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자신의 명운을 걸고 권력에 끈질지게 저항하는 전 세계의 反骨들. 이들이 'NO'를 외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뉴스1 국제부 강민경 기자가 이들의 지향점과 삶의 면면 그리고 이들이 꿈꾸는 세상을 포착합니다.


러시아 야권 운동가 알렉세이 나발니. © AFP=뉴스1

(서울=뉴스1) 강민경 기자 =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 돌아온 차르의 숙적.

러시아 야권의 핵심인물 알렉세이 나발니(44)가 끝없는 시련을 마주하고 있다.

지난해 여름 독극물에 노출된 뒤 18일간 의식이 끊긴 데 이어, 올 초에는 고국으로 돌아오자마자 철창 신세가 됐다.


리아노보스티통신에 따르면, 26일 현재 나발니는 지금 감옥을 떠나 불명의 수용시설로 이송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나발니가 반정부 시위대와 함께 거리로 나서고 있다. © AFP=뉴스1

◇ 10년째 반푸틴 선봉장…옥중에서도 푸틴 관련 충격 폭로 이어가

나발니가 반푸틴 시위의 선봉장으로 나선 지는 어느덧 10년째.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겐 지긋지긋한 눈엣가시다.


그는 자신을 반부패 운동가로 정의한다. 소셜미디어(SNS) 여론을 주도하는 인플루언서기도 하다. 유튜브 구독자만 650만명에 이른다. 블로그를 통해 푸틴 대통령과 그 측근의 비위를 고발하며 청년층의 마음을 꽉 잡았다.

이런 영향력을 기반으로 오랜 기간 집권한 푸틴의 통합러시아당에 '사기꾼과 도둑놈들의 정당'이라는 오명을 씌우는 데 성공했다. 선관위의 출마 제한으로 공직엔 나서지 못하고 있으나 늘 장외 투쟁 한가운데를 지키며 야권의 상징으로 자리잡았다.


독극물 중독으로 사경을 헤매고도 나발니는 지난달 17일 고국행을 선택했다. 모두의 예상대로 귀국하자마자 체포됐다. 법정에서는 2014년 선고받은 집행유예 판결이 취소되고 3년6개월의 실형에 처해졌다.

하지만 옥중에서도 반푸틴 활동은 계속됐다. 그의 SNS는 여전히 살아있었다. 먼저 유튜브를 통해 푸틴 대통령의 '호화 궁전' 의혹을 폭로했다. 검은 돈을 끌어모아 흑해 인근에 호화 저택을 지었다는 얘기였다.

영상 속에선 카지노와 폴댄스 무대, 영화관 등 각종 유흥시설이 포함된 1조4000억원짜리 아방궁이 3D 컴퓨터그래픽으로 생생하게 펼쳐졌다. 모두가 경악했다.

나발니가 푸틴의 '호화 궁전'이라고 주장하는 건물. <출처=알렉세이 나발니 유튜브>

파장은 컸다. 나발니를 없는 사람 취급하던 푸틴 대통령은 이례적으로 직접 해명에 나섰다. 이미 10년 전부터 제기된 의혹이며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푸틴 대통령과 막역한 사이로 알려진 러시아 올리가르히(재벌) 아르카디 로텐버그는 해당 저택이 자신의 것이라며 비호에 나서기도 했다.

폭로 카드는 더 남아있었다. 나발니는 푸틴 대통령이 내연녀와의 사이에 숨겨진 딸을 두고 있다며 루이자라는 열일곱 살 소녀의 신상을 공개했다. 이 소녀의 SNS에는 샤넬과 입생로랑 등 각종 명품 브랜드 제품으로 도배한 사진들이 올라왔다. 호화 생활을 누리고 있다는 증거였다. 이는 러시아 청년들의 상대적 박탈감을 자극했다.

나발니의 콘텐츠가 반푸틴만 있는 것도 아니었다. 러시아 국민들이 피부로 느끼는 문제도 잘 짚어냈다. 또다른 영상에서는 러시아 내 빈부 격차 문제를 날카롭게 고발했다. 공개 직후부터 큰 파장을 일으킨 이 영상은 조회수가 1억6000만회를 넘었다.

