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 한국노총 노조원과 강제동원 문제해결과 대일과거청산을 위한 공동행동 회원들이 6월10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강제징용 소송 각하 판결 규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1.6.10/뉴스1 © News1 박세연 기자

(서울=뉴스1) 류석우 기자 = 지난 2018년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일제강점기 강제노역 피해자의 손해배상 청구권을 인정하는 취지의 판결이 나왔지만, 최근 하급심에서 잇따라 강제노역 피해자들이 패소하는 일이 발생하고 있다.

지난 6월 강제노역 피해자와 유족 85명이 일본제철 등 16개 일본 기업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법원이 청구를 '각하'하며 사실상 패소 판결을 한 데 이어, '소멸시효'를 이유로 피해자 유족들의 청구를 기각한다는 법원의 판단도 나왔다.


서울중앙지법 민사25단독 박성인 부장판사는 11일 강제노역 피해자의 유족 5명이 미쓰비시 마테리아루(전 미쓰비시광업)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며 원고패소 판결했다.

2012년 대법원에서 강제노역 피해자의 손해배상 청구권이 소멸하지 않았다고 판결이 나온 이후 3년이 지나 소송을 제기하는 것은 권리행사의 시효 내에 소를 제기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미쓰비시 측은 재판 과정에서 유족들의 손해배상청구권이 소멸시효가 완성됐다고 주장했다.

유족 측은 2012년 이후 파기환송심을 거쳐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2018년 10월 재상고심 판결을 내렸기 때문에 2018년에야 권리행사 장애사유가 해소됐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법원은 청구권협정 적용대상에 관한 법리는 2012년 대법원 판결로 판시한 내용에 기속될 수밖에 없다며 인정하지 않았다.


요컨대 2012년 대법원에서 이미 청구권과 관련해 법리가 정해졌기 때문에 그로부터 3년 뒤인 2017년 2월23일 소를 제기한 것은 권리행사의 상당한 기간 내에 제기된 것으로 볼 수 없다는 판단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지난 2018년 판결에서 소멸시효와 관련해 구체적인 판시를 하지는 않았지만, 일본기업들이 소멸시효 완성을 주장하며 채무이행을 거절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당시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파기환송 후 원심은 피고가 소멸시효 완성을 주장하며 원고들에 대한 채무의 이행을 거절하는 것은 현저히 부당하여 신의성실 원칙에 반하는 권리남용으로서 허용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며 "이러한 환송 후 원심의 판단 또한 환송판결의 취지에 따른 것으로서, 소멸시효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는 등의 위법은 없다"고 언급했다.

현행 민법상 불법행위를 원인으로 한 손해배상청구권은 피해자나 그 법정대리인이 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로부터 3년간 이를 행사하지 않거나, 불법행위를 한 날로부터 10년이 경과하면 시효가 소멸한다.

다만 소멸시효 기준을 놓고서는 논란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이후 강제노역 손해배상 소송과 관련해 소멸시효의 기준을 다르게 판단한 사례도 있기 때문이다.

광주고법은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판결 직후인 2018년 12월 강제노역 피해자들이 미쓰비시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 소송 항소심에서 "2018년 10월30일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확정 판결을 내린 시점에서부터 소멸시효가 적용된다"고 판단한 바 있다.

11일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과 사단법인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이 광주시의회 시민소통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반인륜적 전쟁범죄에 대한 소멸시효를 배제하는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고 있다. 2021.8.11/뉴스1 © News1 이수민 기자

이에 아예 전쟁범죄에 관해선 소멸시효를 없애자는 목소리도 나온다.

사단법인 일제강제동원 시민모임 등 시민단체는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소멸시효 제도가 반인륜적 범죄를 저지를 가해자들에게 면죄부가 되도록 허용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전쟁범죄에 대해서는 소멸시효를 배제하는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도 올렸다.

한편 강제노역 피해자와 유족이 일본기업에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패소한 건 지난 6월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4부(부장판사 김양호)는 지난 6월 강제징용 피해자와 유족 85명이 일본제철·닛산화학·미쓰비시중공업 등 16개 일본 기업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원고의 청구를 각하했다.

각하란 소송의 요건을 제대로 갖추지 않으면 본안을 판단하지 않고 재판절차를 끝내는 것을 말한다. 당시 재판부는 "개인 청구권이 한일청구권 협정에 의해 바로 소멸되거나 포기됐다고 할 수 없지만 소송으로 이를 행사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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