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진이형 밤 샜어요?” “일찍 일어나 일하고 있어요.”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는 2019년 자사 게임인 ‘리니지2M’ 광고에 출연해 화제를 모았다. 그는 수차례 광고 출연으로 대중에게 친근한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 성공했고 어느 순간부터 ‘택진이형’으로 불렸다. 애칭이 생긴 후 김 대표는 엔씨소프트의 간판 게임 ‘리니지’보다 더 유명한 존재로 거듭났다. 최근 택진이형을 위협하는 새로운 ‘형’이 나타났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이다. 그는 택진이형처럼 프로야구단을 창단해 구단주가 됐고 지속적인 SNS 소통으로 ‘용진이형’으로 불리고 있다. 원조 택진이형 못지않은 각별한 야구 사랑과 소통 전략으로 인지도를 높이고 있는 용진이형의 의도를 파헤쳐 본다.
지난 4일 인천SSG랜더스필드에서 열린 2021 KBO리그 롯데자이언츠 대 SSG랜더스 경기에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을 닮아 화제가 된 캐릭터 ‘제이릴라’가 정 부회장 옆에서 셀카를 찍고 있다. 사진=뉴시스 고승민 기자
“정말 짜증 나네 이 고릴라 XX”
“(키움히어로즈) 다 발라버리고 싶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상에서 ‘용진이형’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은 거침이 없다. 때로는 선을 넘는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위태로운 상황을 연출하지만 특유의 위트와 재미로 대중의 지지를 이끌어낸다. 다년간 SNS 활동으로 쌓아온 내공이 빛을 발한다.
정 부회장은 2010년 트위터를 시작으로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등으로 활동 영역을 넓히며 자유롭게 대중과 소통해왔다. 하지만 정 부회장의 소통 경영을 바라보는 시선은 천차만별이다. 재벌 총수에 대한 이미지를 친근하게 바꿨다는 긍정적인 평가와 함께 가볍고 놀이하는 태도로 위화감을 조성한다는 지적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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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달고 소통하는 용진이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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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부회장은 앞에 나서기 꺼리고 점잔 빼며 앉아있는 기존 재벌 총수 이미지와 궤를 달리한다. 그는 팔로워들의 질문에 직접 댓글을 남기는 등 허물없는 모습으로 두터운 팬층을 확보하고 있다. 주요 소통 창구인 인스타그램 팔로워 수만 약 63만8000명에 달한다. 특히 은둔의 경영자나 권위주의 리더와 차별화된 행보에 젊은 세대가 가장 크게 호응하고 있다.
한 온라인 커뮤니티 이용자는 “소주나 과자 등 사진을 올리고 추천하는 용진이형 모습이 친근하게 다가온다”며 “다른 세상의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했던 재벌 총수와 SNS에서 소통할 수 있다는 게 신기하고 재미있다”고 말했다.
정 부회장의 이 같은 소통은 그동안 멀게만 느껴졌던 재벌 총수 이미지를 개선하는데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대중에 자연스럽게 노출되면서 재벌의 삶에 대한 동경과 호기심을 풀어주는 효과가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안승호 숭실대 경영학부 교수는 “재벌 총수나 대기업 대표 등은 일반인이 접근하기 힘든 대상이지만 지속적인 소통으로 충분히 접근 가능하고 동질감을 느낄 수 있는 관계로 발전했다”며 “오너와 고객의 관계가 단순히 물건을 사고파는 데 그치지 않고 서로 가치를 공유하는 팬클럽 형태로 진화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팬들은 인플루언서의 아주 사소한 행동에 열광하고 지지를 보낸다”면서 “경쟁이 심한 사회일수록 이 같은 접근 방식은 사업의 지속성을 확보하는 데 유리하다”고 강조했다.
사진=정용진 부회장 인스타그램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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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도된 용진이형식 도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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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부회장이 SNS로 소통하는 모습은 퍽 자연스럽다. 요즘 세대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아는 눈치다. 실제로 정 부회장이 올리기만 하면 수만 개의 좋아요가 달리고 금세 화제의 중심에 선다. 청정 고창 소주나 꼬북칩 등 정 부회장이 SNS에 올린 제품이 품절 사태를 빚을 정도로 관심을 모았다. “용진이형이 찜하면 통한다”는 말이 나오는 까닭이다.
그룹 내에서도 정 부회장의 소통 경영을 반기는 분위기다. 신세계그룹 관계자는 “정 부회장이 주로 그룹 계열사에서 진행하는 사업이나 제품을 홍보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다른 기업은 인플루언서에게 돈을 주고 홍보하지만 우리는 정 부회장이 직접 나서서 홍보하고 있어 긍정적이다. 이만한 영향력을 가진 사람을 찾기가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반면 소통 경영에 따른 위험부담도 적지 않다. 사소한 말실수나 태도로 인해 쉽게 입방아에 오르고 기업 이미지에 심각한 타격을 입을 수도 있다.
실제로 정 부회장은 지난달 말 음성 기반 SNS인 클럽하우스에서 유통 맞수인 롯데를 도발한 데 이어 키움히어로즈에 대해선 비속어까지 섞어가며 폭탄 발언을 쏟아냈다. 발언 수위가 지나쳤다는 지적이 잇따랐지만 일각에서는 정 부회장의 의도된 언사라는 분석도 제기됐다.
정 부회장은 “내가 도발해서 롯데가 불쾌한 것 같은데 그렇게 불쾌할 때 더 좋은 정책이 나온다”며 “계속 불쾌하게 만들어서 더 좋은 야구를 하게 만들겠다”고 말했다.
정 부회장이 최근 신세계푸드의 캐릭터 ‘제이릴라’와 실랑이를 벌이는 모습도 이와 비슷한 맥락이라고 할 수 있다. SNS에서 제이릴라와 묘한 신경전을 벌이는 상황을 연출해 일부러 입소문을 내고 있다는 평가다. 제이릴라는 신세계푸드가 지난 4월2일 특허청에 출원 신청한 캐릭터다. 정 부회장이 자신의 SNS에 제이릴라의 사진을 꾸준히 올리면서 유명세를 타고 있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세계적 마케팅 석학인 필립 코틀러 교수의 저서를 인용해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이후 자본주의 4.0과 ESG(환경·사회·지배구조)의 시대가 본격화하며 ‘마켓 5.0’ 시대로 변할 것”이라고 말했다.
마켓 5.0이란 인간성을 중시하는 ‘마켓 3.0’과 디지털 전환을 중시하는 ‘마켓 4.0’이 결합해 탄생한 시장을 일컫는다. 휴머니즘을 중시하는 새로운 시장에서는 정 부회장과 같은 소통 방식이 필수적이라는 의미로 풀이된다.
서 교수는 “지금 시장에서는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가치관과 라이프스타일이 매우 다른 5개 세대에 걸친 소비자가 존재한다”며 “마켓 5.0 시대 기업은 세대 격차를 줄이는 마케팅으로 우리 사회를 지속가능한 새로운 균형으로 인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