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 싸움에 한국 등 터질라… 안개 속 ‘디지털세’ 출구는?
[머니S리포트 바이든 한국서 구글세 받으면 보복?… 심화되는 디지털 통상 마찰①] 디지털세 논의 급물살, 올 하반기 윤곽 나오나
팽동현 기자
13,502
공유하기
편집자주
세계적으로 인터넷 보급이 이뤄지면서 온라인으로 해외에서 물건을 사고팔고 각종 서비스를 이용하는 게 일상이 됐다. 10여년 전 등장한 스마트폰은 시간·장소 제약 없는 모바일 연결을 가능하게 해 이런 전환을 부추겼다. 이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으로 비대면 생활이 강제되기에 이르렀다. 바야흐로 정보기술(IT)이 모든 분야에 기반이 되는 디지털 경제 시대가 도래했다. 코로나19로 휘청였던 세계 경제는 차츰 회복세다. 전 세계 시가총액 최상위를 과점할 만큼 비대해진 글로벌 IT공룡으로부터 응당한 몫을 돌려받자는 움직임도 다시금 본격화된다. 대표적인 게 각국 정부의 밥그릇인 세금이다. 뉴스 등 디지털 콘텐츠 사용료에 대한 논의도 시작됐다. 높아지는 무역장벽으로 디지털 통상에도 전운이 드리운다.
디지털세? 디지털서비스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다국적 기업의 조세회피로 각국 정부가 입는 세수 손실은 연간 2400억달러(약 270조원)에 이른다. 서비스 지역에 고정사업장을 두지 않고도 영업활동을 할 수 있는 디지털 서비스 기업이 특히 문제다. 주요 IT기업은 나라마다 세법이 다른 점을 이용해 아일랜드나 싱가포르처럼 세금을 덜 내는 곳에 회사를 두고 실제 서비스 지역에서 거둔 이익을 감추는 꼼수를 부려왔다.덩달아 세계 각국은 글로벌 기업 유치를 위해 법인세 인하 경쟁을 벌이기도 했다. 이에 2012년 OECD에서 BEPS(소득 이전을 통한 세원잠식) 대응 논의를 본격화하면서 OECD와 G20의 공동 BEPS 프로젝트가 추진됐다. 이어 2015년 15개 실행계획(Action Plan)이 발표됐고 이 중 첫 번째(Action 1)가 바로 디지털세(Digital Tax)이자 ‘구글세’라고도 불리는 전 세계적 법인세제다.
디지털세는 필라(Pillar)1·2 두 가지 접근법으로 구성된다. 필라1은 다국적기업이 고정사업장 없이 벌어들인 이익에 대해서도 해당 국가가 과세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주요 내용이다. 필라2는 세계적으로 법인세 최저한도를 설정해 조세회피 행위 자체를 감소시키는 게 목적이다.
이상호 한국경제연구원 경제정책팀장은 “글로벌 기업이 OECD에서 설정한 업종별 정상이익률을 초과해 거둔 이익에 대해 해당 시장 소재 국가가 과세할 수 있게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디지털세 도입은 지난 4월 기준 138개국이 참여한 OECD·G20 포괄적 이행체계(IF)에서 추진돼왔으나 그동안 진전이 더뎠다. 세계 최강대국이자 글로벌 IT공룡들의 본국인 미국에서 반대 목소리를 냈기 때문이다. 보호무역주의 기조였던 트럼프 행정부는 자국 내 반독점법 등으로 IT기업 규제에 나서면서도 디지털세에 대해서는 기업이 기존 세금 규정과 개정안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게 하는 ‘세이프 하버’(Safe Harbor) 방식을 주장하는 등 협상에 비협조적이었다.
유럽은 GDPR(일반개인정보보호법) 등 디지털 법제 마련에 선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양대 법체계인 대륙법·영미법 모두의 본산이기도 하지만 검색·소셜미디어 등 디지털 서비스 시장이 미국 IT기업에게 장악당했기에 적극적으로 견제하는 측면도 있다. 디지털세 합의가 난항을 겪자 유럽을 중심으로 각국이 자체적으로 IT기업을 겨냥한 디지털서비스세(DST)를 마련하기에 이른다.
디지털세와 DST는 같은 줄기에서 나왔지만 엄연히 구분된다. 유럽 국가들은 보통 전 세계 매출 7억5000만유로(약 1조원) 이상 디지털 서비스 기업을 대상으로 삼지만 자국 내 매출 기준이나 구체적인 적용 범위 등은 국가별로 다르다. 2019년 프랑스가 앞장서서 만들면서 트럼프 행정부가 보복 관세 부과를 추진했으나 올해 들어 유예가 결정됐다. 바이든 행정부도 DST를 도입한 오스트리아·영국·인도·이탈리아·스페인·터키 등에 무역법 301조에 근거한 대응을 검토하는 등 보복 관세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미국의 태세 전환… 급물살은 탔는데 산으로 가는 디지털세
지난해 10월 OECD·G20 IF는 제10차 총회를 온라인으로 갖고 디지털세 장기대책 필라1·2 청사진을 승인·공개했다. 지난해 초 기본 골격 합의 후 진행된 세부사항 논의 경과를 담은 중간보고서다. OECD·G20 IF는 청사진을 발표하며 최종 방안 합의 시점을 올해로 설정했다.이후 미국 대선 결과 바이든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바이든 대통령부터 디지털세 관련 세계적 합의를 이끌어 내겠다고 나선 것이다. 그동안 부정적·소극적 태도로 일관해오던 미국이 기존 주장을 철회하고 디지털세 논의에 재참여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그 배경으로는 필라2가 꼽힌다.
