익을 당했다”며 “노동자에게 업무와 무관한 특정 정치적 입장을 묻고 이를 고용과정에 적용하는 것은 명백한 노동권 침해행위”라고 설명했다.


이어 페이머즈는 “개발자 B씨는 사상검증 시도를 인정하는 공식 사과문을 게시하고 노동권 침해에 대한 손해배상을 하며 피해 일러스트레이터의 일러스트를 재게시할 것”을 주문했다. 문재인 대통령, 고용노동부, 문화체육관광부,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사상검증 피해자를 보호하는 법안을 마련하는 한편 가해기업에 처벌을 가하는 등 업계의 사상검증을 강력히 대응하라고 강조했다.

◆끝나지 않는 갑론을박


업계의 남성혐오 사상검증 논란은 수년째 이어져 왔다. 정점은 2016년 ‘클로저스’ 성우로 참여한 C씨가 ‘메갈리아’(급진적 페미니스트 커뮤니티) 후원 티셔츠를 입은 사진을 SNS에 게재하면서부터다.

클로저스 성우가 메갈리아 후원 티셔츠를 입고 올린 사진. /사진=트위터 캡처
이후 많은 게임들이 남성혐오 커뮤니티에서 활동하거나 동조하는 의사를 밝힌 인력을 교체했다. 시프트업의 모바일 RPG ‘데스트니 차일드’와 ‘클로저스’는 급속도로 이용자가 줄었다. 지난달 16일 출시한 요스타의 모바일 디펜스 RPG ‘명일방주’의 경우 서비스전 사전예약 30만명 기념 축전을 내려 논란이 됐다. 축전을 그린 일러스트레이터가 과거 SNS를 통해 발언한 의견이 특정성별을 비하했다는 이유에서다.

명일방주 측은 공식카페를 통해 사상검증이 아닌 정치적 중립이라는 뜻을 명확히 했다. 공식카페 GM은 공지사항을 통해 “전후사정을 확인한 결과 축전을 그려주신 일러스트레이터가 과거 트위터 게시글 중 일부 특정사상에 동조하는 내용이 확인됐다”며 “이번 일로 많은 분께 심려를 끼쳐 죄송하며 명일방주는 어떤 정치·사상적 입장에 치우치지 않고 늘 중립적인 자세로 유저분께 다가가겠다”고 밝혔다.


반대로 여성혐오 커뮤니티에서 활동했거나 관련 키워드를 삽입한 게임업계 종사자도 해고된 바 있다. ‘일간베스트 저장소’(일베) 회원임을 암시하는 문구나 표현법을 사용한 것이 게임에서 드러나면 유저들은 즉각 등을 돌렸기 때문에 게임사도 즉각적인 대응에 나선다.

문제는 특정 성별이나 사상에 대한 무분별한 ‘혐오’다. 유저 입장에서는 성별을 떠나 한쪽으로 치우쳐 서로를 배척하고 근거 없는 비방으로 일관하는 자세를 기피하고 싶은 것이 당연하다. 특정 커뮤니티에서 활동했거나 이에 동조한 직원이 참여한 게임에서 탈퇴하거나 불매운동을 벌이는 현상으로 이어지고 게임사는 수익을 고려해 즉각적인 조치를 취한다.

전문가들은 ‘사상검증’ 논란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SNS 활동을 가급적 지양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표현의 자유는 지켜져야 하지만 ‘게임’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유저와 소통하는 만큼 공적인 게시물을 업로드할 때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게임업계 관계자는 “개발사나 퍼블리셔가 외주업체 인력 및 직원을 사상검증하는 일도 없지만 한다고 해도 인권침해 소지가 있다”며 “게임은 유저의 선호도에 따라 성패가 결정되는 만큼 즉각적인 대응 조치가 뒤따라야 하는데 가급적 직원들이 SNS에 사내 정보를 올리지 말 것을 권고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