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9일 광주 동구 학동 재개발지역에서 철거 중이던 5층 건물 1동이 무너져 도로를 달리던 시내버스와 승용차 2대를 덮치는 사고가 발생했다. / 사진=뉴스1 황희규 기자
아직 시행도 안 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중대재해법)이 또다시 풍랑에 휩싸였다. 광주 건물 붕괴 등 대형 사고가 발생하면서 처벌 대상과 수위를 확대해야 한다는 여론이 커지고 있어서다. 반면 재계는 기업과 기업인을 처벌하는 게 능사는 아니라며 사고를 사전에 예방하는 것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맞선다. 중대재해법을 둘러싼 논란을 따라가 봤다. 

광주 참사 계기 법 보완키로… 처벌 강화 전망


‘중대재해기업처벌법’(중대재해법) 시행을 반년 앞두고 경영계의 우려가 커진다. 최근 광주 건물 붕괴 참사를 계기로 정치권에서 중대재해법을 보완하겠다고 약속함에 따라 처벌 규정이 더욱 강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어서다. 그동안 보완 입법으로 처벌 완화와 면책 범위 확대를 줄기차게 요청해왔던 경영계 입장에선 예기치 못한 암초를 만난 셈이다. 

◆시행도 안 된 중대재해법에 다시 ‘메스’ 

중대재해법은 사망사고 등 중대재해 발생 시 ‘경영책임자’와 ‘원청’에 대해 처벌을 부과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법안이다. 안전조치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은 사업주나 경영책임자를 1년 이상 징역이나 10억원 이하 벌금에 처하는 처벌규정을 담고 있다. 

법인에는 50억원 이하 벌금을 매긴다. 징벌적 손해배상으로 손해액의 5배 이내 배상책임도 규정하고 있다. 시행 시기는 50인 이상 사업장은 내년 1월27일부터, 50인 미만은 2024년 1월27일부터다. 5인 미만 사업장은 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됐다. 

중대재해법이 국회 문턱을 넘은 건 지난 1월이다. 국회를 통과한 지 반년도 채 지나지 않았고 아직 시행도 안 된 법안에 정치권이 다시 메스를 들이대겠다고 나선 이유는 최근 광주에서 발생한 대형 사고 때문이다. 

6월9일 광주 동구 학동 재개발구역에서 철거 작업 중이던 건물이 붕괴하며 17명의 사상자를 냈다. 하지만 중대재해법이 내년부터 시행되는 탓에 정몽규 HDC 회장과 권순호 HDC현대산업개발 대표가 형사처벌을 피할 수 있게 됐다. 

법이 이미 시행됐더라도 처벌은 쉽지 않다. 중대재해법은 의무안전조치 대상을 다중이용시설과 공중교통수단으로 한정했는데 붕괴한 건물은 여기에 해당되지 않아서다. 특히 처벌 대상을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 등’으로 모호하게 규정한 탓에 법 적용 대상에서 빠져나갈 소지가 있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은 중대재해법 개정 작업에 착수했다. 구체적인 개정 내용은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처벌 대상과 수위가 강화될 것이라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특히 정의당은 중대재해법 적용 대상에서 5인 미만 사업장이 제외되고 50인 미만 사업장이 3년 유예를 받은 것도 다시 들여다보겠다는 입장이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강은미 의원(정의당·비례대표)은 “중대재해법의 한계가 명백하게 드러났다”며 “경영책임자 범위를 명확히 하고 5인 미만 사업장 적용 제외와 50인 미만 사업장 3년 유예 등 법 적용 사각지대를 해소하는 법 개정을 위해 당 중대재해특별본부에서 노동자·시민단체와 공동으로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처벌 또 세지나… 발등에 불 떨어진 재계 

경영계는 그야말로 비상이 걸렸다. 중대재해법 시행으로 책임이 커진 상황에서 처벌 수위를 더욱 강화할 경우 경영 부담이 가중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특히 중대재해법 외에 지난해부터 개정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이 적용돼 사망사고 발생 시 형량을 50% 가중하고 하청근로자 사망 시 원청도 동일하게 제재하는 등 처벌 수준을 높여놓은 상황이다. 
기업은 부담감을 호소하고 있다. 한국경제연구원이 여론조사기관 모노리서치에 의뢰해 매출액 상위 1000대 비금융기업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중대재해법이 기업경영활동을 위축시킬 것’이라는 응답은 52%(다소 위축 39%·매우 위축 13%)에 달했다. 