바이든 행정부는 코로나19 극복을 위해 재정을 확대 편성하고 여기에 쓰일 재원을 확보하기 위해 법인세 인상 카드를 들고 나왔다. 자국 내 법인세 최고세율을 현재 21%에서 25~28%까지 올리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자국 기업의 국외 이탈을 막고 나아가 리쇼어링(Reshoring)까지 꾀하려면 글로벌 최저한세가 높게 설정되는 편이 유리하다. 이에 유럽에서는 필라1까지 함께 합의할 것을 요구한다.
미국이 재합류하면서 더 불투명해진 부분도 있다. 지금까지 OECD·G20 IF를 통해 진행된 논의에서 과세대상은 디지털 서비스 기업뿐 아니라 소비재(B2C) 기업까지 확대했다. 당초 디지털 서비스 기업에 국한됐던 과세대상을 소프트웨어(SW)뿐 아니라 가전·스마트폰·자동차 등 소비재 기업 전체로 확대하는 대신 좀 더 완화된 매출 기준 등을 적용한다. 글로벌 최저한세율은 12.5%로 논의됐다.
미국은 이에 대해 과감한 역제안을 했다. 과세대상은 전 업종으로, 최저한세율은 21%로 제시했다. 대신 글로벌 100대 기업 수준인 연 매출 200억달러(약 22조5000억원) 이상 등으로 범위를 좁혔다. 기존 OECD 논의 결과와 큰 차이를 보여 이 사안은 디지털세 합의 관련 주요 쟁점으로 떠올랐다. 향방은 아직 안갯속이다.
OECD는 디지털세 합의가 이뤄지면 각국이 DST를 자진 철회할 것을 요구한다. 하지만 미국 안은 ‘디지털세’라고 부르기 무색한 수준이다. 이에 유럽 등 이미 도입한 곳을 중심으로 디지털세 합의 이후에도 DST를 유지하려는 움직임도 일고 있다. DST 철회를 바라는 미국은 예의주시하는 상황이다.
이경근 법무법인 율촌 상임고문(세무사)은 “EU 주도로 만들어진 기존 청사진도 미국이 재참여한 논의 결과에 따라 상당 부분 손질이 가해질 수 있는 상황”이라며 “각국이 내세우는 논리도 있지만 결국 과세권 다툼이다. 어떻게 결론지을지 알 수 없으나 양측 다 조금씩 양보해 정치적인 수준에서라도 연내 타결을 이룰 것”이라고 내다봤다.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질라
디지털세는 올해 7월까지 실무 협의를 거쳐 10월 G20 재무장관 회의를 거쳐 가이드라인을 확정해 발표할 예정이다. 전문가들은 주요 쟁점에서 여전히 입장차가 뚜렷함에도 연내 윤곽이 드러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최근 미국 재무부가 법인세 최저한세율을 15%로 타협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보내면서 G7 내 합의가 임박한 점도 크게 작용할 전망이다. 올 하반기 정해지는 내용을 토대로 디지털세가 실제 적용되기까지는 2~3년 이상이 소요될 것으로 예측된다.지난 4월 구글이 처음 공개한 한국 영업실적에는 지난해 매출 2201억원, 영업이익 155억원이라고 했지만 이를 곧이곧대로 믿는 이는 없다. 네이버만 해도 연 매출이 5조원대다. 앱 마켓 구글플레이스토어는 한국 시장 점유율이 70%에 달하며 여기서 올리는 연간 매출만 5조원이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디지털세가 본격화되면 구글·페이스북·애플·아마존·넷플릭스 등이 한국에서 거둔 이익에 따라 과세할 수 있는 근거가 생긴다.
하지만 미국의 참전·확전으로 촉발된 논의 결과에 따라 한국 기업들의 해외사업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도 있어 정부와 기업들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한국은 법인세 최고세율이 25%로 이미 높은 수준이라 당장 국익과 직결되는 것은 필라1이다. 과세 대상 논의에 소비재 기업까지 포함됐지만 차등화 기준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은 나오지 않았다.
만약 전 업종으로 확산될 경우 수출 주력 상품인 반도체 등 B2B 분야까지 영향을 받는다. 대신 글로벌 최상위 기업 등으로 범위가 좁아지면 타격을 입을 곳이 줄어든다. EU 중심의 기존 입장과 미국 입장 사이에서 취사선택하며 줄타기를 해야 할 상황이다. 삼성전자, LG전자, 현대자동차 등 우리 주요 기업들의 준비도 필요하지만 정부에서 얼마 남지 않은 시간 동안 최대한 유리한 쪽으로 결과를 유도할 필요가 있다.
한국 정부는 그동안 OECD와 G20의 관련 논의에서 디지털화를 통한 시장에서의 이익창출 규모와 다른 디지털서비스업과 제조업 등 소비자 대상사업 이익의 차이가 고려돼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주무부처인 기재부는 2019년 말 디지털세 대응 조직을 보강하고 디지털세 민·관 TF를 구성해 쟁점별 대응방안을 보완해왔다.
김태정 기재부 신국제조세규범과장은 “실무회의를 열어 다른 나라 입장을 파악하고 우리 주장을 반영하기 위해 계속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저작권자 ⓒ ‘존중받는 개인, 부강한 대한민국’ 시대,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보도자료 및 기사 제보 (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