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게임의 성장세가 무섭다. 게임 한한령이 진행된 수년 사이 우리 게임을 따라잡았다. /그래픽=김은옥 기자

‘중국산’이라고 하면 대부분 품질이나 신뢰도에서 그리 긍정적이지 않다. 몇 년 전까지 중국산 게임도 이런 맥락에서 크게 다르지 않았다. 스마트폰 보급에 따라 한국게임이 모바일 위주로 성장해왔듯 중국게임도 유사한 길을 걸었고 한국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 중국시장에서 한국게임에 열광한 반면 한국시장에서 중국게임은 짝퉁 게임이나 양산형 게임 취급을 받았다.

하지만 어느새 이런 분위기가 바뀌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최근 발간한 ‘2020 대한민국 게임백서’에 따르면 2019년 국내 모바일게임 매출 상위 20위에 중국산 게임 5개가 포함됐다. 20위권 내 한국산 게임들도 주로 대형 게임사 작품이다. 중국게임의 약진으로 국내 중소 게임사가 고전을 면치 못하는 상황이다.


서당개 3년에 풍월을 읊는다더니… 올해의 게임 ‘원신’

국내 시장 진입 초기부터 중국게임은 떨어지는 게임성과 완성도를 자극적인 마케팅과 물량 공세로 만회하려는 모습을 종종 보여왔다. 지난해에도 ‘왕비의 맛’이나 ‘좀비스팟: 미녀와 좀비’ 등이 선정적인 광고로 물의를 빚었다. 달라진 게 있다면 그동안 축적해온 기술력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이제 품질로도 승부를 건다는 점이다.

중국게임의 발전상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게임으로 오픈월드 액션 RPG(역할수행게임) ‘원신’을 꼽을 수 있다. 중국 게임사 ‘미호요’가 지난해 추석 연휴를 앞두고 글로벌 출시한 이 게임은 세계적인 열풍을 일으켜 구글과 애플 양대 애플리케이션 마켓에서 모두 ‘2020 올해의 게임’으로 선정됐다.

미호요의 오픈월드 액션어드벤처 '원신' /사진=원신 홈페이지, 그래픽=김은옥 기자

사실 ‘원신’은 발매 전부터 표절 논란에 시달렸다. 일본 닌텐도가 2017년 내놓은 명작 ‘젤다의 전설: 브레스 오브 더 와일드’(야숨)와 3D 카툰 렌더링 그래픽부터 특유의 상호작용 및 모션까지 여러모로 흡사했기 때문이다. ‘원신’ 개발진 역시 ‘야숨’에 영감을 받았다며 인정하기도 했다. 출시 전부터 ‘짭숨’이나 ‘짱숨’이란 별명이 붙은 이유다.

그럼에도 ‘원신’은 글로벌 히트를 기록했다. 포브스에서 “‘원신’이 가챠(확률형 아이템 뽑기 시스템)가 아니었다면 ‘야숨’보다 나았을 수도 있다”고 할 정도로 차별화도 성공했다. ‘원신’도 수집 요소를 위한 확률형 아이템인 ‘뽑기’가 있지만 이용자 간 경쟁을 유발하며 과금을 유도하는 기존 모바일게임과는 그 성격이 다르다는 점도 국내 이용자에게 어필했다.


한 국내 게임사 관계자는 “최근 중국게임은 기술력부터 콘텐츠 및 비즈니스모델(BM) 등 모든 부분에서 우리보다 1~2년 앞선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며 “게임 시장 트렌드 대응이 빠르고 출시하는 작품수도 많다. 다양한 시도도 적극적으로 하고 있어 해외에서 좋은 성과를 내는 게임도 최근 1~2년 새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고 밝혔다.

규모는 대국 + 행실은 소국 = 중국

중국게임의 성장 배경은 다른 산업분야도 으레 그렇듯 그 규모에 있다. 중국 게임공작위원회(GPC)가 공개한 ‘2020년 중국 게임산업 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 중국 게임시장의 실제 판매수입(매출)은 2786억8700만위안(약 46조6000억원)으로 지난해보다 20.7% 성장했다. 이 가운데 중국 내 게임사 비중이 86.2%(2401억9200만위안)를 차지한다. 전체 게임 이용자 수는 전년보다 3.7% 증가한 6억6500만명을 기록했다.