기업 활동에 미치는 영향 중 가장 우려되는 부분에 대해서는 ‘사업주·경영책임자 구속으로 경영 공백 및 폐업 우려’(39.5%)를 가장 많이 꼽았다. 이어 ▲도급·용역 등의 축소로 중소기업 수주 감소 및 경영 실적 악화(24.5%) ▲인력 운용 제약으로 기업 경쟁력 감소(22.4%) ▲국내 자본 해외 유출 및 외국인 국내 투자 감소(13.6%)등 순이었다. 

추광호 한경연 경제정책실장은 “산업재해는 중대재해법과 같은 처벌 강화로 예방하기 어렵다”며 “산업안전시스템을 정비해 예방에 주력하는 동시에 기업 활동 위축이 우려되는 중대재해법을 정비해 현장 혼란을 방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승태 한국경영자총협회 산업안전팀장은 “아직 본격적인 중대재해법 개정 논의 단계가 아니기 때문에 구체적인 내용은 앞으로 확인해 봐야 한다”면서도 “이미 중대재해법 제정 과정에서 법인에 대한 벌금을 상향하는 등 처벌 수위를 높였는데도 또다시 처벌 대상과 수위를 강화하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사고가 발생했다는 이유로 처벌 수위를 재차 강화하면 결과적으로 규모가 작은 기업일수록 경영부담이 더 커질 수밖에 없다”며 “무조건적인 처벌보다는 사업장 안전관리 역량이 확보될 수 있도록 제도적 지원을 마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한듬 기자 [email protected]

내년 1월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시행을 앞두고 노사가 정책 보완을 외치고 있다. 사진은 서울시내 한 아파트 공사현장에서 작업을 하는 인부들 모습. /사진=뉴스1

노사 “시행 반년 앞두고 명확한 규정 내려야” 




내년 1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중대재해법) 시행을 앞둔 가운데 광주 철거 건물 붕괴 사고와 평택항 컨테이너 사고 등 연이은 현장 사고가 발생하면서 정치권과 노사 사이에 혼란이 야기되고 있다. 여권은 중대재해법을 다시 수술대에 올렸다. 노동계는 규제 대상 기업 확대 등 처벌 강화를 주장한다. 경영계에선 처벌 강화가 아닌 예방 중심의 보완을 요구한다. 노동자 안전을 확보하면서 사용자의 경영 활동을 좁히지 않는 대책이 절실한 상황이 됐다.  

◆경영책임자 처벌 피할 우려 여전 

고용노동부의 ‘2020년 산업재해 발생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일하다 사망한 노동자 수는 모두 2062명으로 이 가운데 882명이 사고로 숨졌다. 사업장 규모별로 분류해보면 ▲300인 이상 37건 ▲50~299인 131건 ▲5~49인 402건 ▲5인 미만 312건이 발생했다.
지난 4월21일 정부세종청사에서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산업안전보건법, 산재보험 전면적용 요구 결의대회를 갖고 거리행진을 하고 있다. /사진=뉴스1
노동부는 정기감독을 통해 노동 환경을 점검하고 있지만 현장 재해사고는 매년 반복되고 있다. 이런 근로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노동부는 중대재해법 시행령을 내년 1월 도입할 예정이다. 근로자 사망 시 사업주와 경영책임자에게 1년 이상 징역과 10억원 이하 벌금, 법인에는 50억원 이하를 부과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대상은 상시 근로자 50인 이상 사업장이다.  

