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사실 앞에 겸손한 정통 민영 뉴스통신' 뉴스1이 뉴욕타임스(NYT)와 함께 펴내는 '뉴욕타임스 터닝 포인트 2021'이 발간됐다. '터닝 포인트'는 전 세계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각 분야별 '전환점'을 짚어 독자 스스로 미래를 판단하고 대비할 수 있도록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지침서다. 올해의 주제는 '치유와 변혁의 시대: 공존을 위한 새로운 패러다임의 모색'이다. 격변하고 있는 전 세계 질서 속에서 어떤 가치가 중심이 될 것인지를 가늠하고 준비하는데 '터닝 포인트'가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출처 = NYT 터닝 포인트 2021) © 뉴스1

(서울=뉴스1) 박혜연 기자 = 터닝 포인트: 2020년 1월 31일 영국은 거의 50년 동안 회원국으로 있던 유럽연합(EU)을 공식적으로 탈퇴했다.

브렉시트에 대한 찬반 국민투표가 끝난지 4년이나 지났다. 하지만 아직 이 즐거운 여행의 진정한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아 보인다.

2020년 1월 31일 마침내 시행된 영국의 유럽연합 (EU) 탈퇴는 민족주의로의 퇴보라고 일컬어지고 있다. 즉, 세계화라는 진보적 꿈을 무너뜨리는 일종의 러다이트 운동(1811∼1817년 영국의 중·북부의 직물 공업 지대에서 일어났던 기계 파괴 운동)으로 묘사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제 중앙집권화와 연방주의에 대한 이상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다소 불가사의하고 미래적이며, 보편적이고 미생물적이며, 전 세계에서 기승을 부리고 있는 코로나19 세계적 대유행(팬데믹) 시대에 말이다.

2016년 브렉시트 국민투표 과정에서 드러난 문화적 균열은 2020년 초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안개를 드리우면서 잠시 치유됐다. 이러한 위협 앞에서 영국의 무상 국민보건서비스(NHS)는 새로 발견된 국민통합의 상징이 됐다.


이는 빅토리아 여왕이나 엘리자베스 1세와 2세 여왕의 여성성이 사실상 모계 사회적 우상이 된 현상과 유사해 보인다. 사람들은 일종의 감상적인 전체주의 의식을 치르듯 자발적이면서도 기괴한 단합을 보여주고 있다. 매주 목요일 저녁 8시에 문간과 발코니에 모여 국가의 보건의료 종사자들에게 박수를 보내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장면이 연출한 감동은 지난 5월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의 최측근이자 EU 탈퇴 운동의 핵심 설계자였던 도미닉 커밍스 수석 보좌관 부부 행동으로 인해 누그러졌다. 이들이 코로나19에 감염됐음에도 수백킬로미터 떨어진 영국 북부 소재 가족 농장을 방문했다는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지난 3월 말 이들이 런던에서 북쪽으로 차를 몰고 갈 당시 대부분의 영국 국민은 국가의 엄격한 검역 규정을 종교적 신념처럼 준수하고 있었다.


커밍스 수석 보좌관 부부의 봉쇄령 위반이 폭로된 직후 브렉시트 양극화라는 오래된 바이러스가 새롭게 활성화된 변종체가 돼 다시 수면으로 부상했다. EU 잔류에 투표한 사람들은 커밍스 수석 보좌관을 규탄하는 것이 국가적 중대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EU 탈퇴 찬성에 투표한 사람들의 반응은 상대적으로 미온적이었다. 다만, 우리가 모두 동의한 한 가지는 봉쇄 규정을 더는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영국의 최대 강적이었던 나폴레옹은 "지리는 운명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그리고 영국에 대해 무시하기 어려운 한 가지 사실은 섬나라라는 점이다. 이처럼 영국은 유럽 본토와 물리적으로 이어져 있지 않기 때문에 유럽 대륙과의 어떠한 연결도 개념적일 수밖에 없다. 또한, 이러한 관계로 인해 양측 간에는 종종 약간의 긴장 상태가 조성 되기도 했다.

영국과 프랑스 사이에 건설된 해저 터널은 아이디어를 추진하는 데만도 엄청난 시간이 걸렸다. 해저 터널 건설 공사는 1980년대 후반에 마침내 시작됐다. 하지만 양국 간의 해묵은 상호 적대감으로 인해 공사 과정은 어려움을 겪었다. 양국을 분리하고 있는 천연 해자(도버해협)를 보존해야 한다는 무의식적 바람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이 같은 인식이 표면으로 드러나지 않았지만, 지금은 공공연하게 드러나 보인다.

유럽 대륙의 권력에 대한 반감은 영국 신화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모두 외국 군대의 포위와 침략, 고귀한 패배, 비통한 협력 등을 내용으로 한다. 반면 국가의 내부적 갈등은 역사적으로 효율적이고 제한적인 신분제를 통해 승화됐다.

