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기한이 지난 식품을 볼 때마다 고민에 빠진다. 버리자니 아깝고 그냥 먹자니 탈이라도 날까 걱정된다. 특히 식품 변질이 더 빠르게 일어나는 여름철엔 식중독 걱정에 유통기한을 더 자세히 들여다본다. 이처럼 유통기한은 소비자가 식품 신선도를 판단하는 주요 지표로 활용된다.

문제는 대부분의 소비자들이 유통기한을 폐기 시점으로 인식해 멀쩡한 식품을 버리는 일이 많다는 것이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에 따르면 유통기한이 지난 식품 폐기로 인한 사회적 손실 비용은 연간 최대 1조5400억원으로 추산된다. 

이에 국내에선 현행 유통기한 대신 소비기한 표시제 도입을 본격화하는 분위기다. 유통기한보다 더 긴 소비기한 도입으로 불필요한 음식 낭비를 줄이겠다는 의도다. 소비기한은 식품을 소비할 수 있는 최종 기한을 뜻한다. 반면 유통기한은 식품의 제조일부터 소비자에게 판매가 허용되는 기한이다. 즉 유통기한을 넘긴 식품은 유통·판매가 불가능할 뿐 부패나 변질된 음식으로 보긴 어렵다는 의미다.

한국외식산업연구원에 따르면 대다수 식품은 적정온도만 유지하면 현행 유통기한보다 훨씬 긴 시간이 지나도 섭취 가능하다. 우유는 냉장 보관하면 최대 60일까지 섭취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말을 온전히 신뢰하기 어렵다. 같은 우유라도 조사 기관마다 섭취 가능한 기한이 조금씩 차이를 보이는 등 아직 명확한 기준이 마련되지 않아서다. 한국소비자원과 식품의약품안전처 등 공신력 있는 기관에서 명확한 기준을 확립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재 소비자원은 유통기한 경과 후 식품 품질변화를 측정한 결과를 공개하고 있다. 하지만 해당 결과는 최근의 저장·유통 환경을 고려하지 않은 10년 전 자료를 근거로 제시해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평가다. 식약처는 한술 더 떠서 식품의 품질 변화와 관련해 별도 기준을 마련할 필요가 없다는 입장이다. 식약처 관계자는 “유통기한은 제조업자가 자체적으로 식품의 품질을 보장할 수 있는 기한을 정하는 것이다. 식약처 내부에서 별도의 기준을 만들진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식품의 종류가 상당히 많은데 일일이 기한을 정할 순 없다"고 말했다.

유통기한과 소비기한은 제조업자가 제품의 특성과 유통과정을 고려해 관능검사(외관·맛·색깔 등 검사)와 미생물·이화학·물리적 지표 측정 등 과학적인 설정 실험으로 제품 유통 중 안전성과 품질을 보장할 수 있는 기간으로 설정한다. 식품이나 제조업체에 따라 기간이 다르기 때문에 식약처가 별도의 기준을 마련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국내에서 식품 위생 및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 정부 기관이 기업에게 일을 떠맡기며 정확한 정보 제공을 꺼린다는 지적을 피하긴 어렵다.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건강과 위생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부쩍 늘었다. 대다수 국민은 정부 기관에서 인증·허가한 식품을 믿고 구매한다. 소비자가 안심하고 식품을 소비할 수 있도록 정확한 정보 제공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