그렇게 반정부 시위는 영하 50도 맹추위 속에서도 러시아 60개 도시를 뜨겁게 달궜다. 도화선은 나발니의 구금이었으나 이미 러시아인들의 불만은 장작처럼 쌓이고 있었다. 지갑 사정 때문이다. 러시아 통계청은 지난해 자국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3.1%로 잠정 집계됐다고 밝혔다. 세계 금융위기 여파가 있던 2009년 이후 11년만에 가장 큰 후퇴다.

러시아인들은 이를 피부로도 느끼고 있다. 지난해 러시아 국민들의 실질 소득은 전년대비 3.5% 감소했다. 실업률은 5.9%로, 2011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 시위대는 살을 에는 한파 속에서도 "푸틴은 도둑놈이다"라는 구호를 외쳤다.

1월 23일(현지시간) 모스크바에서 경찰이 지켜보는 가운데 야권 운동가 알렉세이 나발니의 석방을 촉구하는 시위대가 집회을 하고 있다. © AFP=뉴스1 © News1 우동명 기자

◇ 서방의 대러시아 제재 강화 빌미

반정부 활동을 이어가던 지난 8월, 나발니는 시베리아 톰스크 공항에서 차를 마신 뒤 기내에서 갑자기 쓰러졌다. 독일로 이송된 후 극적으로 목숨을 건졌다. 독일 의료진은 그가 독극물에 노출됐다고 결론지었다.

독일 연방군 연구소와 프랑스, 스웨덴 연구관은 그가 신경안정제 노비촉을 접한 것으로 추정했다. 노비촉은 전직 러시아 스파이 세르게이 스크리팔의 독극물 피습 사건에도 사용된 물질이었다. 사건의 배후로 러시아가 지목된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나발니는 의식이 끊겨있는 동안 국제사회에서 체급을 키웠다.

이 사건은 서방이 대러시아 제재를 강화할 명분을 제공했다. 유럽연합(EU)은 인권 제재를 위해 새로 도입한 법을 러시아에 처음으로 적용한다. EU 외무장관들은 나발니의 구속 수감을 주도한 러시아 고위 관리 4명을 제재하기로 합의했다. 이 법은 인권 침해에 개입된 개인이나 단체에 제재를 가할 수 있도록 하는 미국의 '마그니츠키 인권책임법'과 유사하다. 마그니츠키 또한 나발니처럼 러시아 권력층의 부패를 폭로했던 인물로, 2009년 옥중에서 곤봉으로 폭행을 당해 사망했다.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인권 문제를 중시하는 조 바이든 행정부 또한 나발니의 독살 시도 등을 사유로 러시아에 제재를 부과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이렇게 나발니는 자유롭지 않은 몸으로도 푸틴 대통령을 수세로 몰고 있다.

지난 21년간 권좌를 유지해온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 AFP=뉴스1

◇ 남은 형기 2년 반…만델라·김대중처럼 국가 지도자 될까

나발니의 남은 형기는 약 2년 반이다.

푸틴 대통령의 4기 임기는 3년 뒤인 2024년 종료된다. 하지만 끝이 아니다. 지난해 헌법 개정으로 5기 집권을 위한 길도 열어놨다. 덕분에 지금 68세인 그는 84세가 되는 2036년까지 6년 임기 대통령직을 두 차례 더 지낼 수 있다.

그 사이에 나발니가 대중들에게 잊히지 않고 건강한 몸으로 풀려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러시아는 국제사회의 제재 압박에도 내정 불간섭을 주장하며 굳건히 버티고 있다.

나발니는 징역 3년6개월을 선고받기 전 법정 최후 진술에서 이렇게 말했다.

"러시아는 지금 불공정에 토대를 두고 있지만 수천만 명이 진실을 찾길 원한다. 언젠가 그들은 진실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나발니는 러시아에 봄을 가져다줄 수 있을까. 그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넬슨 만델라 전 대통령, 한국의 김대중 전 대통령처럼 갖은 수모를 이겨내고 국가 지도자가 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러시아 야권 지도자 알렉세이 나발니가 28일(현지시간) 모스크바 외곽의 크라스노고르스크에서 구금 항소 법원과 연결된 스크린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 AFP=뉴스1 © News1 우동명 기자

Δ알렉세이 나발니 Δ정당 '미래의러시아' 대표 Δ1976년 6월4일 모스크바 출생 Δ러시아 민족우호대학 법학 학사 Δ러시아 연방정부 산하 경제대학 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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