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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황석영은 1989년 3월 어느날 9시 뉴스를 통해 전해진 충격적 소식에 대해 말했다. 바로 황석영의 민간인 최초 방북 소식.
황석영은 도대체 그때 왜 갔냐는 질문에 “일본에 가서 강연을 하는데 짓궂게 북한에 대해 물어본다. 질문을 하길래 '나는 북한에 한 번도 안 가 봐서 모른다, 나는 남한 역사의 산물이고 남한 방식으로만 사고해 그 한계 내에서 얘기하겠다'. 그때 누군가 손을 번쩍 드는 거다. '당신같은 작가가 분단을 운명이라고 체념하고 받아들이면 외국에서 조국 통일 바라는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냐는 거냐'라고 하는 거다. 그 순간 창피해 뭐라 할 말이 없는 거다. 그 순간 고개를 들을 수 없을 정도로 창피했다”면서 “그때 ‘에이씨, 가버려야지’ 결심해, 작가라고 치욕스러웠다”며 대한민국 작가로 쪽팔려서 갔다고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일로 인해 망명 5년, 귀국 후 수감돼 징역 5년까지 총 10년의 공백기를 겪어야 했다. 금기를 깨고 북한으로 가서 얻은 점이 무엇인지를 질문 받자 황석영은 “가뿐하게 남북 분단 장애를 벗어나 한반도라는 핍진하고 좁은 시선에 틔여세계속에서 객관적으로 봤다”고 밝혔다. 모든 작가는 그런 존재이자 작가의 욕망이라고도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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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림 기자
안녕하세요. 동행미디어 시대 김유림 기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