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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고승아 기자 = 한국 할머니가 미국을 사로잡았다. 영화 '미나리'(감독 정이삭)에서 할머니 순자를 맡아 따뜻한 정을 연기한 배우 윤여정의 이야기다.
윤여정은 '미나리'에서 어린 손자들을 돌보기 위해 한국에서 미국으로 온 순자를 연기했다. 순자는 1980년대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미국 아칸소주(州)로 떠난 딸 모니카(한예리 분)의 부름에 낯선 땅으로 건너온다. 고운 진달래빛 원피스를 입고 조심스레 얼굴을 비춘 순자는 우리네 할머니를 스크린에 옮겨 담은 듯 한 이미지를 풍긴다.
순자는 손자인 데이빗(앨런 김 분)을 '데이비사'라고 부르고, 밤을 못 먹는 손자를 위해 이로 깨고, 고운 속살을 발라서 건넨다. 반면 순자는 요리를 할 줄 모르고 쿠키도 굽지 못한다. 대신 고스톱을 좋아하고 레슬링 경기를 즐겨보는 할머니다. 손자의 짓궂은 장난도 "어휴, 그러지 마라"라며 따뜻하게 넘어간다. 영어가 익숙하지 않지만, 순자는 언어의 장벽을 넘어 따뜻한 진심을 전한다.
윤여정은 순자에 자연스럽게 녹아들며 캐릭터에 생명력을 부여했다. 한국 할머니의 모습이 낯선 '데이비사'와 투닥거리면서 관계를 쌓아 나가는 모습을 일상적으로 그려내면서 소소한 웃음을 선사한다. 동시에 영화 말미 닥쳐온 위기를 바라보는 순자의 감정을, 공허하면서도 만감이 교차하는 눈빛으로 표현한 윤여정의 표정이 깊은 인상을 남기기도 한다. 그렇게 탄생한 순자는 실제로 어딘가에 살아 숨 쉬고 있을 듯한 느낌을 주기에 충분하다.
1947년생으로 올해 우리나이로 75세인 윤여정. 실제로 할머니라고 불릴 만한 나이이기도 한 윤여정은 그렇게 그저 가정에 헌신적이기만 한 스테레오 타입에서 벗어나 따뜻한 사람으로서의 '한국 할머니'를 완성시켰고, 미국은 그에 매료됐다. 외신은 '미나리'를 리뷰하며 순자에 대한 호평을 전했다. 뉴욕타임스는 윤여정을 '신스틸러'라고 말하며 "힘들이지 않으면서도, 불안한 감정의 캐릭터에서 빈틈을 발견해낸다"고 평했다. 특히 '한국의 메릴 스트립'이라는 말도 나왔다. 물론 윤여정은 손사래 치며 "전 그저 제 자신"이라고 했다.
결국 윤여정은 각종 해외 시상식에서 연기상 통산 32관왕을 달성하는 기록을 세웠다. 여기에 윤여정은 또 하나의 큰 족적을 남겼다. 오는 4월26일 오후(한국시간 기준, 미국 현지시간 4월25일 오후) 미국 LA에서 열릴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의 여우조연상 부문 최종 후보로 최근 지명된 것이다. 한국 배우가 아카데미 시상식 후보에 오른 것은 윤여정이 처음이다. 이로써 그는 지난 1966년 연기 생활을 시작한 지 55년 만에 '한국인 최초' 기록을 남기며 영화계에 한 획을 그었다.
윤여정은 '미나리' 측을 통해 "사실 노미네이트가 되면 이제 수상을 응원하시고 바라실 텐데 이 노미네이트만으로도 상을 탄 것과 같다고 생각된다"면서 "응원에 정말 감사드리고 이 나이에 이런 일이 있을 거라고는 저도 상상을 못 했다"고 기쁨을 전했다. 이어 "교포 2세들이 만드는 작은 영화에 힘들지만 보람 있게 참가했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기쁜 순간을 맞이하게 됐다"고 전했다.
정지욱 영화평론가는 뉴스1에 윤여정이 보여준 '한국 할머니' 이미지와 관련, "미국 평단에서 그간 '한국 아줌마(할머니)' 이미지는 그저 억센 이미지에 불과했다"라며 "그런데 '순자'가 손자들을 향한 사랑을 보여주며 그 이미지를 순화시켰고, 이를 본 북미에서 윤여정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어 "순자의 모습은 동양에서의 내리사랑이라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라며 "할머니에게 보살핌을 받으면서 동시에 할머니가 손자들을 가르치는 것이 효과적이고, 이상적인 가정의 모습이라는 의견이 있는데 이를 '미나리'가 섬세하게 그려낸 점이 돋보인다"고 덧붙였다.
순자는 극 중 비스듬한 물가 옆에 '미나리'를 심는다. 미나리는 외진 곳에서도, 어디에서든 잘 자라난다고 한다. 그가 심었던 미나리가 지금 뿌리를 내리고 굳세게 자라고 있는 가운데, 어디까지 뻗어나갈지 이목이 집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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