중국 게임시장 규모 /자료=중국 GPC

중국에서 개발한 게임이 해외에서 거둔 매출은 154억5000만달러(약 16조8000억원)로 전년 대비 33.25%나 증가했다. 특히 중국 모바일게임 수출에서 한국(8.8%)은 미국(27.6%)과 일본(23.9%)에 이어 세 번째로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국내 모바일게임 시장에서 지난해에만 약 1조4800억원을 벌어간 셈이다. 정작 중국은 2017년 3월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사태를 빌미로 한국게임에 외자 판호(중국 내 게임 서비스 허가권) 발급을 허용하지 않다가 약 4년 만에 지난달 컴투스 ‘서머너즈워’에 겨우 하나 내줬다.

중국게임 해외 매출 /자료=중국 GPC

중국이 국가 차원에서 불공정 거래를 한다면 일부 중국 기업은 국내 시장에서 행패를 부린다. 지난 11월 중국 게임사 ‘페이퍼게임즈’는 자사 모바일게임 ‘샤이닝니키’의 한국 서비스를 돌연 중단했다. 발단은 게임 내 한국 전통의상으로 추가된 ‘한복’ 콘텐츠였다. 중국 이용자가 한국이 아닌 중국 소수민족인 조선족의 것이라며 삭제를 요구하자 게임사가 이를 수용하면서 논란이 빚어졌다. “중국 게임사로서 자국 이익에 반하는 행위를 하지 않는다”는 이 회사는 심지어 문제를 지적하는 한국 언론에 “유감스럽고 분노스럽다”면서 적반하장 태도를 보였다.

결국 마무리는 ‘먹튀’였다. 중국 게임사의 일방적 서비스 종료로 이용자가 환불에 애먹고 개인정보 도용 불안에 시달리는 것은 사실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이에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이상헌 의원(더불어민주당·울산 북구)이 대표 발의한 게임산업진흥법 전부개정안에는 ‘국내 대리인 지정 제도’ 도입이 포함됐다. 국내에 영업장이 없는 일정 규모 이상 해외 게임사업자를 대상으로 국내 대리인을 의무적으로 두게 해 법의 사각지대를 없애기 위한 제도다.

한국게임, 다시 앞서 나가려면?

중국에 추격을 허용한 게임업계에서는 자성의 목소리도 나온다. 그동안 국내 업계가 확률형 아이템 등으로 단기적인 수익성에 치중했던 측면도 있기 때문이다. 기존의 한국식 사업모델은 이미 중국에서 흡수해갔다. 이젠 국내든 글로벌이든 완성도에서 중국게임보다 우위를 점하며 차별화를 꾀해야 시장에서 격차를 다시 벌릴 수 있다.


다른 국내 게임사 관계자는 “중국 게임사는 저렴한 인건비와 인력 활용에 이점이 있는 만큼 국내 게임사보다 개발기간이 상대적으로 적게 소요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그동안 비슷비슷한 게임이 계속 나오면서 이용자 피로감이 증가한 것도 있다. 색다른 장르와 신선한 게임으로 새로운 재미를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부의 역할도 중시된다. 중국은 2012년 게임을 11대 중점산업에 포함시키며 자국 게임산업을 육성하기 위한 보호 정책을 펼쳐왔다. 잊을 만하면 게임이 각종 이슈로 도마 위에 오르는 우리 실정과는 대비된다. 업계는 보다 체계적이고 적극적인 진흥책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한국게임산업협회 관계자는 “우리나라는 수준 높은 게임 이용자가 많아 산업 발전에 큰 힘이 돼주고 있다. 앞으로도 다양한 채널을 통해 그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며 “인공지능 등을 포함한 기술을 어떻게 남다르게 활용할지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한류’와 우리 고유문화를 게임 콘텐츠에 특화시켜 해외시장을 공략하는 방법도 모색해야 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