하지만 최근 건설 현장에서 잇따라 사고가 발생하자 노동계와 경영계는 중대재해법 보완을 요구하고 있다. 노동계는 여전히 ‘5인 미만 사업장 적용 제외’ 부분을 개정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지난해 기준 전체 산재 사망사고의 35%가 5인 미만 사업장에서 발생했다. 5~49인 사업장에서 이 비율은 26%다. 현 법률대로라면 전체 산재 사망사고의 35%는 앞으로도 계속, 61%는 3년 동안 이 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 

중대재해법 제정 당시 실무자격인 공무원의 처벌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계속 나왔지만 법안에서는 빠진 상태다. 민주노총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운동본부 관계자는 “지난해만 해도 5인 미만 사업장에서 사고 사망자가 300인 이상 기업보다 많이 나왔다. 중대재해법은 노동자 생명에 차별을 둔 것”이라며 “마리나오션리조트 붕괴사고는 인·허가 단계에서부터 설계·시공·감리·유지관리 등 총체적 부실로 발생한 참사였다. 사고에 직접적인 원인을 제공한 실무 담당 공무원들에 대한 처벌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경영책임자가 처벌을 피할 가능성이 있는 점도 노동계가 우려하는 대목이다. 중대재해법에서 경영책임자를 ‘사업을 대표하거나 안전보건에 관한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과 ‘중앙행정기관의 장, 지방자치단체의 장’으로 본다. 노동계 관계자는 “최근 기업은 중대재해 발생 시 최고경영자가 아닌 안전보건이사만 처벌받을 수 있도록 이사회를 꾸리는 등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고 있다”고 비판했다.  

◆처벌 위주로는 근본적 해결 한계 

광주 학동 재개발구역 철거 건물 붕괴 사고 이후 정치권에선 중대재해법을 강화하자는 개정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중대재해 사고 발생 시 CEO(최고경영자) 등에 대한 처벌 완화를 주장하는 경영계 입장에선 부담이 커진 셈이다. 

경영계는 처벌 만능주의 법안만으론 근본적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기업 처벌 강화로 ‘희생양 만들기’는 오히려 혼란만 부추길 수 있다는 지적이다. 경영계는 경영책임자 등의 형사처벌에 대해서도 형벌 수준을 하한형 유기징역(1년 이상)에서 상한 설정 방식으로 변경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벌금 수준 하향과 징벌적 손해배상책임 3배 이내 제한도 제안하고 있다.

한 경제단체 관계자는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정부는 규제 대상을 넓히거나 처벌을 강화하는 쪽으로 대응해 왔다”며 “건설산업기본법과 산업안전보건법 등 여러 규제가 있지만 이런 법안이 현장에서 제대로 적용되지 않는 것이 근본적인 문제”라는 주장이다. 이어 “왜 안전 관련 법안이 현장에서 응용되지 않는지 원인을 진단하고 이를 바탕으로 한 개선책을 내놔야 한다”며 “처벌을 강화해야 재해가 준다는 식의 대응은 그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권혁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경영책임자가 산업안전에 관심을 기울이도록 하는 데 중대재해법은 의미가 있다”면서도 “법과 노동현장에서 괴리가 발생하는 것은 문제”라고 짚었다. 그러면서 “제재에 중점을 둔 법 개정 안전 대책과 지원이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 안전공학과 교수는 “그동안 발생한 사고로부터 교훈을 얻으려는 태도가 필요하다”며 “최근 고 이선호씨 산재사망사고는 고 김영균씨 사고로부터 전혀 배우지 못해서 발생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기업을 안전 불감증으로 몰고 갈 것이 아니라 수범자가 현장에서 준수할 수 있고 예측 가능한 법을 만들어야 한다”며 “명확한 규정과 중소업체에 대한 지원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권가림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