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4일 경기도 평택사업장을 찾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반도체 사업 중장기 전략을 점검했다. / 사진제공=삼성전자
‘글로벌 D램¹ 점유율 44%, 낸드플래시² 점유율 34.5%. 2위 기업과 현격한 격차가 있는 압도적인 1위.’

올해 3분기 기준 글로벌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 삼성전자가 차지하고 있는 위상이다. 지난 1983년 삼성전자가 반도체 사업 진출을 공개적으로 선포할 당시만해도 그 누구도 이 같은 미래를 예측하지 못했다. 오히려 삼성전자의 도전을 무모함으로 치부하는 평가가 주를 이뤘다.


1980년대 메모리 반도체 시장을 장악했던 일본의 냉소는 특히 심했다. 일본의 한 기업 연구소는 “삼성전자는 절대 반도체 사업에 성공할 수 없다”며 비아냥거리기까지 했다. 하지만 현재 삼성전자는 명실상부한 글로벌 반도체 대표 기업으로서 세계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삼성전자를 비웃던 일본은 몰락의 길에 접어든 지 오래다. 삼성전자의 무모한 도전은 과연 어떻게 성공할 수 있었을까.

삼성전자의 무모한 도전

삼성전자의 반도체 사업에 불을 댕긴 것은 고(故) 이건희 회장이다. 이 회장은 1974년 경영진의 반대와 주변의 우려에도 한국반도체 인수를 강행했다. 자원이 없는 한국은 첨단 기술 분야의 경쟁력을 높여야 기술 식민지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이후 10여년이 흐른 1983년 2월, 이 회장의 부친이자 삼성그룹의 창업주인 고 호암 이병철 선대회장이 일본 도쿄에서 ‘왜 우리는 반도체 사업을 해야 하는가’라는 선언문을 발표하며 사업 진출을 공식화했다.

일본은 삼성전자의 선언을 비웃었다. 일본 미쓰비시연구소는 ‘삼성이 반도체를 할 수 없는 다섯 가지 이유’라는 보고서까지 발행했다. ▲한국의 작은 내수시장 ▲취약한 산업 ▲부족한 사회간접자본 ▲회사의 열악한 규모 ▲빈약한 기술의 벽을 넘지 못하고 사업이 좌초할 것이란 호언장담이었다.


일본의 냉소는 당시 세계 D램 시장의 주도권이 자국에 있다는 자신감에서 기인했다. 세계 D램 시장은 1970년대까지 미국이 장악했지만 1980년 들어서는 NEC, 도시바, 히타치, 미쓰미시 등 일본 기업들이 고성능 기업용 D램을 앞세워 판도를 뒤집었다. 일본 반도체역사관(SHMJ)에 따르면 1987년 일본의 D램 시장 점유율은 80%에 달했다.

하지만 1990년대 PC가 대중화되면서 시장 판도에 다시 변화가 생겼다. 기존까지는 D램의 주된 수요처는 기업용 대형 컴퓨터였지만 PC 보급 확대로 개인이 주 수요자가 되면서 D램의 크기가 줄고 가격이 저렴해야 했다. 하지만 일본은 이 같은 흐름을 읽지 못하고 값비싼 고성능의 D램 제조에만 매달리다가 수익률 개선의 때를 놓쳤다.


실제 일본 히타치 제작소 연구원 출신인 유노가미 다카시는 2011년 펴낸 ‘일본 반도체 패전’ 저서에서 “과잉 기술과 과잉 품질의 제품을 고수하는 고질병으로 수익성이 악화되면서 일본 반도체 산업이 쇠퇴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제는 ‘비메모리 1등’ 도전

삼성전자는 이틈을 놓치지 않았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D램으로 가격 경쟁력을 높여 시장을 파고들었다. 기술력도 뒤처지지 않았다. 1983년 미국과 일본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64K D램을 개발한 삼성전자는 9년 만인 1992년에는 세계 최초로 64M D램 반도체를 선보이며 이듬해 글로벌 1위에 올랐다. 이후 30여년 가량 1위를 유지하고 있다. 낸드플래시 역시 2002년 처음으로 1위에 올라선 뒤 20여년 동안 왕좌를 내주지 않았다.

반면 일본은 시장에서 존재감이 미미해졌다. NEC와 히타치가 합작한 일본 최대 D램 업체 엘피다는 2012년 파산했고 도시바는 2017년 메모리 사업부를 매각했다. 2019년엔 파나소익이 반도체 사업에서 철수했다.


그나마 낸드 분야에서 일본 키옥시아가 올 3분기 19.3%의 점유율로 세계 2위를 지키고 있지만 1위인 삼성전자와 점유율 격차가 15%포인트 이상 나는 데다 기술 수준도 뒤처진다는 평가다. 김규판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세계지역연구센터 선진경제실 일본동아시아팀 선임연구원은 지난 7월 ‘일본의 반도체전략 특징과 시사점’ 보고서에서 “키옥시아의 주력제품인 낸드는 부가가치가 높은 SSD를 구동하는 로직 반도체(SSD 컨트롤러)의 설계와 제조 모두를 TSMC 등에 위탁하는 등 아직 삼성전자의 경쟁상대는 아니라는 데 이견이 없다”고 지적했다.

삼성전자는 이제 메모리를 넘어 비메모리(시스템) 반도체 1등에 도전한다. 삼성전자는 비메모리 분야의 경쟁력이 상대적으로 낮다는 평가를 받는다. 시장조사기관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올 3분기 삼성전자의 글로벌 파운드리(위탁생산) 시장 점유율은 17.1%로 1위인 대만 TSMC(53.1%)와 큰 차이가 있다.

삼성전자는 이 차이를 과감한 투자를 통해 좁힐 계획이다. 2030년까지 133조원을 투자해 파운드리 세계 1위로 도약한다는 내용의 ‘반도체 비전 2030’을 추진하고 있으며 최근엔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시에 170억달러(20조원)를 들여 미국내 제2 파운드리 공장을 짓겠다고 발표했다. 비메모리 육성에 대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의지도 강력하다. 이 부회장은 “메모리에 이어 파운드리를 포함한 시스템 반도체 분야에서도 확실한 1등을 하겠다”고 포부를 드러내기도 했다.


<용어 설명>

1) D램(Dynamic Random Access Memory) : 빠른 정보 처리를 위한 반도체로 데이터를 빠르게 저장하고 삭제하는 것을 반복한다. 전원이 꺼지면 저장된 자료도 사라진다. 용량이 크고 속도가 빠르기 때문에 컴퓨터의 주력 메모리로 사용된다.

2) 낸드플래시(nand flash) : 전원이 꺼지면 저장된 자료가 사라지는 D램이나 S램과 달리 전원이 없는 상태에서도 데이터가 계속 저장되는 플래시메모리. 주로 스마트폰이나 PC의 주저장장치로 활용되며 사물인터넷(IoT), 빅데이터, 인공지능(AI)의 개발과 함께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