(출처 = NYT 터닝 포인트 2021) © 뉴스1

브렉시트를 제외하면 영국 국민은 오랫동안 서로를 경멸하고 적대감을 보이며 등을 돌린 적이 없다. 물론 1649년 찰스 1세가 참수된 적은 있지만, 이는 단순한 우발적 사건에 불과했다. 11년 뒤 영국인들은 그의 아들에게 왕좌를 넘겨줬다. 또한, 영국인이라면 누구든 그런 껄끄러운 일을 저지른 점에 대해 거리낌 없이 유감을 나타낼 것이다.

우리 영국인들은 일반적으로 혁명을 하지 않는다. 혁명을 한다고 해도 권력은 급진적으로 재분배되지는 않고 오히려 강화된다. 1381년의 농민 반란은 지도자만 참수되는 것으로 끝났다. 1688년의 명예혁명은 국내 귀족들(구교도)과 약간 다른 방식으로 예수를 믿는 외국계 귀족들(신교도)에게 권력을 부여한 것이다. 산업혁명은 단지 노동자 계층에 대한 착취를 기계화했을 뿐이다.

계층화된 문화로 인해 우리는 우리만의 상자 속에 갇혀 있다. 브렉시트 국민투표는 표면적으로 유권자들에게 EU에서 탈퇴하거나 잔류하는 단순한 양자택일에 대한 선택권을 제공한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 이상을 선택할 수 있게 한 것으로 보인다. 즉, 기득권층에 찬성하거나 아니면 반항할 기회를 제공한 것이다.

이 논란투성이의 국민투표에 대한 이 같은 소박한 해석이 가능한 이유는 평범한 영국 사람들을 정치적으로 대표하던 노동당이 1990년대 토니 블레어 총리 밑에서 기득권을 위한 일종의 신자유주의적 정당으로 탈바꿈하면서 '대표성 해체'가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이 시기 영국 좌파의 목적은 노동자 계층을 위한 경제적 평등을 추구하던 것에서 경제적 보수주의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항복을 감추는 일종의 '쇼'와 공허한 낙관주의로 변모했다.

노동당에 배신당했다는 인식에 따라 노동자들은 공정성에 향수를 품고 갈망했다. 이것이 결국 민족주의의 부상과 브렉시트에 대한 지지로 이어졌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노동자들을 대표하기 위해 설립된 정당들은 노동자들에게 영국적인 특성과 깃발을 버리라고 강요했다.

하지만 이 같은 영국적 특성은 역사적으로 노동자들의 희생을 고취하기 위해 동원됐던 요소였다. 이것이 노동당의 EU 잔류 운동을 실패로 몰아가는 데 한몫했다. 노동당은 경제적 평등보다 문화적 평등에 초점을 맞췄다. 하지만 이는 노동자 계층이 갈 수 있는 곳이 브렉시트 지지자들의 품 안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했다.

나는 영국의 블루칼라(노동자 계층) 출신으로서, 브렉시트를 지지하는 노동자 계층이 흔히 그들을 악마로 묘사하는 기관들의 주장과는 달리 편협하거나 시대착오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 생각에 그들은 자기 등에 칼이 꽂혔다는 것을 깨달았을 뿐이다.

이제 정치는 의견 표출에 관한 것이 됐다. 즉, 주로 사람들이 어떤 행동을 하느냐보다 어떤 말을 말하느냐가 더 중요해진 것이다. 글로벌 소셜미디 어(SNS)의 출현으로 불만과 분열이 급격해질 수있는 '화려한' 디지털 양조장이 제공됐다. 편견, 맹목, 혐오는 냉정하고 독단적인 확신 속에서 소리 없이 퍼져나갈 수 있다.

이러한 환경의 세계적 대유행은 우리가 지배층을 보호하고 섬기기만 하는 중앙집권 시스템에서는 더 이상 살아가지 못한다는 것을 드러낸다. 브렉시트 이후 영국에서 나타난 새로운 사회적 분열이 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터무니없는 인기영합주의자나 자유주의적 테크노크라트(기술관료)는 모두 초당적 민주주의에서 나온 위선적이고 피상적인 선전보다는 진정한 정치적 대안이 필요함을 나타내는 징후다.

아마도 코로나19 바이러스 이전 시대, 브렉시트 이전 시대에는 우리 모두가 적나라한 나만의 개인주의, 즉 더 심각한 고립에 격리돼 있었을 것이다. 우리는 개개인의 일시적 정체성이라는 감방 안에 홀로 감금돼 있었다. 그곳에서 우리는 그 어떠한 믿음과 보살핌도 없이 다루기 힘든 욕망을 덧없이 충족할 뿐이었다.

이는 영국인들이 진정한 통합의식에 도달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분수령이다. 궁극적으로는 우리가 떠나거나 안에 갇혀 있어야 할 자아의 섬이다.

(출처 = NYT 터닝 포인트 2021) © 뉴스1

러셀 브랜드는 코미디언이자 배우다. 『회복: 중독으로부터의 자유』의 저자이며 주간 팟캐스트 '언더 더 스킨'을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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