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세계유산 추진 사도광산…日 최고 금광 이면엔 조선인 강제동원
日, 전쟁 물자 확보 광산으로 활용…조선인 대거 강제동원
일부 조선인 광부 日 징병대상자로 입영하는 사례 발생하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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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노민호 기자 = 일본이 일제강점기 조선인 강제노역이 있었던 '사도광산'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추천을 위한 후보로 선정해 국내에서는 '제2의 군함도' 사태를 막아야 한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일본 니키타현에 위치한 사도광산의 역사는 400년 정도다. 에도시대 금광으로 유명했던 사도광산은 한때 금광맥이 동서 3㎞, 남북 600m, 깊이 800m까지 다다르는 등 일본의 최고의 금·은 광산으로 평가받았다.
사도광산은 1896년 미쓰비시 합자회사에 인수됐고 1989년 채굴을 중단할 때까지 103년간 미쓰비시 그룹 소속 광산이었다.
하지만 사도광산은 우리로서는 아픈 역사가 담겨있는 곳이다. 일제강점기(1910~1945년) 약 1140명의 조선인이 강제로 끌려와 노역을 한 장소로 관련해 최근 일본 정부의 공식 문서가 발견되기도 했다.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에 따르면 사도광산의 조선인 강제동원은 일본 당국의 정책 실시보다 이른 시기에 시작됐다.
일본은 1939년 7월 조선인 8만5000명에 대한 강제동원을 공식적으로 명하게 되는데 사도광산은 그해 2월부터 조선인 동원을 시작했다고 한다.
아시아·태평양 전쟁 기간(1941~1945년)에는 일본 정부는 전쟁 물자를 확보하는 광산으로 사도광산을 활용했다. 당시 부족한 노동력을 메우는 데 조선인 노동자를 대거 동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울러 일본 정부는 1943년 8월 조선인에 대한 징병령을 실시하면서, 이와 관련 1944년 사도광산 조선인 광부 중 징병대상자가 돼 20여명이 입영하는 사례도 있었다고 한다.
이밖에 1945년 8월15일 광복을 맞았지만 사도광산에 남은 조선인 244명은 곧바로 귀국선을 탈 수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일본 경찰과 사도광산 측은 회의를 열고 조선인 광부 귀국 건이 아닌 '패전으로 인한 가동률 저하 방지 방안'을 논의했다고 한다.
일본 측의 '미온적 대응'으로 사도광산 광부들의 귀국은 광복 4개월 만인 1945년 12월 이후가 돼서야 귀국할 수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듯 조선인 강제동원의 아픔의 역사가 담긴 사도광산에 대해 일본 문화청 문화심의회는 28일 2023년도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추천 후보로 선정했다.
주목할 만한 점은 일본은 사도광산 역사 전부가 아닌 '사도광산 부흥'의 시대였던 에도 시대만을 특정했다. 조선인 강제동원을 숨기기 위한 '꼼수'라는 지적이다. 역사적 '치부'만 쏙 뺀 일본의 유산 미화 행보에 우리 정부의 대응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일본은 내년 1월 중 각의(국무회의) 결정을 거쳐 다음 달인 2월1일 이전에 유네스코에 사도광산 등재 신청서를 제출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후 3월부터 2023년 5월까지 유네스코 자문기관인 국제기념물 유적협의회(ICOMOS)의 전문가들 심사를 거치게 된다. 심사가 끝나면 2023년 6월 유네스코에서 등재 여부를 최종 결정하게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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